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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 만들기와 시회(詩會)의 추억

신조어 만들기와 시회(詩會)의 추억

 

      몇 년 전에 스승의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우리 동양사학과 82학번 지도교수이셨던 선생님을 모시고 술자리를 갖은 적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오신다고 하니 항상 모임 시작 후 한 시간이나 지나야 겨우 3-4명 모이던 자리가 제 시간 맞춰 채워지고, 14명이라는 기록적인 인원이 모이는 높은 출석률을 기록했다. 언론계에 있다는 친구들만 다 빠져, 한국언론에 대한 비판으로 전채(前菜)가 차려졌다.

 

      왜 우리가 진작 이런 자리를 가지지 못했나 할 정도로 선생님께서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동양화 풍의 음양 조화에 초점을 맞춘 깔끔한 자수 액자를 선물로 드리니까 따님 결혼선물로 주겠다면서 또 좋아하시고, 원래 말씀이 약간 많으신 분이었지만, 더욱 더 요즘의 시사, 정치를 중국고대사와 결부시켜 열강을 하셨고, 우리도 대학 때는 그러지 않았으면서 열심히 듣고 스스로의 의견도 개진하여 선생님과 토론을 벌이는 그런 우수한 학생들로 변해 있었다.

 

      1차를 끝내고 시민운동을 하는 여자 친구 하나가 자신의 사무실에 2차를 마련해 놓았다면서 이끌었다. 예전에 나를 포함한 몇몇 친구가 그렇게 끌려갔다가 시민단체 입회원서 쓰고 회비 내고 강의 듣다가 돌아온 기억이 있어 완강히 저항을 했지만, 선생님께서 이미 여자 친구의 손에 이끌려 방향을 잡고, 넘어가 버리셨으니….

 

      인사동의 어느 오래 된 관공서 건물 같은 곳에 위치한 사무실은 온돌방처럼 되어 있었다. 거기서 그 친구는 맹자(孟子) 강의도 하고, 애들 예절교육도 다른 운동과 함께 한다고 했다. 다기(茶器)가 얌전히 마련이 되어 있었고 앉은뱅이 넓은 책상에 지묵(紙墨)이 가지런히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그 곳의 주인인 친구가 선생님께 우리 82학번들을 위한 휘호를 부탁 드리는 것이었다. 몇 번 사양하시더니 선생님께서 제안을 하셨다. 당신께서 한 자를 먼저 쓸 터이니 한 명씩 이어서 써나가자. 선생님께서 처음 쓰신 자는 ‘동녁 동(東)’. 여러 가지로 해석 할 수 있지만, ‘동양사학과’의 동으로 다들 은연중에 합의했다. 이어서 한 친구가 ‘별 성(星)’ 그리고 중간 휴지기도 없이 다른 친구가 ‘밝을 명(明)’을 썼다. 여기서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동쪽의 별이 밝게 빛나네’라는 곧이 곧 대로의 것부터, ‘동양사학과를 나온 인물(별)들이 빛나네’ 혹은 ‘동아시아가 세상을 비추네’라는 식까지. 뒤를 이은 친구가 ‘불사(不死)’를 써넣으며 오언절구(五言絶句)가 되면서, ‘동양사학과의 별들은 밝게 빛나 결코 사그러지지 않으리’라는 해석이 자리를 잡았다.

 

      한 친구가 ‘불사’라는 두 글자를 쓰며 자수 제한의 벽을 없애니, 그 다음 친구가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썼다. 그냥 나온 것이 아니고, 과사무실의 벽에 걸린 액자의 글이었다. 다음이 내 차례라 이제 칠언절구로 가자며, ‘상선약수’에 ‘덕불고(德不孤)’를 맞추었다. ‘빼어난 것은 물과 같으니, 덕이 있어 외롭지 않으리’. 충청도에서 어릴 때 한문을 공부했다는 친구가 우리 중에 가장 수려한 붓글씨를 뽐내며 이었다. ‘사은만공(師恩滿空)’. 그 친구는 묵묵히 있고, 해석을 놓고 또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선생님의 은혜로 우리 빈 것을 가득 채웠네’도 나왔고, ‘선생님의 은혜는 어느 빈 곳도 가득 채우네’ 등등. 그렇게 뜻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을 보시던 선생님께서 우리를 물리치시며 칠언을 맞추셨다. ‘불감당(不敢當)-아이고, 나는 감당을 못하겠다!’

