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사파리-싱가포르에서 배우는 마케팅/광고 수법

 

      올해 5월에 작고한 소설가 전병순 님의 "독신녀"라는 작품이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인 70년대말에 갑자기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광고가 아주 큰 역할을 했는데, 지금과 비슷하게 책 광고의 전형적인 유형으로 책 표지 그림이 실리고, 도발적인 헤드라인을 달았다.

 

"독신녀, 그녀는 이 밤 무엇을 하는가?"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께서 "독신녀" 소설에 대해서 혀를 차며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들 같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독신녀, 그녀는 이 밤 무엇을 하는가?'하는 문구에 혹해서 그 책이 베스트셀러까지 되었어. 내가 작가 분도 잘 아는데, 그냥 자신의 얘기를 소설식으로 쓴 것이고,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것과 같은 분이 아니에요. 그 독신녀는 밤에 무엇을 하나? 여러분과 똑같이 잠을 자요. 그런 광고에 현혹되지 마세요." 어떻게 하다가 그 소설 얘기가 수업 시간에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중에 알아보니까 소설 자체가 당시에 새롭게 출간된 것도 아니고 60년대 중반에 나온 것을 단행본 형식으로 재출간 한 것이었고, 나는 그 소설을 읽지 않았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여, 특히 선생님께서 언급하신 것에 더욱 더 몸이 달아 소설을 구해 본 친구들도 실망을 감추지 못했었다.

 

      사실 광고 문구로만 치면 거짓을 얘기한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잠재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구매로 이끄는데 기가 막힌 성공을 거둔 자랑스러운 성과라고 하겠다. 솔직히 1800년대 말 미국에서  진귀한 물품과 신기한 사람과 동물들을 전시하고, 구경시켜 큰 돈을 벌었던 피 티 바넘(P.T.Barnum)의 사기에 가까운 광고보다는 더욱 앞서 나간 형태이다. 바넘 자신이 고백한대로 그의 성공의 유일한 열쇠는 바로 사기, 거짓광고였다. 80세도 되지 않은 흑인 노파를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죠지 워싱턴의 유모 역할을 한 161세의 세계 최고령 노인으로 둔갑을 시키고, 큰 물고기에 원숭이 머리를 달아서 인어라고 속이고, 성장이 지극히 더딘 5살 아이를 남북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난쟁이 엄지장군(General Tom Thumb)으로 포장을 하였다. 지금과 같으면 허위광고로 바로 걸리고, 혹시 광고가 그대로 나갔다고 하더라도 관객들의 거센 항의와 환불 요구와 고발사태가 줄이었겠지만, 그런 심각한 사태 없이 미국 최고의 흥행사로 수 십년 영화를 누린 것을 보면, 광고하는 자의 편에서 보면 그 시절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그런 사기성 광고로 바넘은 지금까지 '광고의 천재'로 일컬어진다.

 

      하여간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를 통하여 구매라는 행동으로 유도하는 것이 어느 제품의 경우에 있어서는 광고의 필수적인 역할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관광이란 소재를 가지고 요리를 하는데 싱가포르 사람들은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 싱가포르에 가면 밤에 문을 여는 '나이트 사파리(Night Safari)'가 있다. 이것은 광고를 떠나서 제품의 용도를 넓힌 것으로 우선 뛰어난 점수를 줄만한 마케팅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파리 시설을 만들어 놓고 그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개척한 것이다. 잎차에서 티백, 차갑게 마시는 차로 페트병에 넣은 차까지 수요를 확대한 것과, 얼마 전에 얘기했던 오른손에 끼는 다이아몬드 반지 등과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더욱 현실적으로는 싱가포르의 사파리 자체가 다른 나라의 그것과 비교하여 별 특별한 것이 없다는 고민도 야간 개장 사파리에 한 몫을 한 것 같다. 사파리 자체를 광고하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의 나이트 사파리 광고가 관광 잡지 뿐만 아니라, 시내 버스, 정류장 등에 붙어서 연신 눈에 띄었다.

 

"세계 최초, 세계 유일의 나이트 사파리"

 

      세계 최초라는 것이야 사람을 끌만한 요소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세계 유일'은 한 번만 더 생각을 해 보면 그만큼 볼 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색다르고 재미가 있다면 왜 다른 곳에서 따라 하지 않았을까? 그런 의심과 다른 일정 때문에 우리는 유감인지 다행인지 나이트 사파리에 갈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런데 이후에 들은 경험자들의 평이 우리에게 위안이 되었다. 동물이라고는 가끔 가다가 도둑고양이나 보고 그 눈빛에 놀라는 요즘의 도시 사람들에게는 밤중에 어느 동물이 뛰어 나올지 모른다는 사실 자체로 으스스한 분위기가 색다른 맛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잠시, 곧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마냥 지루해진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보트 택시를 타고 싱가포르강을 헤쳐 가다가 '아시아문화박물관(Asia Civilizations Museum)'이란 건물을 보았다. 예전에 정부 기관이 들어 있었던 건물을 개조하여 박물관으로 꾸몄는데, 싱가포르의 역사로부터 시작하여, 아시아를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서아시아, 중동으로 나누어 각 지역의 문화적 상징물들을 전시하였다. 이것도 그냥 싱가포르박물관을 만든다면 전시물도 그렇고-싱가포르강 정화(淨化) 프로젝트를 마치고, 아기들이 목욕할 때 갖고 노는 오리인형 레이스를 벌였다는데, 거기서 일등을 한 오리인형이 전시되어 있을 정도로 역사적 유물은 상당히 빈약하다-, 관광자원으로서 관광객을 유치할만한 흡인력이 문제가 되어, 아예 통 크게 아시아 전체를 다룬 듯한 느낌을 준다. 예전에 이광요 수상에게 아주 긍정적으로 '작은 나라의 큰 정치인'이란 수식어를 붙여 준 적이 있었다. 아시아문화박물관도 아마 그런 맥락에서 기획된 것이 아닐까 싶다. 싱가포르라는 나라 자체가 아시아의 허브라는 개념 하에 기획된 것이니만큼 원래의 브랜드에 충실하다고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호기심을 자극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구심점으로, 곧 자신의 브랜드를 지키면서, 최대한 영역을 넓혀 자신의 무대로 만들어 내 것처럼 부풀리는 것이 바로 10여년만에 방문한 싱가포르를 마케팅과 광고라는 렌즈를 끼고 바라보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들이었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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