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올리언스의 기억

 

      1992년 6월초 자동차 유리는 물론이고 지붕까지 뚫고 들어오는 것처럼 눈부신 햇빛을 맞으며  처음으로 뉴올리언스라는 도시에 갔다. 플로리다주 남쪽 끝에 위치하여 쿠바와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푯말이 걸려 있고, 고양이들이 득실대는 헤밍웨이가 살던 집이 있는, 물가가 비싸기 그지 없던 키 웨스트(Key West)를 그 전날 오후 약간 늦게 출발했다. 열쇠 모양의 지형들이 연결되어 비치보이스의 코코모(Kokomo) 노래에도 나오는 플로리다 키(Florida Key)의 키 라르고(Key Largo)와 같은 지역을 지나 플로리다 중간의 늪 지대에 건설한 도로를 밤을 새워 지나게 되었다. 플로리다 도로 지도를 보면, 그 도로는 플로리다 반도를 대각선으로 가르며, 자 대고 그린 것처럼 정말 직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어차피 도로가 인간의 발걸음 자체가 거의 없던 곳에 '한 점과 다른 점을 잇는 가장 짧은 길은 직선이다'라는 명제를 증명하듯이 만든 길이다.

 

      그 밤의 운전은 무서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괴기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쭉 뻗은 길인데, 우리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제외하고는 사방에 인간의 자취가 있는 불씨는 찾아볼 수가 없이, 어디서 터지는지 모르는 번개만 계속 먼 데 앞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냥 바로 앞만 보고 달렸다. 그 길을 달리면서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총알을 맞고 죽은 사람들이 몇 있다는 소리를 들었고, 바로 전 달인 그 해 5월에도 그런 사고가 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점점이 민가가 도로변에 박혀 있었을 것이다. 쇠락한 집의 테라스에 앉아 물끄러미 지나가는 차 바라보다가, 심심함을 이기지 못하여 클레이 사격 연습하듯이 자동차 접시를 향하여 총 몇 방 쏘기도 하겠지. 그러나 설마 한밤중까지 밖으로 나와 야간사격을 즐길 자가 있겠나 하며 서로 위로와 믿음을 주려 애쓰며 말들을 주고 받지만 그럴 때마다 멀리서 번개 한 번씩 번쩍 때려 대는 밤이었다.

 

      그렇게 밤을 달려 걸프만 쪽의 해변도로를 타면서, 뒤쪽으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뉴욜리언즈 시내에 들어설 때는 이미 아침 9기사 넘어서 해가 조금씩 따갑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한바탕 괴기스런 밤을 지내, 온몸이 척척해진 느낌이 들어서 이른 시간이기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시내에 진입하기 전에 변두리의 눈에 띄는 모텔을 찾아 들어가, 샤워를 간단하게 하고, 그 때서야 배가 고프기 시작해 시내로 들어 갔다. 바로 프렌치 쿼터(French Quarter)로 가서, 설탕을 듬뿍 뿌린 베니에를 카페올래와 함께 먹고, 이 곳 저 곳 기웃거리며 강가로 가서 풀턴 증기선 유람선을 탔다. 지겹기 그지 없는 증기선 관광을 마치고, 술집들이 밀집해 있는 버번 스트리트에 들어섰다.

 

      저녁 무렵이 되어 거리의 가로등과 술집들이 불을 최대로 밝혔는데 그런 불빛보다는 흰 색 제복을 입은 수병의 무리들이 거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포레스터호라는 항공모함이 그 날 오전에 뉴올리언즈 항구에 들어와서 수천명의 수병들을 거리에 풀어 놓은 것이다. 몇 개월동안 땅에 발을 붙여 보지 못한 친구들을 환락가라면 전세계적으로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 뉴올리언즈 시내에 풀어 놓았으니 그 분위기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곳곳에서  수병들과 덩달아 흥분한 관광객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In the Navy' 노래를 불러 대고, 급기야 싸움판이 벌어지고, 바로 그 옆에서는 흑인 아이들이 모자 하나를 앞에 놓고 색스폰 연주를 하거나, 아크로바트에 가까운 연민 어린 환성을 자아내는 동작들로 이루어진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있었다. 뉴올리언즈에 이틀을 더 머물렀는데, 계속 낮 시간은 따가운 햇빛을 머리 위에 이고, 유람하듯이 대중들에게 개방한 항공모함 내부에 들어가기도 하고, 이 곳 저 곳 기웃거리며 다니다가 저녁 무렵이 되면 맥주 잔을 손에 쥐고 버번 스트리트를 어슬렁거리다가 동전 몇 전 흑인 꼬마들의 모자에 집어 넣고는 뉴올리언즈를 떠났다.

