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1일은 부활절이었습니다. 이날 하루 전, 저희 가족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 `주보라의 집`, 다음날인 부활절엔 삼송리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모임장소인 `한길교회`에 갔었습니다. 베트남에 있는 `성현비나(주) 이영만 사장님`께서 보내주신 신발을 전달하기 위해서였지요.



`성현비나`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유명브랜드 신발을 주문생산하는 회사입니다. 당연히 신발은 색상과 디자인 모두 굉장히 예쁩니다.이사장님께선 종종 저희 가족이 신을 운동화를 보내주셨는데, 제가 주위의 몇분들께 나눠드리고 싶다고 하자, 그렇다면 납품하고 남은 걸 보내줄 테니 요긴하게 쓰라고 하셨습니다. 안그래도 해마다 복지시설 등에 보낸다고 하시면서요.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에서 부산으로,부산에서 다시 제가 사는 일산으로 와야 했으니까요.저는 우편물로 오는 줄 알았으나 이사장님께선 아예 화물트럭에 실어 보내주셨습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출근을 미루고 기다리던 중 트럭기사는 다른 곳에도 가야 한다며 아파트 앞에 박스를 떨어뜨려놓고 가버렸습니다.



딸아이와 둘이서 여러개의 박스를 집까지 올려야 했지요. 관리사무실에서 지게차를 빌려 엘리베이터 앞까지 옮기는데 무거워서 쓰러질 것같고, 여기저기 걸리고, 사람들은 쳐다 보고... 안그래도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쓰려 작정하고 있는데 사정도 파악안한 관리실에선 다짜고짜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써야 한다며 난리치고...



사람들의 경우 궁금하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하련만 한결같이 흘끔거리거나 빤히 쳐다보기만 할뿐 묻지 않으니 먼저 나서서 얘기하기도 그렇고... 순간 "그냥 주소 알려주고 직접 보내라고 할 걸" 하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렇지만 박스를 푸는 순간 속상했던 마음은 확 풀어졌습니다. 신발이 정말 예뻤거든요. 일단 출근했다 퇴근하고 돌아와 사이즈별 모양별로 정리했지요. 그리곤 어디에 보내는 게 제일 좋을까 궁리하던 중 부활절을 앞두고 `주보라의 집`과 `한길교회`에 갔던 겁니다.



`주보라의 집`은 신체 및 정신지체 장애자들을 돌보는 곳입니다. 몇년 전 아는 분의 소개로 작은 선물을 들고 찾은 게 인연이 됐지요. 역시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김광식 목사님이 운영하는데 장애인들이나 그들을 돕는 분들이나 한결같이 더없이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는,따뜻하고 정겨운 곳입니다.



가족조차 돌보지 않는 정신지체인들을 보살피는 이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른지요. 저는 솔직히 직업이 직업인지라 의심이 많습니다. `주보라의 집`에 대해서도 처음엔 일단 미심쩍어 했지요. 그러나 몇년이 지나는 동안 저는 그런 저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곳 식구들은 시설 부족으로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하면서도 밝고 씩씩하게 지내고 있으니까요.



건강한 몸으로 잘살고 있으면서도 서울 강남의 집값 생각에 있는대로 열받고 마치 내것을 뺏긴 듯 분해 하고, 매사에 뭔가 부족한 듯 헛헛해 하는 제 삶에 비할 때 `주보라의 집` 식구들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일지요.



다음날인 부활절에 찾은 `한길교회`는 또 어떻구요. 그곳은 외국인 노동자 특히 아프리카에서 온 노동자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큰길에서 한참을 걸어들어가야 하는 곳에 만들어놓은 비닐하우스 교회지요. 김영두 목사님께서 결코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설교도 하고, 그들의 각종 문제(임금 체불, 병원, 체류기간 연장 등)를 해결해주기도 하는, 그런 곳이지요.



저는 종교인이란, 나와 내 가족의 안녕과 행복과 부를 비는 것 외에 `함께 사는 삶`에도 조금은 눈 돌릴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식사기도도 하지 않고(크리스찬 모임에서 기도 전 음식에 젓가락을 댔다가 번번이 무안해지곤 합니다), 술도 마시고, 설교시간엔 걸핏하면 꾸벅꾸벅 조는, 엉터리 나일론 크리스찬입니다.



그래도 전 어려운 이웃들의 삶을 돌보는 일보다 교회 건물을 번듯하게 만드는 일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교회나 목사님은 싫습니다. 해외선교도 좋지만, 먼저 이땅, 그것도 주변에 보이는, 힘든 이들을 먼저 돌아보고 작은 손길이라도 내미는 그런 교회와 목사님이 좋습니다.



건물은 허름하고, 신도들의 직장이 반반하지 않고, 목사님이 노회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유명인사가 아니어도 유치부나 중고등부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어려운 청소년들을 위해 장학금도 좀 주는 그런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내가 이러저러한 일을 했다"고 방송이나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는 기업인이나, 땀흘려 일하지 않고 따라서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곤 "정치를 개혁하고 나라를 바꾸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각종 운동가들보다, 멀리 남의 나라 베트남에서 땀 뻘뻘 흘리면서 만든 신발을 조국의 어려운 이들을 위해 조건 없이 보내는 성현비나 이영만 사장님같은 분이 진짜 애국자요, 참된 기업인이요, 진정한 우리 이웃이라고 믿습니다.



또, 이땅이 무너지거나 망하지 않고 더 발전하고 도약할 수 있다면 그건 정치나 사회를 개혁하겠다고 큰소리치는 이들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묵묵히 열심히 일하고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기회와 능력을 부여받은 것 자체가 은혜이며 따라서 그렇지 못한 이들을 돕는 것으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성실한 이들 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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