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오역(誤譯) 찾기에 혈안이 되다

오역(誤譯)을 찾는데 혈안이 되다


        얼마 전에 유수 어문학자들이 모여서 주로 우리나라에 나온 서양의 고전 번역본들을 대상으로 그 번역의 수준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고, 주로 오역 부분들을 바로 잡는 것들을 중심으로 책을 냈다. 실제 원본과 일본어 번역본뿐만 아니라 현대 영어로의 번역본, 처음 원본이 나온 이후의 개정판들까지 주요한 것들은 세세하게 살펴보고, 우리나라 번역본들에 대한 평가와 함께 잘못된 부분들을 잡는 의미 있는 작업을 했다. 자세하게 읽지는 못했지만 언뜻 훑어보는 데도 가장 많이 지적되는 부분이 역시 일본어 번역본의 중역(重譯)이다. 지금도 우리들의 글쓰기뿐만 아니라 우리 언론이나 한다하는 지식인들의 글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얘기되는 일본어 투의 문장이 횡행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일본어 중역본들이 끼친 영향도 매우 컸다.


        나의 졸문(拙文)들도 일본식 어투의 영향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우리 말 제대로 쓰기에 대한 내 자신의 공부와 노력이 부족한 면이 가장 크다. 습관적으로 일본어투를 쓰면서 낯이 후끈거리며, 이오덕 선생님의 한숨지으시는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고치지를 못하며, 그저 서가 한쪽에 꽂힌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보면서 괜히 미안해하는 것으로 죄책감을 달래고, 사죄를 대신한다.


        일본어식 문장의 문제만으로 한정하여 보았을 때는, 교육이란 큰 테두리에 다 포함될 수 있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지식산업을 중심으로 일제시대가 남긴 그 그늘이 너무 컸고 오랫동안 드리우고 있다는 현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일본에서는 외국의 서적들을 직접 원어로 읽지 못하고 번역본을 통해 섭취하고, 그러면서도 그것을 본인이 교양인임을 과시하는 것처럼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면서 내보인다고 해서, 경멸적 의미가 담겨져 주로 사용되었던, 그런 번역본들을 출판사의 대표격인 ‘이와나미(岩波)출판사’의 이름을 따 ‘이와나미 지식인’이란 말이 20세가 전반에 유행했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나미 본으로 서양 고전을 읽는 것이 그나마 한글 번역본을 보는 것보다 더 지식인처럼 보이는 시절을 거쳐 왔다. 지금도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제시대 문학평론가이자 문단의 마당발, 멋쟁이로 유명했던 백철(白鐵) 선생의 회고록에 1930년대 사회주의 문학 활동을 주창했던 카프(KAPF)계의 대표라고 할 수 있었던 임화(林和)를 보고, 당시 카프에 반대했던 문단의 누군가가 ‘임화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름 철자도 모른다’고 그야말로 흉을 보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 흉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임화를 비롯한 카프 맹원들의 문학적 자질과 소양이 떨어진다는 것을 얘기함과 함께, 더 째고 들어가면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얘기하면서 그 원조인 러시아 문학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는 것을 비추려 한 것으로 보이며, 굳이 그 복잡한 이름 철자를 들고 나온 것을 보면 자신은 일본어판이 아닌 원어로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었다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주 좋게 해석하여 주면 일제 탄압 아래 있었다는 시대 상황에서 일본을 넘어서 근본을 강화하는 힘을 기르라는 얘기였다고 까지 생각해 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좋게 해석하기에는 해방 이후의 현실은 너무 가혹하게 진행되었다.


