달라진 비행기 풍경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액체폭탄' 얘기가 나온 후 처음 비행기를 탔다. 그것도 가장 까다로운 미국행 비행기를 탔으니, 짐이 별로 많지 않았지만 알아서 노트북까지 체크인해서 부칠 배낭에 집어 넣는 등 비행기에 가지고 갈 짐을 최소화했다. 그 배낭을 체크인하러 들어가는데, 검사원이 노트북 컴퓨터가 있냐고 물었다. "네"하고 대답을 하니, "혹시 애플(Apple)이나 델(Dell) 노트북이에요?"하고 다시 구체적으로 물었다. 아니라고 하니까, "그럼 됐어요"하면서 들어가란다. 얼마 전에 이 지면에서도 썼지만, 노트북에 들어가는 소니 배터리 문제로 델 컴퓨터에 불이 붙는 사고가 몇 차례 생기면서 기내에 그대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품목에 소니 배터리가 주로 들어간 델과 애플 컴퓨터가 추가된 것이다. 나름대로 노트북들 중에서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들이 이런 취급을 받게 되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했을 것이다.

 

      뉴욕에 갈 때마다 꼭 들르는 중고책방에서는 들어가며 가방을 맡기는데, 가방에 노트북이 들었냐 묻더니 노트북은 본인이 들고 가란다.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책을 고르며 서가를 둘러 보려니 아무래도 불편하여 예정보다 이르게 서점을 나왔다. 고객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은 과한 조치였다. 미국 내에서 1박2일 동안 비행기를 세 번 타면서 이동할 일이 있었는데, 노트북은 아예 원래의 호텔에 남겨 두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시카고와 보스턴을 함께 다닌 미국 친구는 애플 아이맥(iMac)을 보란 듯이 가지고 다녔다. 알고 보니 한국 매스콤에도 제법 크게 다루어 졌듯이 대한항공이 약간 과하다 싶게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당연히 한국 델이나 애플에서 항의가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직도 예전 70, 80년대의 해묵은 사고의 딱지를 붙이고 있는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안전을 위한 노력을 다른 곳보다는 심하게 보일 필요도 있다. 이미지 측면에서 뒤쳐져 있는 쪽에서 같은 기준을 가지고 얘기하면, 사람들의 인식상에서 앞선 경쟁자와의 거리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는 완전히 만석(滿席)이었다. 정말 이렇게 한 자리도 비지 않고 만석인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초등, 중고등, 대학 이상을 가리지 않고 여름방학 보내고 약간 늦게 미국으로 돌아가는 미국 유학생들이 주원인인 것 같았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입양 가는 아이들이 몇 자리씩 채우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울어 제끼는 소리가 그렇게 가슴을 후벼 파곤 했다. 이번 뉴욕행 비행기에서 내 옆에 두 고등학생이 탔다. 이들 얘기로 미국에서 몇 년 학교를 다니며 한국을 오갔다는데 미국입국카드 하나 제대로 못쓰고, 스튜어디스에게 하나하나 물어 본다. 게다가 화장실을 오가거나, 자리에서 뒤척거리면서 가뜩이나 덩치는 큰데 옆 사람을 배려하는 예의는 찾아 보기 힘들었다. 예전 입양아들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탄식이 나왔다. '아, 이 아이들을 어찌하여야 하나!'

 

