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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나타난 오삼계(吳三桂)

꿈에 나타난 오삼계(吳三桂)

 

      오삼계(吳三桂)는 중국 명말청초(明末淸初)의 장군이다. 명나라 말기에 북경에서 동쪽으로 600여리 떨어져 있는,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만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산해관(山海關)을 지키고 있었다. 한창 만주족들이 힘을 규합하며 일어서 명나라와의 크고 작은 싸움이 터지고 있던 때에, 명나라의 최고 정병 50만을 이끌고 최전방을 지키고 있던, 현재의 우리로 치면 1군 사령관과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던 장군이었다. 실물과 얼마나 비슷한지는 모르겠지만, 예전 어느 책에서 본 그림에 의하면 삼국지의 관우와 장비를 합해 놓은 듯한 적당히 길게 가슴까지 내려오는 수염에 약간 불룩한 배를 당당히 앞으로 내민 풍체가 인상적인 소설이나 중국 드라마에서 봄직한 고대 중국 장군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왕조들이 말기에 그렇듯이 학정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의 봉기가 잇따라 일어나고, 그 중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한 이자성(李自成)의 군대가 북경으로 진군하자, 그 때 명의 황제인 숭정제(崇禎帝)는 오삼계에게 속히 출병하여 북경을 방어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오삼계가 채 북경에 닿기 전에 이자성의 군대는 자금성으로 몰아쳐, 숭정제는 울림이 없는 구원의 종을 치다가 자금성 바로 밖의 경산(景山)으로 올라가 나무에 목을 매달고 자살을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오삼계는 청나라 군대에 투항하여, 청군의 선봉장으로 이자성군을 제압하고, 영력제(永曆帝)로 등극한 명나라 계왕(桂王)이 이끄는 저항세력을 운남(雲南)을 지나 현재의 미얀마까지 내쳐 달려 진압하여, 청나라의 중국 전토 평정의 일등 공신이 된다. 이러한 역할로 그는 외부 세력에 빌붙어 충성을 받치던 왕조를 배신한 대표적인 한간(漢奸)으로 일컬어지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숭정제의 자살 후 이자성이 그의 아버지와 가족들을 인질로 삼고, 명 왕조 자체가 전복되었다고 느껴서 이자성에게 투항하러 가다가,  그의 애첩인 진원원(陳圓圓)을 포악하기로 이름난 그의 휘하 장군에게 준 데 격분하여 이자성에 대한 복수심에서 청군에 투항하였다는 얘기도 있다. 조롱조로 당시의 한 시인이 ‘병사들은 (황제의 죽음에) 흰 상복을 입고 복수심을 불태웠지만, 오삼계는 진원원 때문에 분노가 치솟았다’고 노래하고, 시대극에서 이를 즐겨 다룸으로써, 사랑에 빠져 국가를 버린 인물로 항간에 자주 묘사되기도 한다.

 

      어쨌든 그는 청조로부터 평서친왕(平西親王)에 진봉(進封)되어 운남과 귀주(貴州) 지역의 독립 군주와 같은 지위를 굳힌다. 청조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그의 반독립정권은 중앙조정과 마찰을 빚을 수 밖에 없고, 그는 결국 내몰리듯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며 연호를 정하는 칭제건원(稱帝建元)을 하며, 청나라에 반대하고 명나라를 복원시키자는 이른바 ‘3藩의 난’을 일으키며 반청복명(反淸復明)의 기치를 올리나, 3개월 후 병으로 죽었고, 3년 후 그의 후계자인 손자까지 청군에 포위되어 자살을 함으로써 청조의 집권체제가 완성이 된다.

 

      이 오삼계가 얼마 전에 갑자기 나의 꿈에 나타났다. 어떤 연유와 과정을 거쳤는지도 모르게 홀연히 예전 그림보다 약간 홀쭉한 모습으로 무장의 갑옷을 입고 나타나서,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한다. 자신이 최초에 만주족에게 산해관의 문을 열어 준 것은 이자성의 반군으로 인하여 명이 멸망 지경에 이르고, 자금성이 파괴되며,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만주족이라도 끌어 들여서 이런 난리를 조금이라도 빨리 바로 잡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후에 최초로 청의 왕으로 봉해진 후에 3번의 난의 주역으로 청조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킨 것은, 명나라의 유신으로서 당연한 귀결로 나라를 안정시킨 연후에 명조를 다시 일으키려 한 것이란다. 그리고는 나타날 때처럼 홀연히 사라졌고, 나는 꿈에서 깨어나, 홀린 듯이 한참을 누워 있다, 헛웃음 몇 번 짓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나깨나 주공(周公) 말씀을 하시고, 그 이상적인 정치를 설파하고 자신이 살던 세상에 실현하려 한 공자님의 꿈에 주공이 나타나는 것이야, 공자님 말씀대로 꿈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고, 걱정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수 십년을 관동군만을 파고 들었고, ‘노몬한 사건’을 철저하게 파헤친 책인 “Nomonhan”의 저자로 유명한 앨빈 쿡스(Alvin D. Coox)가 그 책의 서문에서 꿈에 관동군 노병들을 자주 만난다고 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띄엄띄엄 손에 꼽을 정도로 책이나 드라마에서 주인공도 아닌 주변 인물로 힐끗힐끗이나 보았을 오삼계가 나의 꿈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어떻게 해석을 하여야 할까?

