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로고는 언제 바꾸나?

 

      지난 11월 21일 미국의 대표적 기업의 하나인 AT&T의 새로운 로고가 발표되었다. 로고의 발표는 미국 남부 텍사스의 샌 안토니오(San Antonio)와 뉴 저지의 베드민스터(Bedminster) 두 장소에서 거행되었다. 샌 안토니오는 이번에 AT&T를 합병한 SBC의, 베드민스터는 바로 AT&T의 본부가 있는 곳이다. 사실 SBC는 AT&T의 자회사로 텍사스를 중심으로 한 남부 지역을 담당하다가 독립을 한 소위 'Baby Bell' 회사의 하나였는데, 예전의 모기업을 삼킨 격이 되었다.

 

      이렇게 두 개 이상의 회사가 합병을 하는 경우에 보통 합병을 하는 쪽의 로고로 통일되는데 비해서, 이번에는 합병을 당하는 AT&T의 로고로 통일이 되었다. 당연히 흡사 GE가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을 내세우듯이, 전화의 발명자인 알렉산더 그래함 벨(Alexandra Graham Bell)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AT&T의 통신 부문에서의 정통성과 역사적 유산, 대중적 인지도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대아그룹이 경남기업을 합병하면서 인지도와 역사가 오랜 경남기업으로 대아건설을 인수하는 형식을 취하며, 경남기업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비슷한 예라 하겠다.

 

이번의 로고 변경은 이런 SBC와 AT&T의 합병을 대내외에 알리는 가장 큰 이벤트 중의 하나였다. 로고는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예전의 지구를 본 뜬 AT&T 로고에 3차원 공간 효과를 주었고, AT&T 회사명을 소문자로 처리했다. 좀 더 시대에 맞게, 몸을 가볍게, 고객들에게 친밀하게 보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싶다. 당연하게도 합병, 특정 사업 부분의 처분 등으로 회사 구조가 바뀔 때가 아마 사명이나 로고를 바꾸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 하겠다.

 

      1990년대 초중반에 우리 나라 기업들에 로고를 바꾸는 것이 거의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그 불씨를 일으킨 것이 삼성그룹이었는데, 삼성은 1년 이상의 작업을 거쳐서 1993년 그룹 창립기념일에 현재의 오벌 삼성 로고와 새로이 제정한 경영이념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삼성은 국내에 안주하지 않고, 본격적인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어 세계 1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의지를 다졌다. 경영이념 자체가 완전히 새로이 만든 것이 아니고, 예전의 경영이념을 글로벌 버전으로 바꾼 것이었다. 예전 경영이념의 '인재제일(人材第一)'이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라는 기술을 강조하는 것으로 확대, 강화되었고, '합리추구(合理追求)'를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 창출'로 보다 구체화하였으며, '사업보국(事業報國)'이란 우리 나라의 제한적인 시공간에서 벗어나 '인류사회에 공헌'으로 무대를 넓혀서 잡았다. 이런 측면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한 도구로 기업 이름을 문자 그대로 형상화한 별 세 개의 삼성 예전 로고는 현대성과 해외 고객들의 이해도가 떨어졌고, 저가의 저급한 모방 기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변경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붐을 일으킬 정도로 우리 나라 다른 기업들이 로고 바꾸기의 대열에 합류한 것도 90년대 초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국제 무대 경쟁을 위한 무기를 갈고 닦는 과정의 하나인 측면이 크다. 기업의 경영전략의 근간, 경쟁의 무대 자체가 바뀌었을 때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대외적으로 알리고, 대내 공감대를 확보하기 위해서 로고를 바꾸는 경우도 삼성의 사례에서 보듯이 꽤 많다.

