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효과를 내는 광고

입력 2005-11-16 09:24 수정 2005-11-16 09:24
역효과(逆效果)를 내는 광고

 

      2005년 3월에 은퇴한 미국 CBS의 유명한 앵커인 댄 래더(Dan Rather)가 쓴 'The American Dreams'라는 책을 읽으며 아침운동을 하고 있다. 원래 2001년 초에 나온 책인데, 우리로 치면 '인간시대'와 '성공시대'를 합쳐 놓은 듯한, 역경(逆境)을 뚫고 성공을 거둔, 이른바 어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의 삶을 되돌아 보는 TV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사연들을 묶어서 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역경'이 강력한 모티프이다 보니, 당연히 태어나고 자란 지역의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룬 경우가 많이 나온다. 흑인 슬럼가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의사가 되고, 영화감독이 되고, 한 달에 수십만 달러를 버는 증권업자가 된 친구 등 흑인이 가장 많이 나온다. 그 다음이 텍사스 농장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멕시칸 이민자들이다. 그리고 애팔래치아산맥을 포함한 남부의 피폐한 백인 지역도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물론 다른 지역의 백인들 얘기도 나오는데, 그들은 주로 마약, 술을 하는 부모에게 버려진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TV 프로그램에서 다루지 못했던 깊이 있는 부분을 책을 통하여 보여 주겠다는 댄 래더의 의도는 순수하게 본다. 변방의 텍사스에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아이비(Ivy)리그에 속한 명문 대학이 아니라 텍사스의 알려지지 않은 대학을 나왔지만, 어릴 때부터 기자의 꿈을 간직하면서 열심히 사니, 결국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던 그 꿈이 이루어졌다. 은퇴를 준비할 때가 되어, 꿈을 이룬 축복에 찬 자신의 살아온 나날을 반추하면서, 현재의 미국인들을 보니 그런 꿈이 없이 하루하루를 그저 허비하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꿈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그래서 이 나라 미국을 진정 미국답게 만드는 것이 그런 혜택을 누린 당사자로서 의무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판본은 2001년 911 직후인 2001년 11월에 나온 것인데, 9월 11일 그 날의 댄 래더의 행적과 함께, 이런 위기의 시대이기 때문에 이런 꿈이 더욱 소중하다는 댄 래더의 새로운 서문이 실려 있다.

 

      정말 초인적인 의지, 아니 꿈을 이루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댄 래더의 의도와는 다르게 내 눈에는 이 책이 미국 사회의 인종, 성(性), 계층에 대한 차별이 뿌리깊고 구조적으로 형성이 되어 있어, 그런 것들을 떨치기가 힘들고, 사상의 자유와 같은 것도 표현에 한계를 두는 억압 구조가 알게 모르게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뚜렷하게 보여 주는 책 같았다. 내가 굳이 삐딱하게 보려 한 것도 아닌데, 책을 읽다 보니, 진흙탕과 같은 환경에서 연꽃처럼 피어나 자기의 꿈을 이룬 이 책에서 다룬 사람들은 그야말로 극소수, 조사용어로 치면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아웃라이어(Outlier)들이고,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냥 댄 래더가 꿈도 없이 하루하루를 허비한다고 혀를 차지만, 그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존 자체가 힘겨운 형편이었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미국의 현실로 느껴졌다.

 

      루비린다(Rubylinda)라는 이름의 텍사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멕시코 이민노동자 3세대 여성이 부딪히는 현실을 보자. 루비린다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성적표를 거꾸로 들고 보고 있는 어머니를 놀리다가, 자기 어머니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린 마음이지만 어머니의 오랜 세월에 걸친 문맹으로서의 슬픔을 알게 된 루비린다는 나중에 선생님이 되어 어머니나 다른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겠다고 결심을 한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이 되니까, 학교에서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물어 보고 자시고 하는 절차도 없이, 루비린다를 이민자로만 구성된 반으로 집어 넣는다. 학교로 보면 이민자-주로 이민 노동자- 자녀들이 학력도 떨어지고, 어차피 대학을 갈 것도 아니고, 중고교를 중퇴하며 직업전선에 뛰어들거나, 미혼모 혹은 조혼을 하여 10대에 부모가 되어 가정을 꾸려 나가야 하는 실정이니, 그에 맞는 교육을 시키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우리로 치면 실과 교육만 시키는 그런 반이다. 그런데 딸을 자신과 같은 유랑노동의 쳇바퀴에서 빠져 나가도록 하고 싶던 루비린다의 아버지는 교장에게 찾아가서 강력하게 항의를 해서, 루비린다는 일반 반으로 돌아오고, 수월하게 고등학교까지 진학을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 대학교 준비반으로 들어가려 하니까, 상담교사가 '그런데 너는 이민자야(But you are a migrant)'라고 대놓고 얘기를 하더란다. '네 처지를 잘 생각해봐'하는 얘기이다.

