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집 브랜드 송사(訟事)

입력 2005-09-11 18:06 수정 2005-09-11 18:06


개고기집 브랜드 송사(訟事)

 



     난 개고기를 무척 좋아한다. 개고기를 취급하는,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제대로 다루는 음식점이 많지 않고, 가격이 다른 음식과 비교해서는 상대적으로 비싸고, 음지에서 즐기는 사람들이 아직도 꽤 있어서 함께 즐길 사람이 역시 다른 음식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적어서 자주 먹지는 못하지만, 부러 기회를 만들고, 기회가 있으면 될 수 있는 한 놓치지 않고 즐기며, 항상 그럴 자세가 되어 있다.



 

     어렸을 때야 개고기인 줄도 모르면서, 그것을 즐기시는 어른들 옆에서 몇 점 얻어 먹은 것 밖에 없는 것 같고, 개고기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먹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것이 대학교 2학년 때였다. 그 시기에 시작했다는 데 대해서도 나는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정부에서 온갖 수단을 써서, 개고기 먹는 것을 억압하던 시기에 시작을 했던 것이다.



 

     88 서울올림픽이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을 지배하던 80년대 초부터, 정부는 외국인들의 혐오식품이라 하여 개고기, 즉 보신탕이란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는 식당들은 서울의 사대문 밖으로 나가서 영업을 해야 하고, '보신탕'이라는 이름 자체를 쓸 수 없다고 발표하며, 바로 조치를 취했다. 나중 항간의 얘기는 외국의 동물보호단체에서 한국에서 개고기를 계속 팔고 먹으면, 자국의 올림픽 참가를 못하게 하도록 운동을 하겠다는 으름장에 깜짝 놀란 정부가 취한 조치라고 한다. 이와 함께 정부 주도로 소위 '브루셀라균 파동'이란 것이 일어났다. 어느 과학자가 개고기에는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브루셀라균이 들어 있다는 발표를 한 것이다. 그 발표에서, 그리고 그것을 보도한 언론에서 미필적 고의로 슬쩍 빼놓은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1. 닭고기, 쇠고기 등 어느 고기에나 브루셀라균은 있다.

    2. 우리 나라에는 브루셀라균 때문에 발병하는 병을 지닌 개가 없었다.

    3. 브루셀라균으로 인한 병이 인간에게 전염되려면, 그 병에 걸린 개의

       고기 를 날 것으로 먹어야 한다

등등의 사실들이었다.



 

     실제로 브루셀라균으로 인해, 그것도 개고기에 든 브루셀라균으로 한국인들이 치명적인 병에 걸릴 확률은 제로라고 해도 무방한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학을 숭상하는 민족답게, 브루셀라균에 관한 발표가 나온 그 해, 개고기집들은 복날에도 정말 파리를 날렸다. 나는 아버지와 브루셀라 파동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정부의 혹세무민책에 저항한다는 말없는 공감 속에 당시 시골 장터 안의 개고기집을 갔었다. 등 뒤로 시장 상인들의 술렁거리는 소리와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었고, 주인까지도 깜짝 놀라 일어났다가, '꿈인가 생시인가'와 같은 표정으로 한동안 넋 놓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는 뒤늦은 인사를 하고, 바삐 식당 정리를 하면서 우리의 상을 봐주기 시작했다. 이 브루셀라 파동은 다음 해에는 바로 잠잠해졌지만, '보신탕 식당'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규제와 함께, '보양탕', '영양탕', '사철탕'이니 하는 새로운 단어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7년인지 88년인지가 가물가물하지만, 서울 서초동 서울교대역 일대가 법조타운으로 자리를 잡고, 삼풍아파트가 대단지로 들어서며 삼풍백화점이 서울의 새로운 고급 백화점으로 선풍을 일으킬 시점에, 그 부근에 새로 문을 연 개고기집이 괜찮다는 얘기를 듣고, 역시 아버지와 함께 갔다. 제법 우거진 등나무가 마당에 있고, 그 그늘 아래 그리고 그와 연결되어 차양 아래 야외 평상에 테이블들이 마련되어 있고, 널찍한 한옥 안에 역시 여유 있게 테이블들이 놓여져 있었다. 양은 별로 많지 않았지만, 수육이 깔끔하기 그지없게 작은 도마 위에 일식집 회 나오듯이 나왔다. 그것을 '도마고기'라고 불렀는데, 그 집이 최초로 그렇게 서빙을 했는지, '도마고기'라는 이름 자체를 자신들이 지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곧 업계의 거의 공식적인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가격이 조금 비싸기는 했지만, 당시까지의 개고기집과는 차별화한 모습의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 냈다. 북한산 계곡의 개고기집과 같은 분위기에 일식집같은 깔끔함의 조합이었다. 그 집의 이름이, 브랜드가 '향목(香木)'이었다. 값이 상당히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어른들 따라서, 선배들을 꼬드겨서 기회 닿는 대로 갔고, 그런 취향이 인근 사람들과 맞았는지 요즘으로 치면 전형적인 '대박집'이 되었다.



