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에서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이었지요. 엘리베이터에 젊은 엄마가 초등학교 2-3학년쯤 돼 보이는 딸아이를 데리고 탔습니다. 신문사에서 실시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신청하러 오는 듯했습니다. 엄마는 30대 초반쯤 됐을까, 바지에 패딩점퍼를 걸친 수수한 차림에 화장기 없이 소박한 얼굴이었고, 아이도 또래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모습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뒤, 낯선 장소에 온 아이가 뭐라고 말하려 들자 엄마는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쉿, 조용히!" 하고 일렀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엔 저를 비롯해 두어 사람밖에 없었지만 아이는 소곤소곤 말하고 엄마는 가만히 미소만 짓고 있더군요.




그 엄마의 얼굴은 순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왔습니다.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던 지갑이나 반지를 되찾았을 때 느끼는 황홀한 기분이 그런 것일까요. 1층에서 15층까지 올라가는 잠깐동안이었지만 제 마음은 "아, 이런 일도 있네. 아직 이 땅에서 살 만하네" 하는 놀라움과 화안한 기쁨으로 가득찼습니다.




"쉿, 조용히!"는 다름 아닌 `남을 생각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위의 상황이나 형편, 남의 입장이나 처지, 기분을 살피고 배려하는 데서 나오는 말이지요. 옆사람에게 "쉿, 조용히" 하자면 자신은 이미 전후좌우를 돌아보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파악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딸애에게 "쉿, 조용히" 하는 엄마는 공공장소, 특히 엘리베이터처럼 좁고 밀폐된 공간에선 큰소리를 내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실천하고 딸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그 엄마의 행동에 마음이 환해진 건 그렇지 않은 경우를 너무 자주 대하는 까닭입니다.




우리 회사 건물엔 고층용 엘리베이터가 4대 있지만 절전을 위해 대부분 2대만 움직입니다. 자연히 출퇴근시간이나 점심시간엔 만원이기 일쑤지요. 몸을 움직이기조차 힘들 만큼 꽉찬 엘리베이터 안은 거의 언제나 시끌벅적 소란스럽습니다.




20대가 주축인 입주사 직원은 물론 이용객 대다수가 불과 몇분을 못참는습니다. 일행이 아닌 사람들이 함께 타고 있다는 사실에 아랑곳 없이 큰소리로 떠들고 심지어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치고 박기도 합니다. 옆에서 보는 사람은 엎질러질까 조마조마한데 정작 당사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지요. 휴대폰으로 통화하느라 "그래서 그래서, 안들려 안들려" 하며 소리를 벅벅 지르는 일도 흔합니다.




"어쩌면" 싶은 건 엘리베이터에 그치지 않습니다. 딸에게 "쉿, 조용히" 하던 젊은 엄마에 대한 기억이 채 가시지 않은 날 동네 음식점에서의 일은 더욱더 그랬습니다. 좁은 우동집이었는데 식사중 바로 옆 테이블에서 예닐곱살 가량 된 남자아이가 바닥에 공을 탁탁 치며 놀더군요. 그러다 말려니 했더니 계속했습니다.




야단치고 싶었지만 꾹 누르고 한껏 부드러운 목소리와 웃는 얼굴로 "얘, 그럼 먼지 나잖니. 이따 집에 가서 하렴" 했더니 맙소사, 엄마가 애를 말리는게 아니라 금방이라도 대들 듯한 기세로 노려봤습니다. 분한 김에 "시비를 걸기만 해봐라.본격적으로 퍼부어야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는데 씩씩대더니 그냥 나가더군요. 말썽은 피했다 싶었지만 식당에서 공을 치는 아이를 내버려두는 엄마나, 문제인 줄 알면서도 장사속 때문에 모른체 눈감는 식당주인이나 끝내 못 참고 한마디 했다가 째려봄을 당한 저 자신이 모두 싫어 한참동안 우울했습니다.




"못마땅해? 그럼 니가 내리든지 나가"라는 식의 태도와 행동은 목욕탕에서 한술 더 뜹니다. 일곱 살은 족히 됐을 남자아이를 여탕에 데리고 오는 것으로도 모자라 탕 안에서 마구 물장구를 쳐도 나무라기는커녕 귀여워 죽겠다는 얼굴로 바라보거나 아예 함께 텀벙대고, 두세 사람이 함께 와선 탕 전체가 울리도록 큰소리로 얘기하는 아줌마들이 수두룩하니까요.




언젠가 동네 사우나에선 나이도 꽤 든 여성이 여러 사람을 위해 놓인 밀크로션을 듬뿍 정도가 아니라 바닥에 줄줄 흐를 정도로 바르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어이없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 빤히 쳐다 보는데도 눈썹 하나 까딱 않고 계속하더군요. 나오면서 카운터에 "이런 일이 있다"고 했더니 "말도 마세요. 탕 속에서 칫솔질 한다고 누가 한마디 했다가 한바탕 큰 싸움이 났었어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똑같은 입장료를 받으면서 여탕엔 수건을 비치하지 않거나 입장할 때 하나씩만 주고 로션도 놔두지 않거나 처음부터 3분의 1병씩만 따라 둔다는, 목욕탕의 기막힌 남녀 차별대우에 대해 더 이상 "납득할 수 없다"며 분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남의 눈치 볼 것 없다. 그저 내 주장을 힘껏 펴야 한다"고 믿는 것처럼 보입니다. 뻔뻔한 것과 당당한 것, 솔직한 것과 노골적인 것, 소박한 것과 천박한 것이 구분되지 않고 참을성은 무능과, 진지함은 답답함과 동일시됩니다.




`꼬박꼬박 도란도란 차곡차곡 차근차근` 같은 단어는 간 데 없고, `열심히 성실하고 착실하게 부지런히 진지하게`같은 말은 속이 빈 우렁처럼 쓸 데 없는 껍데기로 여겨지면서 그 힘을 잃고 있습니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신문사를 찾을 정도로 열성적인 젊은 엄마의 낮지만 단호한 한마디 "쉿, 조용히"가 어둡고 답답하던 마음에 불을 켠 것은 그런 때문입니다.




세상은 어지럽고 앞날은 불확실합니다. "도리와 본분을 지키면 자칫 뒤로 처지고 잊혀지고 손해보기 십상이다. 제 주장도 하기 힘든데 괜스레 남의 입장이나 처지를 생각하느라 머뭇거리면 한순간에 빗장 걸린 문 밖에 서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것도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죄다 제 이익만을 위해 앞뒤 안가리고 내달리고, 뭣 하면 "배 째라"고 나오는 세상에서 자기 자식에게 다른 사람을 생각해 "쉿, 조용히!" 하라고 가르치는 젊은 엄마가 있다는 건 이땅의 축복이자 희망이다 싶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 크기와 아파트 평수로 사람의 값을 매기고, 차림이 허술하다 싶으면 위아래로 훑어보며 거드름을 피우고, 매사 어거지를 쓰면서 씨근벌떡 소리쳐도 "쉿, 조용히" 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사랑 속에 자라는 아이가 있는 한 세상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게 틀림없습니다.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건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느냐이다"라고 하거니와 세상을 충만하게 만드는 요소 역시 같을 게 분명합니다. 그 엄마로 인해 제가 우선 지금껏 행복한데다 "본 받아야지" 다짐하고 있으니까요. ***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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