 

      사실 1993년에 발표된 이후 삼성 로고의 경우도 다시 확 바꾸자는 과격한 주장으로부터 약간의 변화를 주자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로고에 살짝 변화를 주는 문제를 가지고 친한 미국인 디자이너 친구 하나와 의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절대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펄쩍펄쩍 뛰는 것이었다. 나중에 그 친구가 자신이 현재의 삼성 로고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이후에도 가끔씩 로고의 변경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는 사정 하듯이 매달려 절대 어떤 변화도 주지 말라고 하는데, 그러면서 덧붙인 한 마디가 그의 간절한 눈빛과 함께 남아 있다. "(삼성 로고는)It's a classic."

 

      1999년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가 HP의 CEO로 취임했을 때, 그녀는 크게 세 가지 난관 혹은 편견이나 부정적인 시선을 극복해야 했다. 첫째는 여성이라는 데서 온 것으로, 아무리 남녀평등의 미국 사회라고 해도 그녀는 미국의 50대 기업의 수장을 맡은 최초의 여성으로, 신세계를 개척하면서 그에 따른 남성들의 회의적인 시선과 태도를 극복해야 했다. 둘째, 그녀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스타 CEO로서 지명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것이 루슨트 테크놀로지(Lucent Technology)를 맡으면서인데, 그녀가 HP로 옮길 때 쯤에는 이미 루슨트의 등등하던 기세가 꺾인 지 오래라, 심하게 얘기하면 '루슨트를 말아 먹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마지막으로는 HP 자체가 미국 기업으로는 상당히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갖추고 있어서, 소위 순혈주의에 바탕을 둔 바깥에서 영입된 인물에 대한 거부감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었고, 특히 창업자 가문에서 그녀에 대한 의구심과 반감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곤 했다. 첫번째 난관이야 시회문화적인 것이고, 둘째는 경영 실적으로 보여 줄 수 밖에 없는 문제로 어떻게 바로 고치거나 증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칼리 피오리나는 1999년 11월 세계적인 컴퓨터 산업 관련 전시회인 컴덱스(Comdex)에서 HP의 새로운 로고와 브랜드 캠페인을 발표했다. 기존의 'Hewlett Packard'라는 두 창업자의 풀네임을 소문자 hp로 줄이며 간결하고 현대적인 느낌이 들게 했는데, 무엇보다 'Invent'라는 로고에 붙은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창업자들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것을 확실하게 천명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HP의 정신적인 고향인 두 창업자가 처음 사업을 시작했던 차고의 정신을 잊지 말고 현대에 되살리자는 식의 광고가 함께 발표되면서, 세번째의 난관은 상당 부분 극복되었고, 창업자와의 반목도 수면 이하로 들어가 잠잠해졌다. 삼성의 경우도 비슷했지만, 새로운 경영 이념이나 철학을 알리는데, 로고의 변경은 가장 노출이 많이 되고, 가시적이며 극적인 효과가 있는 도구이다. 그래서 사실 로고나 슬로건이 변경되고 새로이 제정된 배경을 보면 CEO가 바뀌었을 때가 많다.
 

      로고를 새롭게 만들고, 발표하는 것은 그 이후에 실행되어야 할 작업에 비하면, 아주 손쉽고 저렴하다. 이번 AT&T의 경우, 새로운 로고를 바로 5만대 이상의 차량, 6천채 이상의 건물들, 4만벌 이상의 유니폼에 적용을 해야 한단다. 요금고지서에 적용하는 것도 고지서 자체에는 바로 새로운 로고가 인쇄되어 들어갔는데, 봉투에는 내년 2월부터나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새로운 로고를 적용하는 데는 AT&T의 경우 몇 억$ 단위의 예산이 소요될 것이다. LG-칼텍스가 GS 로고를 전국 주유소에, LG25가 GS25로 바뀌면서 전국의 편의점 현판 교체하는 비용에 새로운 로고를 알리는 커뮤니케이션 비용까지 생각해보라. 앞서 본 것과 같이 불가피하게,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로고를 바꾸어야 할 때도 분명히 있지만, 사후의 비용과 영향에 대한 문제점을 먼저 인식하고 로고 변경에 대해서 고려해야 할 것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