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과 김밥의 사랑방정식

입력 2004-03-02 09:07 수정 2004-03-02 09:07
`한사람 여기 또 그 곁에/ 둘이 서로 바라보며 웃네/ 먼훗날 위해 내미는 손/ 둘이 서로 마주잡고 웃네/ 한사람 곁에 또 한사람/ 둘이 좋아해/ 긴 세월 지나 마주 앉아/ 지난 일들 얘기하며 웃네/ 한사람 곁에 또 한사람/ 둘이 좋아해/ 한 사람 여기 또 그 곁에/ 둘이 서로 바라보면 웃네/ 지난 일들 얘기하며 웃네/ 둘이 서로 바라보며 웃네.`




`몇 십년 동안 서로 달리 살아온 우리/ 달라도 한참 달라 너무 피곤해/ 영화도 나는 멜로, 너는 액션. 난 피자, 너는 순두부/ 그래도 우린 하나 통한 게 있어. 김밥, 김밥을 좋아하잖아/ 언제나 김과 밥은 붙어 산다고 너무나 부러워 했지./ 잘 말아줘 잘 눌러줘. 밥알이 김에 달라 붙는것처럼 너에게 붙어 있을래


예전에 김밥 속에 단무지 하나 요샌 김치에 치즈 참치가/ 세상이 변하니까 김밥도 변해. 우리의 사랑도 변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세상이 우릴 갈라 놓을 때까지 영원히 사랑할거야 /(워어) 끝까지 붙어 있을래./ 날 안아줘 날 안아줘/ 옆구리 터져버린 저 김밥처럼/내 가슴 터질 때까지.


`




앞의 것은 오래 전 70년대에 나온 양희은의 `한 사람`, 뒤의 것은 2002년 히트한 혼성듀엣 자두의 3집 앨범 타이틀곡 `김밥`의 노랫말입니다. 둘 다 남녀의 사랑을 다룬 것이지만 가사의 내용과 표현방식은 달라도 참 많이 다르지요.




`한사람`이 은근하다면 `김밥`은 화끈합니다. `한사람`의 멜로디가 다소 느리고 부드러운데 비해 `김밥`은 빠르고 경쾌하구요. `한사람`이 시라면 `김밥`은 산문입니다. `한사람`에서 기껏해야 마주 보며 웃거나 손이나 잡던 사랑의 방식은 `김밥`에 오면 가슴이 터지도록 안아주기를 요구하고, 누가 뭐래도 꼭 붙어있겠다고 위협하는(?)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것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사랑엔 돈이 든다`지만 사랑에 드는 게 어디 돈뿐인가요. 사랑엔 서로 참고 견디는 노력이 더 듭니다. 서로 다른 남녀, 화성에서 왔을지 모르는 남자와 금성에서 온 것같은 여자가 만나 하루 이틀 아닌 긴 시간을 함께 지내자면 서로의 차이와 때로 도저히 부수거나 넘을 수 없을 것같은 벽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단점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필수적이니까요.




순간의 사랑이 아닌 영원한 사랑을 소망하는 두 노래엔 바로 이같은 `긴 사랑을 위한 필수조건`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얘기라도 전달방법은 확연히 구분되지요. `한사람`에서 사랑을 구하는 쪽은 먼 훗날을 위해 손 내밀고 긴 세월 지나 `지난 일들`을 웃으며 얘기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옛일을 얘기하면서 웃자는 대목엔 그 사이에 일어났거나 일어날 수도 있는 어떤 일도 감수하겠다거나 상관 않겠다는 의미가 감춰져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김밥`에 오면 이런 식의 생략이나 함축은 간 데 없습니다. 21세기초 이땅 청춘 남녀는 더이상 "말 안해도 알아. 네 마음이 내 마음이야. 모든 걸 이해하고 참고 받아들일 게"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린 다르다. 그것도 너무 달라 피곤할 지경"이라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김밥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찾아낸 다음 "김에 붙은 밥알처럼 붙어 있겠다. 설사 김 속에 들어가는 단무지가 세월 지나면서 치즈나 참치로 달라진 것처럼 사랑이 지금같지 않고 변하더라도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붙어 있겠다"고 선언하는 겁니다.




