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毛擇東)으로 보는 인물 브랜드의 평가

 

      얼마 전 모일간지의 논설위원께서 쓰신 칼럼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실렸다.

 

(前略)노 대통령은 2003년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毛擇東)을 존경하는 인물로 꼽은 적이 있다. 마오는 1957년 "쇠는 산업의 쌀"이라며 미국의 철강 생산량을 따라잡자고 선언했다. 대약진운동의 시작이다. 1억 명 이상의 농민이 농기구를 녹여 쇠를 만드는 데 동원됐다. 두 해 연속 풍년이 들었지만 60년 중국에선 30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농기구와 일손이 부족해 논밭의 농작물은 그대로 썩어 갔다. 생산한 철도 밥솥에나 쓰는 무른 쇠뿐이었다. 마오는 그래도 "현명한 여성은 쌀 없이도 밥을 짓는다"며 고집을 부렸다. 중국 경제는 순식간에 거덜나 버렸다.

노 대통령은 왜 하필 이런 고약한 사람을 골라 역할 모델로 삼는 것일까. 한결같이 비장하고, 궁지에 몰릴수록 자기파괴적 성향을 내보인 인물들이다.(後略)

 

      마지막 문장에 '인물들'이라는 복수형이 된 것은 앞서서 이 논설위원께서 1984년부터 93년까지 캐나다 총리를 지낸 브라이언 멀로니(Brian Mulroney) 전 수상을 들어 얘기했기 때문이었다. 멀로니 수상에 대해서는 사실 잘 알지 못하겠다. 단지 노 대통령이 멀로니 수상을 들먹이기 시작하면서, 위의 글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비난이 쏟아졌고, 우리 나라 언론기관에 멀로니 수상에 관한 전문가가 그렇게 많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어, 정말 놀라웠다.

 

      마오쩌둥에 대해서는 공과(功過)가 중국에서까지 엇갈린다. 특히 모 논설위원께서 말씀하셨듯이,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의 참담한 실패와 잔인했던 문화혁명(文化革命)의 여파까지 겹쳐서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  그 자신이 문화대혁명의 외부적인 촉발자로 대표적인 공격 목표이기도 했고, 피해자로 손꼽히는 덩샤오핑(鄧小平)이 마오쩌둥의 사후 5년이 지나 주도하여, 1981년 중국공산당 11기 중앙위원회 제 6차 전체대회에서 발표한 줄여서 "역사결의(歷史決議)"라고 보통 부르는 것과, 또한 그와 관련한 업급을 통하여 덩샤오핑과 중국공산당은 공식적으로 마오쩌둥은 '과오(過誤)가 3인 반면, 공(功)은 7이고, 중국공산혁명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라고 정의를 내렸다. 물론 그들은 마오쩌둥의 과오와 관련하여 '문화대혁명은 어떤 의미에서도 혁명이나 사회적 진보가 아니'며, '적과 우리 편의 구별을 극도로 혼란시켰'으며, '당 조직이나 광범한 대중으로부터 이탈해 있었다'고 비판을 했다. 그리고 논설위원께서도 말씀하신 대약진운동에 대해서도 '마오쩌둥 지휘 하에 펼쳐진 경제정책으로 지나치게 높은 지표를 잡고, 지휘 체계가 엉망이었으며, 허풍을 주요 표징으로 하여 실패'했다고 정확하게 꼬집었다.

 

      마오쩌둥은 더더욱 그러하지만, 어떤 사람도 단 한 마디로 재단이 될 만큼 단순한 일면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브랜드의 정의"의 세 번째로 '나를 정의하는 한 단어 혹은 강력한 하나의 아이디어'라는 얘기를 했고, 그 예로 신입사원 면접 때, '한 마디로 당신을 정의하시오'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는 예를 들었다. 그렇다면 사람이란 그렇게 마오쩌둥을 포함하여 한 마디로 재단할 수 없는 복잡한 존재인데 한 단어로 정의하라는 것이 모순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네 가지 단계의 정의에서 두 번째부터는 당사자의 방향성과 의지가 들어간다는 얘기를 했다. 즉, 신입사원 면접에서 응시자가 선택하여 얘기하는 한 단어에는 자신이 장차 되고자 하는 목표와 그를 이루기 위한 각오가 함께 들어가 있는 것이 좋고, 심사위원들은 여러 다른 자료와 함께 그 단어의 적합성과 신빙성, 그리고 그것이 회사와 사업에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지를 판단하게 된다.

 

      외부에서 브랜드를 분석하고 정리할 사람에게도 이렇게 한 마디로 혹은 위에서처럼 한 방향으로 정리하는 것도 상당히 유용하기는 하다. 해당 제품이나 브랜드, 브랜드의 대상으로서 인물까지도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너무 흔한 속담으로 '시작이 반'이라고 하듯이, 일단 내가 대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파고 들어갈 수 있을지 가설과 같은 형태로 출발점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과 정리가 가능한 마오쩌둥과 같은 인물에 대한 평가를 위하여, 출발점으로 대약진운동으로 대표되는 경제 부문을 잡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그 쪽에서의 마오쩌둥의 치명적인 모습들을 그 사람의 상징이자, 정의로서 내려 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특히 그 불완전한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곧 다른 브랜드를 또 그와 연관하여 정의를 내려 버리니 더더욱 문제가 된다. 성공하는 브랜드를 만드는 방법 중의 하나로, '좁히고 넓혀라. 혹은 넓히고 좁혀하'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는 경제부문 그것도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좁혀 들어가 마오쩌둥을 정의하고 그것을 노무현 대통령까지로 넓히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좁게 파고 들어가 넓게 비교하며 종합적으로 분석,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일반화시키는 오류가 나타났다.
 

      덩샤오핑과 중국공산당의 1981년의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 등에 대한 역사결의는 역사적으로 아주 미묘한 시점에서 나왔다. 10년간에 걸친 문화대혁명의 상처와 한(恨)을 어루만지고 풀어주어야 하면서, 한 편으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중국공산혁명의 아버지이자 오랫동안 대중의 영웅으로 굳게 각인되어 있는 이미지의 마오쩌둥을 어떻게 조화롭게 평가를 내리는 가가 문제였다. 나는 '과오가 3, 공이 7'이라는 것이 미묘했던 상황의 타개를 위한 절충으로서만 나온 것이 아니고, 대체로 옳은 평가였다고 본다. 3으로서 7을 덮으려 해도 되지 않고, 7 때문에 3의 잘못을 눈감아 줄 수도 없는 것이다. 인물브랜드의 측면에서 보면, 그런 3과 7로 나누어 보는 것은 분석에 따른 정리의 단계로 보고, 한 단계 올려서 정말 브랜드의 세 번째 정의에 맞는 마오쩌둥을 정의할 수 있는 한 단어를 찾는 것이 그 다음 단계가 되지 않을까?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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