 

      이후에 뉴올리언즈를 세 차례 더 방문했다. 두 차례는 그 곳에서 매년 열리는 통신 관련 전시회 참관차 1박 2일 일정으로 문자 그대로 오후 일찍 도착하여, 전시회를 보고, 저녁에 전시 관련 실무를 본 인사들과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음식점으로 가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다음 날 돌아가곤 했다. 마지막 뉴올리언즈 방문은 2004년 어카운트 플래너 컨퍼런스 참가를 위해서 좀 더 여유있게 3박 4일의 일정으로 갔다. 컨퍼런스 자체보다 옛 친구를 만나서 뜻 깊었던 자리였다. 술집들의 순례가 해후 뒤에 이어졌지만, 뉴올리언즈 보다는 그 친구와의 자리가 먼저였다. 그래서 뉴올리언즈는 처음 내가 거기에 발을 딛었을 때 본 하얀 제복의 수병들의 물결과 거리로 나서기에는 너무나 어린, 그리고 뉴욕의 흑인들보다 더욱 짙은 피부의 흑인 어린이 악사와 댄서들의 기묘한 흑백 조합으로 다가온다. 소란스러운 흥분과 연민이 교차하는 그런 조합이다.

 

      이번 허리케인 카트리나(Katrina)가 휩쓸고 간 이후의 가슴 아픈 보도들을 보기 이전에는 뉴올리언즈의 흑인 비율이 그렇게 70% 이상으로 높은 줄 몰랐다. 의례 그들은 뉴올리언즈에서 그렇게 거리에서 춤을 추고, 연주를 하고, 좀 더 큰 다음에는 제법 재능이 있으면 전문 악사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거리의 부랑배가 되어 마약 거래를 하거나, 푸드 스탬프를 받으며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 아마 내게는 우선 수병들의 제복에서 온 흰색의 이미지가 처음에 아주 깊게 박혀 있어서 그랬을 수가 있다. 밤새 달려온 운전의 피로함에서 흰색의 물결이 더욱 강렬하게 각인되었을 수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내 자신이 관광객의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눈을 가지고 뉴올리언즈를 보았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장래에 거주할 곳의 하나로 뉴올리언즈를 고려하고 있었다면, 그 정도까지 가지 않더라도 혹시나 미국에서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다른 각도에서 뉴올리언즈를 관찰하고, 다른 인상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광고가 어찌 보면 내가 처음 뉴올리언즈를 보고, 그 때의 인상이 고정된 것으로 굳어 지듯이, 사람들에게 비추어지고 작용을 한다. 아니, 그 정도만이라도 작용을 하면 다행이고, 무의미하게 지나간다. 나야 최소한 여행 일정표에 뉴올리언즈를 집어 넣어, 자발적으로 찾아 갔지만, 대부분의 광고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노출이 된다. 소위 선진국가라는 곳에서 평균적인 TV시청자가 하루에 300개 이상의 TV광고에 노출이 된다고 한다. 그 와중에서 기억에 남고, 또 메시지까지 전달을 하고, 좋은 인상을 갖도록 만들고, 종국에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도록 만들려니, 힘든 노릇이다. 아, 이 처참한 비극을 보면서, 직업에 얽힌 푸념으로 마감을 하다니, 이도 일종의 직업병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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