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주간지 기사 나도 봤어. 남자는 나이 들어 젊은여자와 계속 놀아나도 비난받기는커녕 화제가 되지만 여자는 나이 들면 비슷한 연배의 남자를 만날 수조차 없지. 누가 쳐다봐주지를 않으니까. 자연히 죽어라 일만 하게 되고 그러니 성공하지. 남자들은 성공한 여자를 부담스러워 하고. 결국 똑똑한데다 나이든 여자는 외로움에 떨며 살아갈 수밖에 없지."



주말을 보내려 찾았던 별장에서 늙은 남자친구(해리)를 대동한 딸(마린)과 맞부딪친 희곡작가 에리카.저녁 식탁에서 남자의 바람둥이 전력을 알아본 동생이 속사포처럼 쏟아붓는 얘기에 그만 들고 있던 접시를 떨어뜨립니다. 독신남으로 젊은 여자 편력을 일삼는 남자에 대한 비난이었지만 실은 이혼한 뒤 혼자 사는 에리카의 아픈 대목을 건드렸던 탓이지요.



방에서 들려오는 딸과 늙은 남자의 킥킥대는 소리에 어쩔 줄 모르던 에리카의 귀에 들려온 딸의 비명소리. 에리카는 심장발작으로 쓰러진 남자를 인공호흡으로 응급처치한 다음 병원에 데려갑니다. 63세 독신남과 56세 이혼녀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되지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의 소재는 파격적입니다. 젊은 여자와의 데이트를 위해 비아그라를 먹는 늙은남자와 폐경이 된 중년여성의 사랑, 딸의 애인이던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엄마, 20년 연상에게 "이런 감정 처음이에요"라고 말하는 젊고 잘생긴 남자 등.



드러난 소재만으로 보면 그다지 흥미롭지 않습니다. 게다가 등장인물 모두 돈 걱정 따윈 할 일 없는 부유층이라는 것도 흠을 잡고 시비를 걸자면 충분히 걸 수 있는 대목이구요.



그러나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타이틀에 맞게 시종일관 극장 안 사람들을 웃깁니다. 그것도 억지 웃음 혹은 쓴웃음이 아닌 즐겁고 상쾌한 웃음에 젖게 하지요. 얼굴과 손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이른바 `노땅`들이 남녀 주인공을 맡아 주책에 가까운 장면을 연출하는데도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0대 남녀 모두 "에이그, 쯧쯧"이 나닌 "후후, 하하"를 연발합니다.



젊은 관객들은 전혀 다른 세대의 삶을 얘기하는데도 지루하거나 답답해 하지 않고 극장문을 나설 때쯤 나름대로 감동적인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니 중년, 그것도 중년여성 관객의 경우는 어떻겠습니까.



낸시 마이어스라는 여성감독이 만든 이 영화엔 요즘 한국영화가 소리높여 외치는 민족의식도 의리도 없습니다. 그저 본인이 어떻게 느끼든 한물 갔음에 틀림없는 남녀의 현실적인 삶이 있지요.



영화는 남녀의 차이,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다가와 있는 나이듦의 징조, 세대간 격차를 있는 그대로 늘어놓습니다. 60대 남자는 40년동안 카사노바 행각을 자랑했어도 젊은여자와의 데이트를 위해 비아그라를 먹는 바람에 심장발작을 일으키고, 50대 여자는 스무살 짜리가 봐도 탐날만한 몸매를 가졌어도 식당 메뉴를 읽으려면 돋보기를 껴야 하지요.



여자가 30대만 돼도 안만난다던 남자는 분명 서른살 이상일 여의사로부터 "우리 아버지 같았으면"이란 말을 듣고 상처받고, 여자는 데이트를 신청한 남자가 서른여섯살이라는 말에"내가 20년 위네"라며 당황스런 표정을 짓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겐 같은 세대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공감대가 있고 나이든 사람 특유의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건강을 위해 시거를 압수하고, 남자는 젊은남자와 데이트하고 들어온 여자에게 "내숭 떠느라 배고플 테니 뭐좀 먹자"고 하지요.

남자의 약력을 인터넷에서 찾아본 여자는 젊은 여자들과 달리 현재의 부가 아닌 그것을 이룬 과정에 감탄합니다. 평소 4시간 이상 못자던 이들은 한 침대에서 8시간씩이나 정신없이 잤다는데 기절할 듯 놀라지요.



그런가하면 왜 한여름에 덥게 터틀넥을 입느냐는 물음에 여자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목주름이 드러나는 게 싫어서 그런다는 걸. 헤어진지 얼마 안돼 젊은 여자와 데이트하는 남자를 향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는 여자에게 남자는 "예전에 해놓은 약속이다. 여자는 왜 뭐든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느냐"고 반문하지만 여자는 울며 돌아섭니다.



에리카는 그러나 실연에 가슴아파 하면서도 엄마처럼 이혼할까봐 결혼하지 못하겠다는 딸에게 "상처가 무서워 사랑하지 않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며 진지하게 사랑할 것을 권하고, 틈만 나면 엉엉 소리쳐 울면서도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리와 헤어진 뒤 젊은 의사와 데이트를 하면서도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등 열심히 살아갑니다.



일란성 쌍둥이 딸들의 공작을 통해 이혼부부의 재결합과정을 그린 `패어런트 트립`과 광고회사 얘기를 다룬 `왓 위민 원트`에서 남녀와 세대간 차이, 여성의 감정에 주목했던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사랑할 때...`에서 또다시 여성들의 모습을 따뜻한 시각으로 잡아냅니다.



해리가 병원에 실려가던 날 나타난 젊은의사를 바라보는 세 여자의 제각각 다르지만 "아, 괜찮네"하는 눈빛, 그러면서도 엄마와 언니를 위해 "잘해보라"고 말하는 두 여자의 선선한 마음씀, 늙은 애인에 대한 엄마의 감정을 알아채곤 "나는 정리했다. 잠도 안잤다.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말하는 딸의 태도는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편견에 메스를 들이댑니다.



`사랑할 때...`에도 비판적 잣대를 들이댈 요소는 많습니다. 이혼하고 데이트도 제대로 못하던 여자가 갑자기 두 남자의 구애를 받는 것, 에리카가 처녀 빰치게 날씬한 것 등은 신데렐라 드라마의 또다른 조건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영화는 상품이 아닌지요. `사랑할 때...` 또한 할리우드 영화의 상업적 요소를 몽땅 끌어모은 오락성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그렇더라도 `사랑할 때...`엔 원제(`Something´s Gotta Give`: 얻는 만큼 주어야 하는)가 의미하는 것처럼 사랑의 책임과 가족의 소중함에 대한 강조,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중년여성의 삶에 대한 애정어린 눈길이 있습니다.



영화든 드라마든 `보는 동안 너무 가슴졸이거나 긴장하지 않고 다 본 다음 두고두고 뭔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작품이라고 믿습니다. 민족감정이든 의리든 사회문제든 정이든 관객의 몫으로 남겨져야지 "이게 이래. 넌 뭘 모르고 있는거야.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알아"라고 강요하는 건 원래 의도가 무엇이든 무섭고 싫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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