 

      굳이 따지자면 그 꿈을 꾸기 열흘 전쯤에 북경에 들렀을 때, 북경 북쪽 팔달령(八達嶺)의 만리장성을 보고 가라는 주재원 친구의 말에 만리장성보다는 산해관을 보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시내의 자금성 관람을 갔다 북쪽의 신무문(神武門)으로 나와 경산을 바라보며, 헉헉거리며 그 길을 빠져 나왔을 숭정제 얘기를 나누었었다. 당시 함께 갔던 친구에게 오삼계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아니 많은 사람들에게 산해관과 연결되어 연상되는 첫 번째 인물이 바로 오삼계일 것이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도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산해관 앞의 장군대(將軍臺) 얘기를 하면서 수만군사를 호령하던 오삼계의 일화를 들고 있다. 그리고 오삼계라는 고리를 통하여 숭정제와 산해관이 연결된다. 그 산해관과 숭정제의 기억이 머리 속에 깊이 남아 있다가, 역사상에 ‘한간’으로만 낙인이 찍힌 것이 마냥 억울하기만 한 오삼계의 혼을 타고 나타난 것은 아닐까?

 

      꿈에서의 오삼계의 변명에 일면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지만, 그가 난을 일으키며 발표한 반청격문(反淸激文)에서의 ‘홀로 산해관을 지켰으나 화살이 모두 떨어지고 병사들도 전멸하니, 피눈물을 흘리며 소리없이 괴로워했다’와 같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진실을 부정하는 모습은 그런 동정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싹을 없애 버린다. 아마 꿈에서 오삼계가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지 않고 자리를 좀 지켜 대화를 할 수 있었다면, 격문에서 특히 위에 인용한 부분에 대해서 물고 늘어졌을 것이다. 사실 청조가 대응하여 발표한 ‘토오격문(討吳激文)’이 오삼계 행동의 모순점을 조목조목 잘 지적하고 있다.

 

‘그대가 명 황실의 부흥을 그리고 원한다면, 옛날에 청이 산해관을 통해 중원으로 들어왔을 때에는 어찌 명 황실의 후손을 황제로 옹립하라는 상소를 올리지 않았는가? 게다가 청이 천하를 통일하고 나자 그대는 명 황실의 후예를 제거해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옛 주인에 대한 충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한 신하된 자로서 두 주인을 섬기고, 또 두 주인을 모두 배반했는데, 이를 과연 도의라고 할 수 있는가?’

 

      오삼계는 극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인물 브랜드이다. 산해관, 자금성과 경산과 같은 특정한 공간에서 바로 연상되고, 숭정제와 이자성, 강희제와 같은 인물들과 풍부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감성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진원원과 같은 기생과의 러브스토리와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묘사한 것과 같은 다양한 일화까지 지니고 있다. 그러나 역사라는 시장에서의 평가는 ‘한간’이라는 한 마디로 그 모든 연상과 일화가 귀결이 되어 버린다. 그가 청조에 맞서 반란을 일으킬 때,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의 일단만을 보였어도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고, 아마 역사의 큰 흐름 자체를 바꾸었을 지도 모른다. 작게는 내가 꿈에서 일어나 헛웃음 짓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렸을 지도 모른다.

 

      소비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화제가 되는 광고 하나, 기대 이상으로 많은 참가자들이 참석하는 행사 하나를 열고는 모든 것을 이룬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런 때일수록 근본적으로 자신의 브랜드가 어떠하고, 긴 세월에 걸쳐 어떤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 그리고 그런 일시적인 사건들이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는지, 바로 얼마만한 진실성을 지니고 있는지 더욱 면밀하게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 주러 오삼계가 나의 꿈에 나타난 것은 아닐까?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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