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초절정푼수, 미워할 수 없는 그녀?

할리우드 영화의 주요인물은 백인남자 여자 흑인남자 그리고 간혹 동양인이 포함되는 체제로 구성됩니다. TV시리즈도 비슷하지요. 다인종국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아마. `과학수사대` `스타게이트`가 그렇고 `24시`도 그렇습니다. 백인남자가 주연이요 여자와 흑인남자는 조연인 수가 많지만, 남녀 혹은 흑백이 거의 같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과학수사대`는 백인 반장의 지휘 아래 여자 둘 백인남자와 흑인남자 각 1명의 구조로 이뤄져 있고, 스타게이트도 거의 같지요. 이들 드라마 속 여성의 역할은 남자의 보조 역할에 그치지 않습니다. 여전히 육체적 힘을 과시하는 남자가 리더이긴 하지만 여자도 들러리가 아닌 뚜렷하고 확실한 위치를 갖고 있지요.

이들은 뛰어난 `두뇌`뿐만 아니라 냉철한 판단력과 단호한 의지를 지닙니다. `과학수사대`의 캐서린은 스트립걸에서 수사관이 된 뒤 주위의 편견과 삐딱한 시선을 이겨냈고, 새라는 하버드대 출신으로 `천재` 소리를 듣지요. `스타게이트`의 카터소령은 천체물리학자로 스타게이트팀을 이끄는 오닐 대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기지와 정확한 판단력을 발휘해 구해냅니다.

이들이라고 여성적인 면을 지니지 않는 건 아닙니다. 딸을 키우는 캐서린은 사건에 아동이 개입되면 다소 감정적이 되고, 새라 또한 남자친구가 관여된 문제를 해결하면서 갈등을 겪지요. 그러나 이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보호받으려 하거나, 어려운 일을 기피하거나, 유아적 태도로 남자의 관심을 끌려 하거나, 개인적인 일에 얽혀 공사를 구분 못하지 않습니다.

여성에 관한한 미국도 별 수 없는 듯 캐서린은 승진에서 자주 밀리고, 새라 또한 남자들이 무심코 내뱉는 하는 말이나 행동에서 감지되는 남녀차별에 분노하지만 그런 일로 `일보다 여성성으로 승부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진 않습니다. 이들은 똑똑하고, 단호하고, 일을 사랑합니다.

여성들의 홀로서기는 영화에서 좀더 다양해집니다. `에일리언`과 `터뷸런스`(비행기 납치사건을 다룬 작품. 스튜어디스가 공중폭파를 막고 비행기와 승객을 구한다)에선 여주인공이 시종일관 문제를 혼자 해결하고, 시고니 위버의 `고백`에서 주인공은 범인의 자백을 받아낸 뒤 용서하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분노와 구원의 과정을 그려냅니다.

`돌레레스 클레이븐`의 주인공은 배우지 못하고 거칠고 꾸밀 줄 모르고 뚱뚱하다는 이유로 남편과 이웃에게 배척당하지만 어린 딸에 대한 남편의 성추행을 안 뒤 딸을 위해 남편을 실족사시킨 뒤 일생동안 `남편을 죽인 여자`라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감수합니다. 엄마를 증오하던 딸은 뒤늦게 엄마의 사랑을 깨닫지만 달라지는 건 별로 없지요.

현실은 아프지만 감추거나 환상으로 덮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달라졌다곤 해도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벽은 두껍고 보이지 않는 천장은 견고하기만 합니다. 여성에게 세상은 결코 녹록하지 않습니다.

여성은 이력서조차 제출하지 못하는 곳도 흔하고, 기껏 뽑는다는 게 정규직 임금의 절반에 훨씬 못미치는 비정규직이나 임시직인 수가 수두룩하지요. 남자가 대리로 진급할 때쯤이면 결혼과 출산에 따른 각종 압력으로 그만둬야 하기 일쑤고, 온갖 역경을 딛고 중견간부가 돼도 주위의 눈총에 시달리느라 죄인 아닌 죄인이 되기 십상입니다.

여성이 바깥세상에서 독립적 인간으로 우뚝 서려면 여성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실력을 기르고, 왕따 당하지 않도록 사회성을 익히고, 눈치를 보되 남의 비판에 주눅들지 않고, 조직과 남녀의 특성을 감안해 나가야 될 때와 물러설 때를 알고, 감정을 숨기면서 때를 기다릴 줄도 아는 조직인간으로서의 조건을 익혀야 하지요.

그런데도 한국의 TV드라마는 남자의 도움 없이 홀로 서보려는 여성은 `악녀`, 계모와 팥쥐(혹은 가난한 집안)의 구박을 벗어나려는 노력 없이 그저 눈물 흘리는 콩쥐는 `천사`라는 구도를 깨기는커녕 점점 더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천국의 계단`의 한정서는 두 남자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는(순수한 사랑에 무슨 조건이 있느냐고 하겠지만) 것 외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귀여운 여인`의 소연은 가난한데다 예쁘고 무작정 좋아한다는 이유로 남자의 마음을 뒤흔들지요. `발리에서 생긴 일`의 이수정은 한때 여행사 직원으로 억척맞게 일했다면서도 그런 의지는 어디 갔는지 술집과 노래방을 전전하면서 두 남자의 구애를 받습니다.

그런가하면 `흥부네 박 터졌네`의 미리는 직업도 없이 미용실이나 왔다갔다 하는가 하면 남자를 사촌에게 뺏기지 않겠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요. 그가 하는 일이라곤 떼쓰고, 요구하고, 연적을 모함하는 일뿐입니다. 그런데 `그래서` 사랑스럽고 인기도 있다는 겁니다.

” ….이들 못지 않게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연기자가 있다. 그간의 무거운 이미지를 벗고 초절정 푼수 연기를 펼치고 있는 탤런트 000이다. (중략) 그렇다고 악녀라 부르기에는 왠지 어색하다. 어린아이 투정 부리는 듯한 순진함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거나 괴로운 일이 있을 땐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엉엉` 목놓아 운다. ”

이쯤 되면 여자는 `얼빵해야` 정도로는 어림없는 셈입니다. 푼수 그것도 초절정푼수쯤 돼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얘기니까요. 두 남자가 모든 것, 심지어 목숨을 내놓을 만큼 사랑하는 여자가 되고 싶은 건 이 세상 모든 여자의 꿈일 겁니다. 내멋대로 하고 싶은 짓 다하고 그러고도 사랑받을 수 있는 역할 역시 꿈꿔볼 만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묻고 싶습니다. 울면서 기대기만 하는 여자, 아무 일도 안하면서 소비만 일삼는 여자가 정말 그렇게 사랑스러운지 말입니다. 오락과 대리만족, 일상탈출의 꿈이라는 TV의 기능을 무시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무능한 콩쥐로도 부족해 `째라`식 팥쥐까지 띄우는 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제가 아는 한 신데렐라는 없습니다. 결혼이야말로 끼리끼리 하니까요. 신화를 믿고 싶어하는 것까진 막을 수 없지만 신화에 매달리거나 몰두하게 만드는 건 개인과 사회 모두를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빠트리는 일에 다름 아니라고 믿습니다.너무 냉정하고 가혹한 얘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