 

      어쨌든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도 될 정도로 이 루비린다는 그런 편견과 실패한 조혼 생활 등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결국 초등학교 선생님도 되고,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 박사 과정에 있었다니 이제 박사도 땄을 것이다. 아무리 가난에 허덕이며 못산다고 하더라도, 할아버지 때부터 미국 땅에 발을 딛고 살아 온 이민 3세대이고, 죠지 부쉬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스페인어 연설까지 해대며 히스패닉 표를 얻기에 안간힘을 쓰는데도, 대부분의 히스패닉 계열은 그 계속 이민노동자로 취급받고, 미국인들 대다수는 그렇게 대우하는 것을 차별로 조차 느끼지 않게, 당연스럽게 그런 소외가 이루어지는 21세기의 미국의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내게는 더욱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미국과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1970년대초 팔레비 시절의 이란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가 겪는 차별과 어려움을 보고는, 역시 그녀가 그런 역경을 뚫고 어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것보다는,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중동인과 회교에 대한 반감과 적대감을 먼저 보게 되었다. 자신의 마당에 온건하게 걸프전에 반대한다는 팻말을 세웠다가 얼굴 없는 테러에 시달리고, 시 당국으로부터 고소를 당했지만 결국 승소한 어느 여인네의 이야기를 보면서는 미국 보수 매파가 얼마나 질기게 폭넓게 작은 지방에까지 형성되어 있는가를 실감했다. 미국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가 철저하게 지켜지는 '꿈의 나라'라는 댄 래더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역효과가 더 크게 났다.

 

      광고에서도 원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들에게 해석되어 역효과를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21세기에 접어들며 브랜드 전문가들에게는 '학살'을 당했다는 표현으로 얘기되는 GM의 올즈모빌(Oldsmobile)의 'Not your father's Oldsmobile'이란 캠페인이 있다. '당신 아버지가 타던 그런 올즈모빌이 아닙니다'하면서 새로워진 올즈모빌을 강조하려 카피에서 힘있게 대놓고 얘기를 했는데, 결국 올즈모빌의 노후한 이미지를 새삼스럽게 강력하게 연상시켜 버리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포드(Ford) 자동차의 'Have you driven Ford lately'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우리 나라에서 어쩌면 대사까지 똑같게 당시 모자동차 판매회사의 사장님이셨던 유명 소설가의 형님께서 직접 출연하셔서 '요즘 XX자동차 타보셨습니까?'하면서 광고를 하셨는데, 결과는 양쪽 모두 왜 두 회사의 자동차들을 타지 않았는지 이유를 다시금 각인을 시켰다. 올즈모빌의 경우 'Not'에 주목하기를 바랬는데, 'Father's'에, 포드와 한국의 모자동차의 경우는 물음표 '?'가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온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자신의 약점이라고 하는 것을 극복하려는 의욕이 너무 강해서, 결과적으로 그 약점이 더 부각되어 버린 것이다. 부정에 부정을 하다보니 듣는 사람에게는 긍정이 되어 버린 것이다.

 

      댄 래더의 책에는 처음에 어메리칸 드림에 관한 두 명의 인용구가 나온다. 우선 미국의 계관시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칼 샌드버그(Carl Sandburg)의 말씀.

'The Republic is a dream. Nothing happens unless first a dream.

(공화국은 꿈 그 자체이다. 애초에 꿈이 없었다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메리칸 드림'이라는 말 을 최초로 만들었다는 1900년대 초의 역사가인 제임스 트러슬로우 애덤스(James Truslow Adams)라는 사람의 어메리칸 드림의 정의를 들어보자.

'The dream of a land in which life should be better and richer and fuller for every man, with opportunity for each according to his ability or achievement

(각 개인의 능력이나 성취에 따라, 모든 사람이 더 좋고 풍요하고 알찬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 땅)'

 

      삐딱해진 내게 칼 샌드버그의 말은 '최초에 그 꿈을 함께 꾸지 않은 자들-백인 이외의 사람들-은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으리라'로 들린다. 그리고 애담스의 어메리칸 드림의 정의에서는 'according to', 바로 '각자 능력에 따라'에 강세가 주어져, 능력에 따른 생활 수준이나 계층 차이는 감수하라는 뉘앙스가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위의 실제 광고 사례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지나친 믿음과 의욕, 너무나도 꽉 짜여진 메시지 구조는 차라리 그것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 빈틈을 찾거나, 아예 일부러 곡해하거나, 회피하도록 만들기 쉽다. 스스로 생각하고, 재음미, 재생산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 글이 광고가 정말 고객의, 읽는 사람을 배려하고, 자신의 의도한 바를 제대로 전달하는 길이 될 것이다. 특히 요즘과 같은 개인 미디어의 시대에서는.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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