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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진출 실패가 미치는 영향

16강 진출 실패가 미치는 영향

 

      토요일 새벽 스위스와의 예선 마지막 경기가 우리 모두가 알고 보았듯이 허무하게 끝났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아침 운동도 하고, 지난 2주일 이 곳 저 곳 들고만 다니면서 제대로 읽지 못한 책 한 권도 운동 후의 기분 좋은 노릇노릇한 느낌과 함께 다 읽었다. 다시 한 번 빠르게 주요 내용을 복기하면서, 메모용지도 끼워 놓고, 몇몇 가지 내용은 노트에 옮기면서, 월드컵에서 벗어나 모든 생활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듯했다. 그 순간에 ‘한국 축구팀의 16강 진출 실패가 우리 나라 기업 마케팅 활동에 미친 영향’에 관한 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이 모방송국에서 왔다. ‘나의 월드컵’은 이제 후반전으로 넘어갔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월드컵에 직접 스폰서로 참여한 기업들부터, 월드컵 축구 중계 시간을 넘어서 거의 모든 프로그램의 광고를 도배하다시피 했던 월드컵이나 축구 관련 광고를 집행했고, 관련된 이벤트나 프로모션 행사를 실시했던 기업들의 효과를 알아보는 지난한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우선은 발 빠르게 움직인 모방송국의 질문에 답을 해주어야 했다. 방송국 기자는 아쉽다는 측면에서 답변을 해 달라고 했다. 솔직히 나는 국가 전체의 사회적, 경제적 측면에서는 16강 진출이 좌절된 것이 낫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월드컵에 대한 이상(異常)열기가 또 한 경기 한 경기를 치르면서 비등점을 지나, 아주 미세한 충격에도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에 돌입할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 잡혔다. 우리 사회 자체를 그리 건강하고 탄탄하게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보수와 진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양극화 등으로 대립의 각이 곳곳에 날카롭게 서 있다고 한다. 그런 대립은 현재까지는 소리도 크게 나고 아픈 상처를 남기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우리 사회가 소화시킬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벌어져 왔다. 대한민국을 열기구로 치면  왼쪽 오른쪽으로, 그리고 아래위로 흔들거리기는 했지만 큰 궤적으로 보면 정해 놓은 노선 주변에서 운항을 계속 해 왔는데, 월드컵의 이상열기는 기구 자체를 어느 방향으로 몰고 갈지도 모르게 조종불능의 상황으로, 심하면 산산조각 낼 지도 모를 정도로 과열되어 버렸던 것이다. 기업들의 월드컵에 대한 ‘쏠림’, ‘물타기’, ‘묻지마 투자’도 예선전까지는 해당 기업들이 감당할 정도의 수준에서 이루어졌으나, 16강전부터는 그 전까지 관망하고 있던 기업들도 새롭게 뛰어들었을 테고, 이왕에 월드컵에 올인을 했던 기업들은 그 때까지의 투자 때문에라도 자신들의 한도를 넘어선 과다지출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기자의 요청을 받아 들여서 아쉬웠던 부분만을 얘기했다. 첫째는 국가 단위에서 브랜딩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무대를 잃었다, 그래서 국내 기업들의 해외 활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우리 연구소에서 스포츠마케팅에 정통한 한 친구는 월드컵과 올림픽의 차이를 ‘(국가간의) 경쟁’과 ‘(인류 공통의) 이상(理想)’으로 나누었다. 얼마 전 미국의 축구평론가라는 친구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월드컵과 올림픽 모두 ‘국가간의 경쟁’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있기는 하나, 월드컵은 올림픽에 비하여 희소성과 그에 따른 절박성으로 사람들을 더욱 열정적으로 만든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올림픽은 한 종목에서 실패해도 바로 그것을 메꿀만한 다른 종목의 경기가 열리는 데 비해서, 월드컵은 예선전부터 거의 모든 경기가 단판 승부의 성격을 띈다. 그래서 한 경기 한 경기에 부어지는 열기의 정도가, 즉 관심도와 몰입도가 아주 강한 무대가 펼쳐진다. 특히 세 경기의 결과를 통산하는 예선전에 비하여, 16강전부터는 사람들의 관심의 정도가 달라진다. 주인공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선수가 아니라 선수들이 대표하는 국가가 된다. 그런 국가의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아쉽게도 문전에서 놓친 것이다. 흔히 원산지 이미지라고 하는 국가브랜드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기업들의 초기단계에서의 인지나 이미지 인식 쌓기를 위한 노력을 덜어 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크게 해석할 수 있다.