      뉴욕에서 이틀을 지내고 시카고로 갈 준비를 하는데,  미국 친구가 다시금 헤어젤, 로션, 면도크림, 치약 따위를 갖고 오지 말라고 얘기한다. 자신도 지난 주에 공항에서 그런 것들을 설마 하고 가지고 갔다가 다 버렸다고 얘기를 하는데,  옆에 있는 다른 친구가 농담을 한다. 요즘 출장 많이 다니는 미국인들의 위생상태가 아주 안 좋아졌고, 냄새가 많이 나니까 될 수 있으면 피해 있으라고 한다. 어쨌든 세면도구라고는 칫솔과 전기면도기 하나만 가지고 비행기를 타러 나갔다. 검색원, 이들의 용어로는 보안요원들의 불친절하고 거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행태를 어떻게 참고 견딜 것인가 긴장을 하고 공항 검색대에 섰으나, 예전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검색대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책, 노트, 서류 정도에 칫솔, 전기면도기와 속옷 한 벌만 든 가방이었으니, 따로 자세히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은 한 눈에 뻔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른 아침이라 승객이 전반적으로 적은 것도 빠른 수속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나, 거의 만석 상태에 가장 붐비는 시간에 비행기를 탔던 시카고에서 보스턴으로, 보스턴에서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는 데도, 수속은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보다 유심히 관찰한 후 내가 내린 결론은 지극히 협조적으로 바뀐 승객들의 태도와 행동이 수속의 빠른 진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휴가철도 지나고, 비지니스 출장객들이 많은 노선을 주로 다닌지라 승객들이 우선 새로운 비행기 검색에 익숙한 상태였다. 흡사 영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에 나오는 줄지어 컨베이어 벨트로 움직이는 사람들처럼 검색대에 가방을 올리고, 저고리와 신발을 벗고, 벨트를 푸르고 바지 주머니의 지갑과 핸드폰까지 거의 한 동작으로 착착 수순에 따라 알아서 진행을 하고 있었다. 예전처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불평을 늘어놓느라 시간을 지체한다든지, 검색원들과 가벼운 설전을 벌이는 경우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에 맞춰서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검색원들의 자세도 예전보다는 한결 여유가 있어진 듯했다. 그렇게 승객과 검색원들의 달라진 자세와 행동이 전체적으로 보다 원활하고 빠른 수속이란 결과로 나타난 것 같았다.

 

      시카고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비행기는 3시간을 지체하여 출발을 했다. 우리를 태우고 갈 LA에서 온다는 비행기가 시카고의 오헤어(O'Hare)공항 구역-'Space'란 단어를 썼다-에 들어왔다고 방송을 하고 근 두 시간이나 지나서야 비행기가 게이트에 도착을 했다. 같이 갔던 미국 친구와 빨리 오면 LA에서 시카고까지 두 시간이면 오는데, 이 놈의 '공항 구역'은 얼마나 넓기에 그 시간을 헤메고 있는가 농담을 했는데, 그렇게 우리처럼 살짝 궁시렁거리는 사람조차 찾기 힘들게 방송이 나올 때마다 약간의 한숨만 살짝 내뱉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냥 얌전히들 앉아 있었다.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올 때는 비행기를 타고 활주로로 나간 채 그 위에서 한 시간 반을 갇혀 있었다. 그 한 시간 반동안 중간에 아무런 안내방송도 없었다. 창문을 통해 바로 몇 백미터 떨어져 있는 우리가 방금 빠져 나온 게이트를 보면서 '이렇게 오래도록 사람 잡아둘거면 차라리 터미널로 다시 돌아가서 대합실에 있게 하는게 낫지 않아?'하고 옆 자리 친구에게 불평 섞인 농담을 했으나, 다른 자리에서는 그런 소리도 없이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
 

      연발과 불친절로 대표되는 미국 항공사들의 악명이 어제그제의 일은 아니지만, 유순해진 승객들의 태도가 어찌 보면 이들에게 면죄부와 같이 작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심하게 얘기하면 테러의 위험을 무릅쓰고 승객들 당신들을 위하여 일을 하고 있으니, 불평 따위는 물론이고 감사의 마음을 가지라는 식의 모습까지도 보이는 듯 했다. 실제로 항공승무원 직업에 대한 인기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또 하필 내가 탄 비행기들이 '어메리칸(American Air)', '유나이티드(United Air)', '컨티넨탈(Continental Airline)' 등 전형적인 기성 항공 브랜드들만을 골라 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주 제한적인 관찰이기는 했지만, 기존 항공사들은 승객들의 자세를 포함하여 달라진 환경을 자신들의 디딤돌로 쓰는 것이 아니라, 허물을 감추는 엄폐물로 쓰는 듯했다. 항상 항공산업의 주조적인 문제만을 지적하는 이들이지만, 만성적자의 이면에는 이런 다른 문제점들이 도사리고 있다. 한편으로 제트블루(Jet Blue)나 사우스웨스트(Southwest Air)가 상대적으로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유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을 가끔 하는데, 기회로 만들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기회가 된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