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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의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

오렌지의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


        예전 우리나라의 과일들은 어디에서 재배되었는가 하는 산지명(産地名)이 바로 브랜드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산지명도 과일 장수가 어디서 출하되었다고 얘기하거나, 투박한 글씨로 골판지 조각으로 써놓는 것이 고작이었다. 과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농산물들이 그러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브랜드라는 단어가 난무하면서, 모든 것에 브랜드라는 이름표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농산물에도 뭔가 하나 붙지 않으면 안되는 것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2004년 6월말 현재 전국에 1,200개의 농산물 브랜드가 있다고 한다. 다른 한편 어느 민간기관은 2003년말 현재 5,188개의 브랜드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전국에 1,204 면(面)이 있어, 면당 4.3개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초기에는 단순히 산지명을 붙이는 것으로 브랜드를 삼은 농산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2001년 농산물 파워브랜드 전시회에 입상한 11개 브랜드를 보면 딱히 지역명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문율처럼 모두가 지역명을 붙였다.

. 공동브랜드: 임금님표 이천쌀, 안동사과, 대왕님표 여주쌀, 당진쌀, 음성 청결고추

. 개별브랜드: 임금님나주배, 무등산수박, 유자골고흥, 서산육쪽마늘, 봉화복수박, 홍성능금


        근래 들어서는 제품이나 생산 과정에서의 특성을 담은 브랜드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온수로 씻은 쌀’, ‘오리농법쌀’, 즉석 도정쌀‘, ’녹차 먹은 돼지‘ 같은 부류들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감성적 이미지를 담은 브랜드들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종류의 농산물에서의 공동 브랜드로 오랜 역사와 함께 손꼽히는 것이 ’썬키스트(Sunkist)’이다. ‘썬키스트’라는 이름은 1907년 최초로 광고를 할 때, 광고대행사에서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캘리포니아의 밝은 햇빛을 상징하는 ‘Sun’과 그것들을 키스하는 것처럼 담뿍 담았다는 의미에서의 ’Kissed’를 합쳐서 스펠을 약간 바꾼 것이라고 한다. 과일, 산지, 확장성 등을 당시에 모두 고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잘 융합시킨 브랜드이다.


        얼마 전 썬키스트 관련한 일이 있어서,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갔더니, 브랜드의 역사를 기술해 놓은 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눈에 띄었다.

“썬키스트 재배자들이 처음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캘리포니아에 ’골드러쉬(Gold Rush)’가 시작한 때인 18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금광을 찾아 나선 많은 사람들이 괴혈병에 걸렸습니다. 이때 감귤류가 괴혈병을 예방해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수요가 하늘을 찔렀고 레몬은 개당 1달러라는 엄청난 고가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틀린 내용은 아니지만, 당시 골드러쉬의 진원지인 샌프란시스코의 상황을 약간 자세하게 알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1848년 샌프란시스코 인근 새크라멘토강 지류에서 금맥이 발견되면서 문자 그대로 ‘황금광시대’가 열리고, 벼락부자의 꿈을 안고 세계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1848년 불과 500명 가량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살던 한적한 어촌 샌프란시스코는 불과 2년후인 1850년 3만명의 인구가 바글대는 도시로 변모했다. 계획에 의거한 신도시를 건설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렇게 된 것이다. 당연히 생활에 필요한 기반이 제대로 조성되었을 리가 없다. 특히 교통이 발달되지 못한 시절인지라, 수요는 엄청나게 늘어났는데 물자 수송이 제대로 되지 못하여, 물가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솟았다. 1850년대 초 샌프란시스코 동네의 몇몇 품목들의 가격을 보면, 달걀 한 개가 1달러, 버터 1파운드가 6달러, 부츠 한 켤레가 100달러였다. 그리고 남자들이 그렇게 몰려들어 극심한 남초현상을 반영하여 창녀와 즐기는 비용이 100달러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 레몬 한 개에 1달러가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실제 골드러쉬에서 금을 찾아 부자가 된 사람들보다는 잡화상 등 장사로 돈을 번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한다.


        썬키스트 홈페이지에 실린 초창기 역사에 관한 또 다른 내용을 보자.

“대륙횡단철도로 인해 밀감산업은 캘리포니아 지방의 중요한 경제 기반으로 자리 잡았고 수년간 과일은 미국의 몇 안 되는 수출 품목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880년부터 1893년까지 캘리포니아의 밀감 경작 면적은 3천 에이커에서 4천 에이커로 증가했습니다. 경작자들은 새로운 금광맥을 발견한 듯 했습니다.”


        대륙횡단철도는 단지 밀감 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의 전체 농업 발전에 제대한 공헌을 했다. 서부 해안 지방의 자급자족 단계를 넘어서 동부로 운송하여 판매할 수 있고, 유럽 지역으로의 수출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체 과일 출하량이 1870년 200만 파운드에서 1890년 1,200만 파운드로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밀감 경작 면적이 30% 정도 늘어난 것이 대수는 아니었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캘리포니아 농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중국인 농업 노동자였다.


        캘리포니아를 ‘금산(金山)’이라 부르며, 중국인들은 처음에는 금을 캐러 갔다가, 대륙횡단철도 건설 노동자로 백인노동자들보다 훨씬 싼 노임을 받으며, 가장 위험한 임무에 동원되었다. 철도가 완성된 후에 이들의 대부분이 농업노동자로 전환하게 된다. 이들은 저렴한 노임과 부지런함, 끈기로 농장주들의 환영을 받으며, 특히 썬키스트 홈페이지에서도 언급된 밀감 경작면적의 증대에서 보듯 황무지 개간의 이름 없는 주역이 되었다. 1870년 캘리포니아 지역의 농업노동자 10명 중 하나에 불과했던 중국인이, 1884년이 되면 2명중 하나가, 1886년에는 10명중 9명이 중국인 노동자로 채워지게 된다. 미국인 경작자들이 새롭게 발견한 과일로 이루어진 ‘금광맥’의 뒤에는 이렇게 중국인 농업 노동자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거의 희생에 가까운 혹사 속에서 농업의 산업화 그리고 근대적 브랜드로서 오늘의 썬키스트가 탄생할 수 있었다.


        썬키스트 홈페이지의 위에 인용한 부분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기 위하여, 모든 사실들을 얘기하지 않는 ‘미필적 고의’의 기술(記述)을 하고 있다. 형법상의 범죄와 연관된 용어로써의 ‘미필적 고의’와는 구분하여, 여기서는 그냥 기술상의 그것으로 한정하여 얘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광고를 하면서는 그런 미필적 고의를 할 수 밖에 없다. 먼저 모든 것을 얘기할 수 없기 때문에, 강조하여 전달하고 싶은 부분을 극히 제한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제한적으로 선택한 것도, 나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하도록 표현하여야 한다. 그것이 너무 심해지면, 그리고 반(反)광고의 시각에서 보면, ‘사기(詐欺)’처럼 여겨진다. 그러면 광고하는 사람들은 광고의 본질 어쩌고 하면서 ‘촌철살인(寸鐵殺人)’식의 성어를 들어 변명하곤 한다. 흡사 그것조차 숙명인 것처럼.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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