 

      TV 뉴스에는 바로 위의 국가 브랜딩과 관련된 인터뷰만 나의 인터뷰로 화면에 나왔고, 16강 진출 무산이 특히 아쉬울 두 번째 부류는 기자의 멘트와 관련 기업의 당사자들의 직접 인터뷰를 통하여 전달했다. 월드컵 응원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산업이라고 칭할 수 있는 업종들이 바로 그들이다. 한국팀의 경기가 있는 날 밤이면 평소보다 매출이 두 배가 는다는 치킨, 50%에 가까운 신장세를 보인 맥주를 포함한 음료업계와 야식업체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PDP TV를 위주의 대형 TV도 월드컵 열기가 본격적으로 고조되면서 한 달 이상을 매주 매출 기록을 갱신해 왔는데, 그 가파른 매출신장세가 일순 꺽여 버리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 질 수 밖에 없다. 광고업계, 방송매체의 경우 월드컵의 수혜자이자, 이상열기를 만들어 낸 당사자 중의 하나로 지목을 받고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대로 예선전으로 기존의 계획은 십분 소화하였으며, 16강전부터는 보너스와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이전 월드컵과 비교하여 이번 월드컵에서는 많은 기업들이 경기 결과나 진행상황에 따른 각각 다른 광고물을 준비하여 방영하는 것이 광고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였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광고에서의 순발력과 품질이 높아졌다.

 

      마지막으로 당연히 가장 아쉬운 사람들은 직접 경기장에서 뛴 선수들이다. ‘태극전사’-이제 이 용어가 한국대표팀 선수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번 대회를 통하여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전사(戰士)’는 북한군에서 우리로 치면 이등병에 해당하는 계급의 명칭이고, 일반적으로 북한군 사병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해, 일부 단체에서 과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우려도 했는데, 잘 넘어갔다 -로서의 팀 성적도 물론이기는 하지만, 기업과 같은 경제단위로서 자신들을 선보일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많은 선수들이 놓친 것이다. 예선전 세 경기가 있기는 했지만, 주목도에서 차이가 난다. 일반 회사원에 비유하면, 이력서에 진하게 넣을 수 있는 한 줄을 잃어 차후 협상과정에서 자신의 몸값을 올릴 수 있는 지렛대 하나를 잃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프리미어리그나 해외의 다른 리그에 진출해 있는 선수들의 경우도 다음 차례의 이적이나 연봉협상에서 좀 더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잃은 것이 된다. 우리 대표 선수들, ‘태극전사’ 전체로 보면 100억원 이상의 돈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아쉬움은 뒤로 하고 냉철해 질 때이다. 수십 개의 광고물을 만들고, 그것들을 상황에 맞추어 순간적으로 끼워 넣으며, 내 표현으로 국회의원 선거 때의 조사회사 여론조사 담당자와 같은 모습으로 살았던, 열기에 휩싸여 불타 버리지 않을까 걱정되었던 우리 광고회사 친구들의 숨 한 번 돌리는 모습을 이제 보고 싶다. 그들이 숨 한 번 돌리려면 우리 플래닝(Planning) 쪽에서 월드컵 효과도 분석하고, 월드컵에 이어 할 얘기를 뽑아 내 주어야 한다. 서두에 쓴 대로 나의 후반전은 이제 시작하는 것이다. 자, 또 다시 출발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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