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깡 광고 유감

 

  설 연휴 기간 동안 아무래도 평소보다 차를 많이 몰고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거리에 나온 차도 평상시 보다 많아져서 길이 막혀 차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줄곧 라디오 방송을 듣게 되니, 흔히 접하기 힘들었던 라디오 광고를 몰아서 듣게 되었다. 라디오 광고에 관해서는 꼭 10년 전에 일반 사원에서 대리로 진급하여 승진교육을 받을 당시의 강사 선생님의 말씀이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 광고계 전반에 걸친 비판과 힐난에 우리에게 주는 경계를 섞어서 말씀을 하셨던 그 분의 요지는 TV, 라디오, 신문이 광고 전달 매체로서의 성격이 각각 다른데 왜 똑 같은 광고물을 그냥 각각의 매체에 싣느냐는 것이었다.

 

  그 즈음해서 내가 실소를 터뜨리며 기가 막혀 하던 광고가 있어서 강의 내용이 아주 실감나게 다가왔었다. 기업체와 브랜드 명을 빼고 광고 내용은 하나도 빠짐없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데 고무장갑 광고였다. TV광고를 먼저 보았는데, 몇몇 주부들이 모여서 'XX고무장갑이 정말 질기고 쎄대'하면서 웅성웅성 수다 비슷하게 떠는 가운데, 주인공인 탤런트 김형자 씨가 '그래, 정말 그렇게 쎄단 말이야'하면서 예전 프라이드 승용차 트렁크로 그 고무장갑을 찍어서 끌어 당기는데 고무장갑은 놀랍게도 그냥 늘어나기만 할 뿐 버티는 것이었다. 김형자 씨 포함해서 모든 주부 아주머니들이 손뼉 비슷하게 치면서 'XX고무장갑 정말 쎄네'하면서 광고를 마무리한다. 지하철인지 시내버스인지 역시 고무장갑을 팔러 들어온 아저씨가 손잡이에 고무장갑을 매달고 본인이 매달리는 시범을 보여 준 것이 기억에 선명하여 더욱 프라이드 승용차를 동원한 시범이 인상적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듣게 된 그 고무장갑의 라디오 광고물은 놀랍게도 TV CF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바로 위에 얘기한 김형자 씨를 포함한 아주머니들의 웅성거리는 대사들만 광고에 나오고, 중간의 프라이드 승용차를 이용한 시범 부분은 승용차 소음조차 들리지 않고, 아무 소리 없이 몇 초가 지나간다. 그 귀중한 몇 초가!

 

  이번 연휴 기간 동안 들은 라디오 광고에서도 이런 관행(?)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새우깡' 광고였다. 연예계의 흔치 않은 잉꼬부부로 소문난 이재룡과 유호정 부부가 출연하여 화목한 가정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연출했다. 깜찍한 여자 꼬마 애를 껴안으며 아빠가 "우리 딸, 누구 닮아 이렇게 예뻐?!"하는 딸 자식 둔 부모가 흔히 할 수 있는 질문에 "엄마"하고 바로 대답하는 딸과 그 대답에 괜히 약간 삐진 척하는 아빠에게 몇발 짝 떨어져 소파에 있는 엄마가 그 이유를 얘기해 준다. "그럼, 엄마도 새우깡 먹고 자랐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새우깡을 먹으면서. 그러고 보니 정확하게 확인을 하지는 못했는데, 처음 꼬마가 아빠에게 안기는 장면에서 아빠 입에 새우깡을 넣어 준 것 같기도 하다. 가족 모두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대를 이어 즐겨 왔던 우리 생활 속의, 그리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 주는 제품으로서 다른 경쟁 제품들이 따라 올 수 없는 새우깡만의 장점을 확실하게 보여 준 광고이다.

