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삼각지의 홍어는 다른가?

 삼각지의 홍어는 다른가?


        완전히 물러난 줄 알았던 감기가 극심한 일교차와 며칠간의 무리로 신체기능회복세가 약간 주춤해진 틈을 타고, 밭은 가래가 섞인 기침과 함께 주말의 잠자리를 방해하기 시작하여, 새 기운으로 맞이하여야 할 월요일이 극심한 전투를 치른 다음처럼 피로에 젖어 온몸이 욱씬거리고, 기침은 오후를 지나 저녁 무렵으로 갈수록 더욱 잦아지며 얼마 남지 않은 체력마저 바로 소진시킬 냥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래도 오후 늦게 간만에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두 시간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며 교육을 받으니, 그 시절의 원기가 약간 되살아 온 듯 몸이 조금 추슬러지는 것 같았다.-광고회사는 교육이나 사내 발표가 다른 업종 대비하여 무척 많은 편이고, 제일기획은 광고회사 중에서도 가장 교육을 많이 시키기로 유명하다.- 교육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한 친구가 제의를 했다. “약속이 없으면 홍어나 드시러 가시죠?” “삼각지?” “네. 팀원들 몇몇도 같이.” 그렇지 않아도 지난 한 주 팀 친구들과 자리를 같이 하지 못하여 한번 식사 자리를 만들려던 참이었다. 그리고 몇몇 친구들이 예전부터 삼각지 홍어집 예찬을 늘어놓곤 하여, 궁금해 하던 차였다. 내장이 잔뜩 들어간 대구탕이나 지글지글 드럼통 위에서 구워 먹는 곱창이 삼각지의 음식으로 자리를 확고하게 잡고 있어서, 홍어와 삼각지의 연결은 어쩐지 어색하기만 했으나, 그런 면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삼각지의 홍어는 어떤 맛일까’, 몇몇 친구들이 그렇게 극찬을 할만한 수준인지 확인을 하고 싶어져, 감기도 잊고 길을 따라 나섰다.


        삼각지 뒷골목의 미닫이 유리문 창틀마다 ‘실비집’, ‘안주일체’ 따위의 글자가 고만고만 약간씩 모양을 달리하며 비닐 천 조각 오려낸 것처럼 붙어 있는 그런 분위기의 집들이 붙어 있는 가운데 홍어집도 꼭 그 모양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처음으로 홍어를 먹는다는 친구들이 다수 있어서, 엉겁결에 홍어의 전문가처럼 자의반타의반 행세를 하게 되었다. 홍어는 살짝 삭혀 알맞게 익은 돼지고기 편육 및 묵은 김치와 함께 보기 좋게 푸짐하게 나왔다. ‘이 정도면 아주 살짝, 삭힌 것도 아니야’하고 짐짓 아는 체를 했더니, 주인아저씨께서 우리나라에서도 흑산 홍어만 삭힐 수 있고, 다른 데서 잡히는 것들은 삭혀 먹을 수가 없어서, 흑산홍어가 그리 비싸다는 말씀을 해주신다. 인당 일정액을 내놓고, 부페식으로 ‘All you can eat’하는 시스템인지라 찐한 맛에 무제한의 양이 제공되다 보니, 문자 그대로 지나치게 헤비(heavy)한 느낌이 들었다.


        적당히 오른 취기와 입 속의 비록 덜 삭힌 홍어이기는 하지만, 묵은 김치 및 진하게 양념된 굴무침의 쌉싸름한 맛이 혀에 진하게 남은 채, 더부룩할 느낌이 들 정도로 부른 배로 홍어집을 나왔다. 그래서 보면 홍어도 삼각지 음식의 큰 테두리 안에 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자극적이고 풍성하며, 원초적이고 거칠다는, 내장 듬뿍 든 대구탕과 불판 위에 척척 놓여지는 곱창으로부터 내 나름대로 잡은 삼각지 음식의 특징에 홍어도 그럴싸하게 부합되는 것 같다.


        홍어가 삼각지에 어울리지 않다고 한 것은 그 때까지 내가 홍어를 먹은 경험에 기초한 판단이었다. 처음 선배 쫓아서 홍어를 먹기 시작한 비원 앞의 제법 고급의 전라도 음식점으로만 거의 홍어를 먹으러 다녔는데, 그 집의 홍어는 삭히기야 확 삭혔지만, 맛이나 접시에 담아 나오는 모양이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양은 다 먹고 나서 입맛을 다실 정도로 모자라면서 함부로 양껏 시키기에는 주머니 인정사정 봐주지 않게 어떤 때 보면 터무니없다고 느낄 정도로 비쌌다. 정말 만만한 게 뭐가 아니라 최고의 귀족 음식 중의 하나로 홍어는 내게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같은 음식이라도 장소, 사람, 모양, 가격 등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 질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컨텍스트에 따라 인식과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홍어라도 비원 앞의 고급 음식점과 삼각지 뒷골목 삐걱거리는 유리 미닫이문 음식점의 그것은 차이가 난다. 그러나 그 둘 모두 홍어가 가지는 근본적인 속성은 함께 한다. 푹 삭히건 그렇지 않건 간에 ‘삭힌다’는 것은 홍어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고 우리가 기대하는 근본적인 것이다. 그리고 냄새, 미각, 희귀성 등은 그런 근본적인 ‘삭힌다’는 속성과 기대로부터 파생되어 나타나는데,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음식을, 지역에 따라 한식/중식/양식/전라도/경상도 등등으로 또는 재료에 따라 갈비라도 돼지, 소, 닭 등, 다른 제품들과 비슷하게 가격에 따라 고급이냐 대중식당이냐 등등으로 나누는데, 이 나누는 기준은 더욱 다양하게 여러 가지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 위에서 예를 든 대로 푸짐하고 자극적인 ‘삼각지 음식’ 식의 포지셔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제품을 가지고 광고를 하려다 보면, 기존의 제품 속성에 너무 빠져들어서 컨텍스트를 통해서 줄 수 있는 변화를 무시하거나, 컨텍스트만을 중시하다 보니 근본적인 속성을 잃어버리는 극단적인 경우를 많이 본다. 그리고 기존의 구분 방식에 빠져 새로운 단면을 만들어서 본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광고 외적으로는 우리 사회 일각에서 냉전시대의 좌익과 우익의 정의를  현재의 바뀐 모습에 맞추어 볼 생각도 없이 그대로 적용하려 들이밀고, 그러면서 근본적으로 좌와 우가 추구하는 것에 대한 뚜렷한 이해도 부족하고, 어떤 언행이든지 무조건적으로 좌우로 나누는 요즘 우리가 자주 보는 모습은 세 가지 잘못을 절묘하게도 한꺼번에 보여 주는 안타까운 사례라 하겠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