        일제 군대에서 위관급으로 근무했던 경력만을 가지고, 4~5년만에 대한민국의 군대에서는 별을 달았던 인물들이 속출했던 것처럼, 학계를 비롯한 지식인 사회에서도 일제시대의 경력이 인플레되는 현상이 나타나며 충분한 기반과 지원이 없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적인 활동을 하려다 보니 손쉽게 기댈 수 있는 곳이 바로 일본뿐이었다. 그리고 해방 후와 한국전의 혼란이 계속되었던 50년대 초까지의 대학생들은 일본어가 더 편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이 구해 읽을 수 있었던 책들도 일본인들이 팔거나 남기고 간 것들이나, 일본으로부터 비공식 경로를 통하여 들어 온 일본책들이 많았다. 이들이 바로 위의 교수들을 조숙한 원로로 모시면서 한국 학계 전반을 최근까지 이끌었으니 일본어 식의 문장과 중역이 난무했던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고전 분야는 아니지만, 일본어판의 중역과 그에 따른 일본어식 문장의 범람이 계속되었던 또 하나의 원인은 독재 시절의 학생운동에서 제공하였다. 80년대초 역사학 계열로 대학에 입학하여, 2학년 올라가면서 동양사학과로 진입-왜 그랬는지, 그리고 지금도 그러는 지는 모르겠지만, 전공과를 결정하여 그 과로 올라간다는 것의 당시의 공식용어가 ‘진입’이었다-하면서, 진입자들을 대상으로 선배들이 일본어 강독 수업을 해주었다. 가다가나와 히라가나를 미리 연습하여 암기해 오도록 하였고, 수업은 ‘강독을 위한 일본어’라는 제목이 붙은 20 페이지 남짓 되는 유인물 수준의 책자를 선배들의 설명을 따라 가면서 읽는 것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냥 조사와 접속사, 주요 단어, 시제에 따른 변화 정도가 한 두 개의 예문과 함께 쭉 나열되어 있는 열 장 정도를 그렇게 선배들과 함께 훑고 나니, 유인물의 뒷부분에는 일본어 역사, 사회과학 계열의 논문들이 몇 편 발췌되어 실려 있었는데, 당장 다음날까지 그것들을 번역해 오라는 것이 숙제였다. 그 유인물이 좋아서인지, 선배들이 잘 가르쳐서인지, 당시는 워낙들 총기가 있어서인지 다음날 거의들 숙제를 해왔고, 이후 일본책이나 논문을 그럭저럭 큰 불편 없이 읽었다.


        동양사 쪽이야 일본어 자료가 워낙 많아서 일본어 논문이나 서적을 바로 읽지 않을 수 없어서, 그런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의 운동권에서도 비슷한 일본어 교육이 행해졌다고 한다. 약간만 사회주의 성향이나 관련된 내용만 담고 있어도 무조건 출판금지에 불온서적의 족쇄를 채우던 시절이었으니, 주로 일본어판 책을 구하여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하루치기 교육을 받고는, 일본어 번역을 하곤 했다. 그렇게 했던 친구들의 상당수가 또 졸업 후에 출판계로 들어가서 압수와 수색을 밥 먹듯이 당하면서 일본어 번역본들을 출판했다. 불균형의 지식 구조를 바로 잡고 현실을 재대로 해석하여 볼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하고 안목을 길러 주기 위한 독립운동 하는 듯한 학생운동의 연장으로 행해진 일들이었으나, 중역과 졸속 번역의 횡행이라는 데서는 상당한 정도의 책임이 있다.


        90년대 이후에는 소위 어학 전문가들이 대거 번역계에 뛰어 들었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대부분이 자신이 번역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었다. 당연히 원저자에 대한 연구도 없다시피 하고, 그저 번역하는 기계처럼 단어만을 한국어로 옮긴 경우가 정말 많다. 3년전 철학과 역사학에 대한 식견이 돋보이는 반가운 광고 계열 책이 번역되어 나와 반가워서 읽었는데, 역자가 어학은 뛰어났지만, 광고와 마케팅에는 거의 문외한이었다. 번역이 이상한 곳마다 메모 용지를 붙이다 보니 나중에 40장이 넘는 메모 용지가 나풀거리고 있었다. 당시 마침 인턴 두 명이 우리 부서에 와 있어서, 그들에게 그 오역들을 바로 잡으라는 숙제를 냈더니 교육 효과는 그냥 교과서 가지고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번역자가 그런 효과까지 염두에 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아예 처음부터 책 한 권을 내주고 오역을 찾아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주객이 전도되어 이 친구들이 오역을 찾는 데만 혈안이 되어 정작 알아야 할 내용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가끔 광고할 제품 하나 주고, 재미있는 거리를 생각하라 하면 제품은 온 데 간 데 없고, 주변부의 그야말로 재미거리만 남는 경우와 흡사하게. 어떻게 보면 번역을 소위 어학전문가들이 주로 활약을 하게 된 연유도, 책을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을 위주로 보지 않고, 종위 위에 씌어진 단어들의 조합이라는, 극히 기계론적인, 디지털로 모든 것을 쪼개고 해석하는 이 시대의 조류를 반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래의 목적을 생각하고, 아주 근본적인 원인까지 파고들어가고, 어느 순간 특정 현상이나 단어 하나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광고를 잘하는 길이 될뿐더러, 오역을 줄일 수 있는 첫 걸음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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