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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과 나의 인연

북경과 나의 인연

 

      우리 나라 중국사학계를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이끌었다는 내 대학 시절의 스승이신 민두기 선생께서 1970년대 초에 홍콩에 학회 참석차 들르셨다가, 돌아오는 비행기 창을 통해 중국 광동(廣東) 지방의 해안선을 보셨단다. 대륙에서 나오는 연구 자료조차 얻기 힘들었던 그 때, 감히 중국 본토를 방문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 때인지라, 그 해안선만이라도 비행기의 작은 창을 통해 보는 것만으로도 선생은 감격하셔서, 소회를 어느 신문 지면을 통해 발표도 하시고, 강의 시간에 몇 차례 말씀도 하신 기억이 있다.

 

      민선생과 같은 정도의 감회는 아니더라도, 이번에 처음으로 북경을 방문하게 되면서 설레임을 어쩔 수 없었다. 사실 내가 북경에 처음으로 간다고 하면 주위에서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이상하게 북경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몇 차례 출장 일정을 잡았다가 취소시키기도 했고, 꼭 끼어야 되는 프로젝트에도 다른 시급한 일로 참가하지 못 한 경우도 몇 번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우연치 않게 딱히 특정한 제품의 광고와는 관계없이 북경의 제일기획 법인을 방문하여야 할 일이 생겨 생애 처음으로, 대학시절부터 꿈꾸던 북경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직접 북경을 방문할 기회가 그 동안 없었지만, 나름대로는 주로 학부에서의 수업 시간과 몇몇 책을 통하여 북경을 내 방식대로 그려 놓은 그림은 있었다. 

 

      대표적인 책이 김용옥 교수가 80년대 중반에 부인인 최영애 교수의 번역본에 본문만큼이나 긴 풀이와 같은 서문을 붙여 내놓았던, 만주족 출신으로 북경에서 태어나 북경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그린 소설가 라오서(老舍)의 “루어투어시앙쯔(駱駝祥子)”였다. 그 한글 책의 표지를 보면 ‘라오서 지음, 최영애 옮긴, 김용옥 풀음’으로 역할 구분을 명확히 했다. 하여간 나는 김용옥 선생이 풀은 글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주인공인 인력거꾼의 힘든 노동의 발자국을 따라 김용옥 선생의 해설과 함께 북경의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다닐 수 있었다.

 

      1970년대 초에 중국이 서구인들에게 살짝 문을 연 직후에 북경에서 적십자사에서 일한 독일인 남편을 따라 몇 년간을 산 미국 여성의 수기같은 형식의 “Peking Diary(북경일기)”란 책이, 또 나의 북경을 그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양식 피크닉 상자를 실은 이 여성의 자전거 뒤에 타고 ‘명 13릉’에도 가고,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닉슨(Nixon)이 평소의 그와는 어울리지 않게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띄며 거닌 팔달령 만리장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흘려 들었다. 가을에는 배추가 지천에 깔린 북경 시내를 돌아 다녔고, 주은래 수상에 대한 자연스러운 추모의 물결을 사인방(四人幇)이 억누르며 반정부집회 성격으로 변한 1976년 청명절(淸明節)의 천안문 광장이란 역사적인 현장에도 가 보았다.

 

      비슷한 시기에 서구에서 중국으로 가서 오랜 세월을 그 곳에서 보냈던 중국계 여인, 잰 웡(Jan Wong)의 자서전 성격을 띈 책인 “Red China Blues(1996, Doubleday/Anchor Books in Canada)”도 북경의 구석구석을 내게 보여 준 책이었다. 유복한 중산층 가정의 중국계 캐나다인으로 태어나 60년대를 겪으면서 중국공산주의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당시의 중국으로 과감하게 유학을 떠난 잰 웡은 1970년대 초의 홍콩에서부터 북경에 이르는 길을 문화혁명 와중에 농촌 벽지로 갔던 학생들의 실제 생활상과 함께 이념이 앞섰던 북경대의 여러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리고 후에 기자가 된 잰 웡은 1989년 천안문사태를 지척의 대사관들이 몰려 있는 외교관구역에서 겪게 되었다. 나는 그녀를 따라 외교구역과 천안문을 숨가쁘게 오가며, 당시 그리고 이후 TV나 책을 통해 보았던 사진과 기사들을 그녀가 책에서 그렸던 것들과 대조해 보곤 했다.

 

      그런 곳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돌며, 내가 그렸던 마음 속의 지도와 실제의 모습을 면밀히 대조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역시 한 동안 자리를 잡고 함께 이 곳에서 숨을 쉬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여유가 있는 여행이라고 해도, 짧게 어느 곳에서 자신이 살 집을 마련하고, 생활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중국 입국 일정을 하루 당기라는 중국에서 사는 친구의 강권(?)에 못이기는 체 따라 하루의 여유 시간을 벌며, 나는 제일 먼저 ‘명13릉’을 갔다. 그 중 만력제의 릉인 ‘정릉-지하궁전’은 위에서 말한 서양 여인네의 책도 그렇고, 예전에 그 발굴기를 그린 “황릉의 비밀”이란 책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꼭 가보고 싶었다. 정릉 가는 길의 양 옆의 과수원과 지하궁전 올라 가는 완만한 숲이 바로 서양 여인네가 도시락을 까먹은 곳이었다.

 

      그리고 자금성을 갔다. 처음에는 천안문 광장에서, 뻔히 알고 갔어도 그 규모에 놀랐다가, 마지막에는 서태후가 주로 머무르고 식사도 하고 놀기도 했다는 고궁 안의 서궁(西宮)의 아기자기함이 서태후에 대한 전설과 같은 기억들과 함께 살아나서 즐거웠다. 황궁에서 절대권력을 수십년간 근세에 누린 마지막 인물이라서 그런지, 전시관이나 설명으로만 보면 자금성의 주인은 서태후였다. 워낙 서태후와 관련된 얘기를 많이 듣고, 사진이나 관련 물품을 많이 보다 보니 나중에는 서태후의 근엄한 사진을 보며 서태후와 성관계를 가졌다면서 그 소설로 책까지 내서 돈을 번 영국인 사기꾼 친구의 얼굴까지 떠울라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후 들른 북경대는 20세기 초 5.4운동 시절부터 있었음직한 건물과 함께 근래 10여년 간에 지어진 최신의 건축물들이 여유있게 들어선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중국 공산당을 창립하고 이끌었던 이대교, 진독수와 같은 교수들의 모습과 함께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는 모택동의 모습도 그려졌고, 마지막에는 그 호수에서 산책을 즐겼다는 북경대 유학 시절의 내 처(妻)의 모습까지 선명하게 그릴 수 있었다.

 

      북경과 나와는 이 글의 맨 처음에 얘기했던 것처럼, 여느 보통의 사람보다는 그 관계가 깊다면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관계 자체로는 누구든 개인적으로 북경과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는 부분을, 북경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주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대장금’이 북경 아니 중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하는 만큼 소위 ‘한류’의 스타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발자취를 쫓는 북경 관광을 기획할 수도 있고, 중국 영화 장면을 따라서 시내를 나눌 수도 있다.

 

      만약에 북경관광을 위한 광고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북경의 관광 유물이나 유적지 소개는 어떤 책이나 어떤 관광회사나 똑 같은 정보를 담고 있고 알려 주고 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을 새로운 포장으로, 혹은 다르게 분류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의 흥미에 딱 맞는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아주 특별한 느낌과 함께 거부감을 주지 않게 포장하는 것. 그 진수 중의 하나를 북경 다음의 기착지였던 싱가폴에서 보았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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