 

      그렇게 물이 오르신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제자들에게 주고 싶은 말씀들을 써주셨고, 중간에 선생님께서 해석해 주시는 부분에 대해서 반박도 하는 학교 때 이렇게들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열띤 수업이 이어졌다. 선생님과 동학(同學)들과 한 기쁨도 기쁨이지만, 예전 선비들 노는 재미가 이런 것이었구나 체험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도 동양사를 하신다면서, 이제까지 한 번도 그렇게 시를 지으며 놀아보지 못해, 자리를 차린 우리들에게 부끄럽다는 정말 ‘불감당’한 말씀까지 하셨다.

 

      얼마 전 광고하는 친구들이 만난 술자리에서 ‘액티즌(Actizen)’이란 신조어를 만들었다면서 자랑스러워하면서, 다른 친구가 이미 쓰이고 있는 단어라 반박하며, 그 단어가 쓰이고 있는지 여부로 약간의 말싸움이 벌어졌다. 한 친구가 2004년의 대표적인 신조어로 뽑혔다는 비록 연도이기는 하지만 숫자를 거론하면서 액티즌은 이미 신조어 단계를 넘어선 것으로 합의되었다. 실제로 액티즌은 국립국어원에서 정리한 2004년의 신조어에 자랑스럽게 올려져 있다. 한 친구가 다른 신조어로 비슷한 발음의 ‘앤티즌(Antizen)’이란 단어를 가지고 나왔다. 문자 그대로 누군가 혹은 어떤 집단에 대한 앤티 활동을 열심히 펼치는 넷티즌 혹은 사람들이란 뜻이었다. 그렇다면 그 반대로 ‘팬티즌(Fantizen)은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매니어(Mania)에서 유래했다는 ‘매니즌(Manizen)’도 나왔지만, 발음상 ‘팬티즌’이 더욱 많은 표를 얻었다. 앤티즌까지 가지는 않지만, 매사에 냉소적인 ‘시니컬(Cynical)’로부터 ‘시니즌(Cynizen)’도 나왔는데, 역시 매니즌과 비슷한 반응을 얻었다.

 

      이런 식의 네티즌(Netizen)으로부터 시작한 신조어의 대표격은 ‘섹티즌(Sextizen)’일 것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했다. 그렇게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자주 들르거나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이트에 따라서, 연예계를 중심으로 하는 ‘엔티즌(Entizen)’, 연예 중에서 영화를 집중적으로 파고 인터넷을 통하여 영화 정보를 파악하고 의견을 올리는 ‘무비즌(Moviezen)’, 정치 분야에 열을 올리는 ‘폴리즌(Polizen)’, 외국 사정에 관심이 많고 그 얘기를 하기 좋아하는 ‘글로즌(Glozen)’이 뒤를 이었다. 이렇게 서로 하나씩 단어 만들기를 하다보니, 어떤 분야든지 갖다가 붙이면 신조어가 성립될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광고회사에서 트렌드를 설명한다는 미명하에 신조어를 많이도 만들어 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이런 신조어를 양산하게 만드는 큰 이유이다. 약간 긍정적으로 변명을 한다면 새로운 유형의 그룹이나 현상이 출현하는데 예전과는 다른 그들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새로운 말들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신조어들이 너무나도 표피적이고 직설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여러 가지의 해석이 나오면서 큰 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어(詩語)와 같은 그런 신조어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 트렌드라는 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빛이 겉으로 보이는 현상을 꿰뚫는 힘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안광지배철(眼光紙背撤)’하듯이 트렌드의 뒤를 꿰뚫는 눈빛을 키우자!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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