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봄날 때 아닌 폭설 앞에서

갑작스런 눈 때문이었을까요. 대학신문에서 `한국의 퀴리부인을 꿈꾼다`라는 제목을 보고 왈칵 눈물이 쏟아진 것은. `새내기 특집` 가운데 화학과 04학번 여학생의 포부를 옮긴 것이었는데 아마 옛꿈이 생각나서였겠지요.

사는데 찌들어 잃은 지 오래 됐지만 저도 한때 `한국의 퀴리부인`을 꿈꿨었거든요.그냥 퀴리부인 정도가 아니라 `글도 잘 써서 노벨문학상과 화학상을 함께 받는` 퀴리부인이 되고 싶었지요. 고등학교 때 이과였고 화학을 상당히 잘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극복하고 공부에 모든 걸 걸만큼 용기도 노력도 부족했던 탓이겠지요. 꿈 근처에도 못가본 건. 원했던 학과에 떨어지고, 주위의 모든 여건은 대학 입학조차 포기하라고 대들고.. 겨우 들어간 대학에서 그야말로 `자신감에 가득찬 행복한 아이들`을 보면서 느꼈던 당혹감과 소외감은 재수생 시절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어리석었던 건, 그 상황을 `남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걸로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에 대한 원망과 그에 따른 아웃사이더적 삶으로 대학생활을 마친 것이지요. 돌아보면 후회뿐이지만,당시 어린 제가 뭘 알았겠습니까. 그저 내편이 아닌 세상에 대한 분노만 가득했지요.

그리고 어언 30여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온갖 핑계를 대며 어영부영 지냈던데 대한 반성을 겸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요. “세상을 이기진 못할지언정 지지는 말아야지” 하면서요.

고단한 날이 이어질 때면, 어려서 읽은 온갖 위인전의 주인공들이 겪은 고난을 생각하면서 견디구요. 남들이 들으면 `픽` 하고 웃겠지만 저로선 그런 식으로라도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으면 안됐지요. 안그랬으면 그야말로 돈도 끈도 없으면서 `자아가 강한 여성`으로 태어나 온갖 데서 왕따 신세를 면하기 힘든 세상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른지요.

퀴리부인은커녕 평범한 학자도, 탁월한 글쟁이도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사람의 직장인으로서 아내와 엄마 노릇을 `대과 없이` 해올 수 있었던 건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에 조금이나마 다가가고 싶고 다가가야 한다는 욕망과 의무감 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3월에 내린, 때 아닌 눈으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된 까닭이겠지요. 좀체 들추고 싶지 않던 옛일들이 떠오르고, 지나치게 감상적이 된 건. 대학신문 곳곳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새내기들이 잃어버린 날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젖게 만든 까닭도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때 아닌 눈보라가 제아무리 길을 막아도 가야할 곳을 향해 가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니겠는지요. 하얀 눈으로 뒤덮인 약현성당과 조금 있으면 고층건물로 가려질 서소문공원을 보면서, 저는 다시 한번 다짐해 봅니다.

“핑계 대지 말아야지. 세상이, 시간이, 남들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촌음을 아껴 내가 세상과 시간과 남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뭔지 찾아내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지” 라고 말입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다 보면 하늘이 도우실지.

35년반의 언론인 생활 끝에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나이에 상관없이 지금이 화양연화요,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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