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대장금의 한상궁이 그리운 이유

“두려울 게다. 무서울 게야. 그러나 약하다 생각하면 동산도 태산으로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강하다 생각하면 돌풍도 한낱 스치는 바람일 뿐이야. 그동안엔 내가 너의 바람막이가 되었다만 이제는 니가 태산이 되어야 해. 돌풍이 되어야 해.”(정상궁이 한상궁에게).

TV드라마 `대장금`(大長今, 연출 이병훈)에 나온 대사중 하나지요. 지금은 다소 가라앉은 듯하지만 지난 연말 이 드라마의 바람은 실로 거셌습니다. 주인공이 왕과 후궁이 아닌 상궁과 나인이요, 늦은 시간인 밤 10-11시에 방송되는데도 시청률이 50%를 넘더니 곳곳에 `대장금` 간판이 늘어났습니다. 로열티를 꽤 내야 한다는데도 말입니다.

`대장금`은 조선 중종 때 의녀 장금의 일생을 소재로 한 퓨전사극입니다. 장금은 `조선왕조실록` 중종편에 나오는 실존인물입니다. 총 6군데 등장하지요. 실록엔 의녀라고만 나오지 그 전에 수랏간 나인이었다는 대목은 없습니다. 온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수랏간 부분은 허구라는 얘기지요.

정권교체 초기면 으레 방송되던 정치사극, 곧 개국 과정 혹은 성군의 등장과 치적을 다룬 종래의 드라마와 달리 역사의 뒤안에 묻혀 있던 한 여인의 삶을 들춰낸 이 극이 이토록 돌풍을 일으킨 까닭은 무엇일른지요.

해석은 구구합니다. 정치판 싸움에 신물이 난 사람들이 왕을 둘러싼 남정네들의 암투에 진절머리를 내게 된 탓도 있다고 하고, 왕과 왕비 후궁 혹은 세도가가 아닌 궁녀들의 콩쥐팥쥐식 힘겨루기와 거듭되는 반전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수라상을 통해 각종 궁중요리를 눈으로나마 맛보는 즐거움이 쏠쏠했던 까닭이라고도 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그런 건 주변 요인에 불과해 보입니다. `대장금`이 삽시간에 장안의 화제로 떠오른 건 무엇보다 드라마 초반부터 은근슬쩍 혹은 대놓고 보여준, `조직의 논리`와 `힘 없는 이들이 그속에서 살아남는 법`, `당당한 개인과 그를 지켜주는 참다운 스승의 모습` 등에 기인한다 싶습니다.

양반 출신으로 궁궐 안팎에 지원세력을 갖고 있는 최상궁 일당은 한마디로 조직입니다. 오늘날 현실로 보면 학연 지연으로 굳게 뭉친 사내(기관내) 인맥 패거리라고나 할까요. 그에 비해 장금과 한상궁 정상궁은 어디 한군데 비빌 언덕 없는 외톨이이자 왕따들입니다.

개인이 조직과 싸워 이기는 일은 현실에선 거의 없습니다. 정보와 지원세력 어느 것으로도 맞서볼 도리가 없으니까요. 설사 개인이 옳다고 해도 숫적으로 우세한 쪽에 맞서 그렇지 못한 쪽을 옹호해주는 사람은 없는 게 세상입니다. 따라서 조직과 생각을 달리하거나 조직에서 받아들여주지 않는 개인이 살아남는 방법은 일단 정상궁처럼 죽은 체 엎드려 조직의 거세를 피하는 것이지요.

자리 따위엔 아무 관심도 없는 듯, 경쟁자로 주목하기엔 모자란 듯 처신함으로써 몸 보신을 하다 어느 날 마침내 기회를 갖게 된 정상궁의 모습은 조직과의 싸움에서 번번이 패배한 사람들 또는 거대한 조직의 힘 앞에서 대항할 의지조차 잃었던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은 물론 한가닥 `희망`을 준 듯합니다.

뿐인가요. 정상궁이 한상궁, 한상궁이 장금에게 쏟아붓는 사랑과 애정어린 지도, 따뜻한 눈길과 섬세한 마음씀은 참스승, 멋진 선배, 괜찮은 상사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자신과 한상궁 혹은 장금을 동일시함으로써 잠시나마 삭막한 현실을 잊게 한 것처럼 보입니다.

“무섭고 두려워도 헤치고 나가라. 내가 바람막이를 못해줘도 겁내지 말고 너 스스로 태산과 돌풍이 되라”는 정상궁의 얘기가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건 어쩌면 우리 모두 바람막기가 돼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정작 그런 사람은 곁에 없기 때문일 테지요.

한상궁에 대한 열광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극중 한상궁은 강직하고 자상한 품성, 탁월한 능력의 원칙주의자로 죽은 친구의 딸인 장금을 친딸처럼 아끼면서 단점은 덮어주고 장점은 키워줬지요. 타고난 재주를 격려하며 윗사람의 눈에 띄도록 기회를 만들어주구요. 늘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면서 눈에 띄지 않게 밀어주고 지쳐 주저앉을라치면 손 내밀어 일으켜줍니다.

무슨 수로 반하지 않겠는지요. 대부분의 상사는 학벌이나 `빽` 여부에 따라 처음부터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따라서 당연한 기회조차 주지 않거나 마지 못해 작은 기회를 던져주듯 줬다가 자칫 실수라도 하면 “그것 봐라”하며 코너로 몰아붙이기 일쑤지요.

게다가 일은 죽도록 시켜놓고 `잘되면 내 공, 안되면 네 탓`으로 돌리고, 일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기회는 고향후배, 학교후배에게 내주는 상사도 흔합니다. 이런 판에 자기보다 아랫사람을 더 생각하고 지켜주는 한상궁이나 정상궁에 열광하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요.

`대장금` 열풍엔 또 한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을 믿고, 경쟁자들의 압력과 훼방에 기죽지 않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땀과 정성으로 최선을 다하는 장금의 모습과 그것이 언젠가는 승리로 이어진다는 결말에 대한 기대가 그것입니다.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다”는 어린 장금의 솔직한 답과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풍토, 능력과 의지를 갖춘 개인에게 가해지는 온갖 조직적 테러를 이겨내는 과정, 기막히고 어이없는 좌절의 시간들이 이어지지만 종국엔 모든 불행과 역경이 전화위복이 돼 조선조 제일의 의녀가 되는 해피엔딩으로 이어진다는 사실 모두가 `대장금`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대중문화는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희망사항을 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대장금` 신드롬은 괜찮은 스승이나 상사가 사무치게 그립고, 학벌과 빽 없이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이땅 보통사람들의 희망사항을 대변하는데 다름 아닌 듯합니다만… 여러분의 의견을 적어 주십시오.

35년반의 언론인 생활 끝에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나이에 상관없이 지금이 화양연화요,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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