이쯤 되면 가사중 일부가 성적인 연상을 불러 일으킨다고 시비를 걸 게 아니라 `이혼 방지용 홍보가요`로 선정해 적극 보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법도 합니다. 게다가 `김밥`의 멜로디는 누구나 따라 부르기 쉽습니다. 노래를 처음 듣는 중장년층이 가사에 놀라 눈 크게 뜬 다음 배를 부여잡고 웃다가 후렴 부분을 큰 소리로 복창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지요.




젊은 시절 `한 사람`을 부르던 세대에게 `김밥`은 분명 충격입니다. `검은 장갑` 세대는 아마 더하겠지요. 그러나 이미 오래 전 `무기여 잘 있거라`(박상민)를 외치던 세대들은 `김밥`을 부르고 들으면서 누구도 중년 아줌마들처럼 웃지 않습니다. 우습지 않기 때문이지요.




가사의 선정성 문제로 논란이 일고 결국 방송금지 판정을 받은 `할 줄 알어`(박지윤)에 대해 `별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민감하게 야단들인가`라고 생각하는 세대에게 `김밥`은 그저 재미있는 정도에 불과해 보입니다. 따라서 그들 눈엔 "어쩜 어쩜"을 연발하는 아줌마들이 오히려 기이하게 여겨지겠지요.




`옆구리 터진 김밥처럼 가슴이 터질 때까지 안아달라`는 가사에 기절할 듯 놀라는 중장년층이나 `한사람`을 들으며 "아이구 지루해. 무슨 이런 교가같은"이라며 피식거리는 젊은층 모두 이상하지 않습니다. 송대관의 `유행가`가 말하듯 대중가요는 곧 `우리가 사는 세상 이야기`에 다름 아닐 테니까요. 때문에 세대마다 듣기만 해도 코끝 찡해지는 `그 시절 그 노래`를 지니는 것이겠지요.




1940년대생이 모이면 그저 `굳세어라 금순아` `대전발 0시 50분` `목포의 눈물`이 나와야 분위기가 풀어지고, 50년대생은 `고래사냥` `왜 불러`같은 송창식 노래나 양희은의 `아침이슬`, 이장희 한대수 배호 나훈아의 히트곡을 부르면서 편안해 하고, 386세대는 조용필의 `단발머리` `그 겨울의 찻집`, 김수희의 `남행열차` 윤수일의 `아파트`를 자신들의 노래라고 여깁니다.




세대별로 이처럼 노래가 다른 것은 각 세대가 겪은 시대상황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고, 대중문화의 코드 또한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뒤집으면 대중가요엔 그것이 탄생되고 퍼지고 주로 불리는 시대와 세상의 바닥에 깔린 보통사람들의 느낌과 생각, 어법, 자기표현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얘기겠구요.




`김밥`을 부르는 세대가 말 한마디 잘못하면 언제 어디로 끌려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던, 머리가 길다고 대낮에 횡단보도 옆 가로수에 쳐진 새끼줄 안에 붙잡혀 있던 `한사람` 세대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한사람` 세대가 모든 게 열린 듯하면서도 막혀 미칠 듯 답답해 하는 `김밥` 세대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일 테구요.




그래도 서로 다른 세대의 노래를 함께 듣고 불러보는 건 멀게만 느껴지는 상대방 정서의 바탕을 이해할 수 있는 방편이 아닐른지요. 대중가요, 유행가를 통해 잠시나마 자신이 겪지 못한 세상 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 자기 세대의 노래가 더 좋고 그 속의 정서에 더 마음이 끌릴 건 확실하지만 말입니다.***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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