 

      성황 속에 2년여가 지나, 어느 날 그 곳에 직장 선배들과 또 들렸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낯 선 얼굴들이 많았고, 손님맞이하는 것부터, 음식까지 뭔가 내가 알고 있고 들렸던 향목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종업원이 조심스레 전달해주는 얘기에 의하면, 원래 집주인이 기존의 향목 운영하던 아저씨네를 내쫓고 본인이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단다. 쫓겨난 아저씨는 바로 위의 빌딩에 가게를 곧 열 예정이고, 자신도 그 집 문 열면 그 곳으로 합류를 할 계획이란다. 그 후에 원래 주인이 새로이 문을 연 곳에 들렀다. 역시 '향목'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비록 한옥 특유의 분위기는 없어도 음식 맛은 변하지 않은 예전의 그 향목이었다. 그 빌딩의 향목에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한옥 향목을 내려다 보며, 아저씨께서 저간의 사정을 설명을 한다. 세입자와 집주인 간의 전형적인 싸움 유형 중의 하나인데, 당시 양 집 간에 소송에 들어간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동안 그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향목이란 간판을 단 개고기집이 한옥과 빌딩으로 나누어져 있기는 했지만, 많은 손님들에게 혼란을 주었다. 장소를 정화하게 해준다고, '빌딩의 향목' 혹은 '한옥 향목'하면 차라리 쉬운데, '옛날 향목'이라고 얘기를 하면, '옛날 원래의 아저씨가 하는 빌딩 향목'인지, 원래 자리 잡은 '한옥 향목'인지 다시 한 번 확인을 해 했다. 그리고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는지라.



 

      재판이 얼마가 걸렸는지 확실치는 않으나, 어느 날 들려 보니 한옥에 '장안말'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고, 작은 글씨로 '(구)향목'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 작은 글씨도 소송에서 승소한 측에서 이의를 제기하여 통과가 되었는지, 아니면 자발적인 판단이었는지 곧 사라졌다. 결국 최초 향목의 개발자 아저씨만이 향목이라는 브랜드의 사용자로서 우뚝 섰고, 한옥은 오리고기집 등으로 몇 차례 품목을 바꾸더니 얼마 안 있어 한옥 자체를 헐고, 빌딩을 지었다. 승자 '향목'도 처음의 한옥이 주었던 분위기와 메뉴 및 서빙 형태가 주는 새로움이 다른 비슷한 경쟁자들의 출현으로 퇴색이 되어서인지, 줄곧 잘되기는 하였지만, 예전과 같은 활력을 보여 주지는 못했다.

 

      또 하나 향목이 고전을 한 데에는, 그렇게 송사가 말끔히 해결되고 새롭게 출발하려던 시점에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엄청난 악재를 만난 까닭도 있다. 운명의 그 날, 1995년 6월 29일, 지금 스스로 생각해도 믿기지 않지만 원래 향목에서 저녁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가 마지막 순간에 그 친구를 우리 집으로 불렀다. 우리 집으로 헐레벌떡 들어온 친구가 얼굴이 하얘진 채로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얘기를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했고, TV를 켜면서, 삼풍 쪽을 바라보니-당시 집에서는 삼풍백화점이 바로 보였다- 과연 먼지구름이 일고, 그 사이로 거짓말처럼 중간 부분이 사라진 백화점 건물이 보였다. 그러니 한동안 향목에 가기 힘든 것도 물리적, 심리적으로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이후 그래도 매년 한 차례씩 그 곳에 들르기만 하다가, 말복 즈음하여 딱 10년만에 다른 곳에서 오는 친구들과 향목에서 약속을 하여 갔다가, 향목이 완전히 문을 닫은 것을 발견했다. 내 한 시절의 추억과 함께 얽힌 한 브랜드의 씁쓸한 퇴장을 맛보는 기분이었다.



 

     향목이 문 닫은 것을 발견한 얼마 후, 브랜드 가치 평가를 중심으로 브랜드 전반에 관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이 예를 들면서, '향목'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관해서 질문을 하고 서로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 나니 당시 재판부의 자세한 판결이 궁금해졌다. 누가 승소를 했는지를 넘어서, 어떤 식으로 '향목'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평가하여, 어떻게 배상을 하라고 했을까? 가끔 브랜드 도용으로 역시 소송이 걸리는데, 소송을 거는 원고들은 어떤 계산으로 얼마를 배상하라 소송을 걸고, 또 재판부는 어떤 기준으로 배상금액을 결정하는지, 그런 것들을 우리 소위 브랜드 업계의 방법들과 비교해 보는 것도 대단히 재미있을 것 같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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