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2001년 9월 11일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2001년 9월 11일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미국 시간으로 2001년 9월 11일 아침, 한국 시간으로는 같은 날 저녁 시간, 나는 서울의 어느 와인바에 있었다. 당시 미국 주재원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삼성전자의 그 다음 해인 2002년 커뮤니케이션 전략 협의를 위하여 함께 일하던 미국 광고회사 친구들과 함께 그 며칠 전 서울에 들어와 있던 차였다. 그 회의를 포함한 대략의 일정을 마치고, 다음 날인 9월 12일 마지막 정리 회의만을 남기고 있었다. 미국 친구들은 정리회의를 하고 9월 13일 비행기를 타고 돌아갈 예정이었고, 나는 하루를 더 머물러 9월 14일 뉴욕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대충 일정을 마친 시점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일정도 없고 해서 간만에 오래 전에 함께 일했었던 친구들을 만나서 식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세게 마시러 가자는 친구들을 달래고 애걸을 하고 해서 겨우 와인바로 유도를 해서 자리를 막 잡고 앉았던 참에 전화가 왔다. 미국에 남아 있던 동료에게서 온 전화였다. 함께 서울에 왔던 동료의 소재를 묻고, 서울 일의 성과와 추이 등 업무 관련한 얘기를 나눈 후, 이 친구가 끊으려 하던 차에 덧붙였다. “근데 여기서는 구경 잘하고 있어요.” 어떤 구경이냐고 의아해서 물어 보니, 그 친구 왈, “어느 얼뜨기 놈이 비행기를 몰고 가다가 월드트레이드센터에 꼬나 박아서….연기가 폴폴 나고….” 언젠가 TV 해외 뉴스 한 토막으로 보았던, 세스나 경비행기와 라이트(Wright) 형제의 비행기 중간쯤 되는 거인의 장난감같은 글라이더가 민가 지붕에 거꾸로 박힌 영상이 떠올랐다. 너털웃음을 짓던 수화기 건너 편 친구에게서 “어, 어….”하는 소리가 계속 나오면서 그 친구가 혼잣말처럼 소리쳤다. “또 한 대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스파이전쟁의 미국 쪽 요원으로 평생을 보낸 한 인사의 회고록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계획하지 않은 우리에게 타격을 주는 일이 갑자기 일어나면 그것은 우연이다. 그런데 같은 일이 또 한 번 일어난다면 그것은 적(敵)이 일으킨 것이다.”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세계무역센터에 두 번째 비행기가 충돌을 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뭔가 의도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면서 옛날 얘기할 계제가 아니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두 친구에게 비행기 두 대가 연달아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했는데, 뭔가 큰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미국과 계속 연락을 취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일방적으로 쏟아 붓고는 바로 그 와인바에서 나와 택시를 탔다.

 

      당시 부모님 댁에 머물고 있었는데, 와인바에서 택시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게 가깝게 있었다. 그래도 그 10분 동안에 집으로 간다고 전화를 드리자 어머니께서는 “그래, 계속 자막으로 뜨는데 하수상하다. 빨리 와라”고 말씀을 하셨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그 때까지 자막으로만 알리다가 바로 미국 방송을 그대로 받아서 긴급 프로그램을 내보내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가족들에게 전화를 계속 시도했지만 이미 통화량이 폭주하여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사건의 현장과는 워낙 거리가 있어서 별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아이들의 심리적 충격이 좀 걱정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만난, 함께 온 미국 광고회사 친구들은 거의 패닉 상태였다. 대부분 맨하탄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이었으니 이해가 될 만도 하다. 비행기는 기약없이 취소되고, 가족들과 연락은 전혀 되지 않으니 당연했다. 원래의 일정에서 이틀 정도 연기된 채 모두들 무사히 집으로 갈 수는 있었지만, 서울에서 겪었던 911과 그 쇼크는 꽤 오랫동안 우리들끼리 얘기하는 데 주된 소재였다.

 

      911 5주년을 맞이하여, 희생자를 위한 기금 모금을 더욱 활성화할 목적으로 ‘911 사건이 났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Where were you when it happened)?’이란 질문을 던지는 광고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일반인들의 있는 그대로의 나레이션이 흐른다. ‘그 때 나는 샤워를 하고 있었지요….나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 중이었어요….아내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지요….’ 등등. 광고에 나오는 것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이야기들이 전달이 되고 있다고 한다. 거의 모두가 아주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단다.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는 가끔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아주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였던 역사적인 사건들이 나 개인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역사 자체가 살아서 다가 오는 것이다. 이번 911 기금모금을 위한 광고는 그런 역사와 개인간의 만남을 그리는 데 그치면서, 사람들이 그런 역사를 자신과 결부 시켜 반추하면서, 자연스럽게 기금모금을 통한 관련 활동에 동참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미국역사협회나 역사선생협의회의 광고로 써도 손색이 없다.  

 

      얼마 전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의 자서전을 읽었다. 근 100년에 걸쳐서 피커 드러커가 그의 일생을 통하여 그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들을 중심으로 구성을 한 여느 자서전과는 다른 양식으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일상 생활, 사람들과의 교류를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나갔던 그 삶의 모습이 부러웠다. 사실 어느 특정 사건의 현장에 있었는가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터 드러커의 자서전에서 보이듯이 이면의 의미와 향후의 방향과 같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엮어 나가는 것이다.

 

※ 911 5주년 기념과는 무관하게 9월 10일 뉴욕에 갈 예정이다. 경영 관련 학계, 언론계 인사들을 만날 예정인데, 아마도 911을 축으로 우리 개인적 경험이 어떻게 엮여지었는지가 주요 화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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