 

  브랜드의 등급을 결정하는 데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을 수 있다. 인터브랜드(Interbrand)사와 같이 금액으로 환산한 브랜드 가치를 가지고 따질 수도 있고, 비슷한 다른 제품에 비해서 높은 가격을 받는 소위 가격 프리미움이란 것을 가지고 브랜드의 파워를 얘기하기도 한다. 비슷한 제품이지만 소비자들이 무언가 경쟁사의 제품들과는 다른 심리적인 혜택이나 차별점을 느껴서 구매하도록 만드는 것이 또한 브랜드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측면에서 나는 우리 나라의 과자와 스낵 부문 브랜드에서의 최고봉으로 오리온 쵸코파이와 농심 새우깡을 든다. , 소비자들은 그냥 입이 심심하거나 배가 출출할 때는 아무 쵸코파이를 먹을 수 있어도, 친구와 나누어 먹거나 친구의 생일에 성냥개비라도 불붙여 놓고 축하할 때는 아무래도 '정(情)'이라는 단어와 붙어 있는 오리온 쵸코파이를 써야 제 맛이 날 것 같다고 생각을 한다. 우리 아이도 그랬지만, 아기가 가장 먼저 접하는 과자가 아마 많은 집안에서 새우깡이 아닐까 싶다. 철 없고 괜히 친구들에게 술로 터프함을 뻐기고 싶던 시절, 실제 돈이 모자라기도 했지만 소주에는 새우깡이 제 격이라며 들이키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 다른 회사들의 소위 '유사(類似)', '짝퉁' 새우깡이 들어설 틈이란 없다. 그런 것이 바로 브랜드의 힘이다. 말이 나온 김에 새우깡과 같은 농심 계열의 '신라면'은 거의 그런 대열에 들어가 있었으나, 하나 부족한 것이 있다. 바로 '원조(元祖)', '최초', 영어로 'Originality'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독점에 가까운 점유율을 누렸으나, 신라면에 없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삼양라면이 전열을 정비하고 그 아픈 구석을 찌르고 나오자 격전을 벌일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접어든 것이다.

 

  새우깡도 TV CF를 딱 한 부분만 빼고는 그대로 라디오로 옮겼다. 이재룡, 유호정과 같은 실제 부부라는 강점을 지닌 빅 모델(Big model)을 기용하고, TV 광고량이 뒷받침되고, 무엇보다도 기존의 브랜드 파워에 힘입어 새우깡 광고는 TV와 라디오 간의 상호보완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고,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딱 한 부분 다르다고 하는 부분이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엄마도....'하는 유호정의 멘트가 끝나고 TV에서는 '파칭공법으로 더욱 더 새로워진 새우깡'이라는 자막이 뜬다. 라디오에서는 자막을 띄울 수 없으므로 이것을 여자 성우의 나레이션으로 처리했다. 따뜻한 가정과 거기서 세대를 넘나들며 이어 주는 새우깡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비추어주고 나서 왜 파칭공법이라는 딱딱한 용어가 뜬금없이 나오는 지 모르겠다. 파칭공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우리 생활 속에 가족처럼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는 새우깡에 그런 어렵고 그래서 낯선 제조법이 뒤에 있다니 뭔가 괜히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TV광고의 자막은 그래도 앞서 가정의 화목한 모습에 묻혀서 별 큰 주목을 끌지 않고 넘어가는 듯하다. 그렇지만 라디오광고의 나레이션은 듣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들리는 '강제된(Forced)' 메시지이다. 내 자신의 새우깡에 얽힌 가정에서의 추억들을 생각하며 입가에 띄운 미소를 일거에 덮어 버리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어떤 연유로 그 생뚱맞은 카피가 새우깡 광고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경쟁사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기술 부문에서도 역시 새우깡이 앞서 가는 리더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줄 수 있는 구체적인 사실이고, 자칫 시대에 뒤떨어 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새우깡의 이미지에 새로움을 주입시켜 줄 수 있는 요소라고 농심 광고주 측에서 생각하고 밀어붙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해가 가지 않는 바 아니나, 최소한 매체의 특성을 고려했어야 했다. TV에서 살짝 넘어가게 처리하고, 신문이나 잡지 광고를 통하여 자랑스럽지만 소비자에게는 생소하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공법을 익숙하게 만들었어야지, 바로 라디오에서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전체 광고의 짜임새나 출발점에서부터 깔려 있는 브랜드에 대한 자신감과 그 표출하는 방법 등을 고려하면, 그 한 줄의 카피는 '옥의 티' 수준이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제품 브랜드로서 동종 업계의 종사자로서 다른 제품보다는 한결 높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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