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4월 요즈음 이탈리아 로마. 기존 상식과는 달리 날씨가 매섭기 그지없었다. 하여간 그 바람 차던 날 저녁 7시 무렵 나는 '종착역'이란 흘러간 명화로 유명한 로마의 테르미니역행 지하철을 타고, 밤을 함께 할 술로 맥주와 소주 중 어느 것이 좋을까 고심을 하고 있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를 연초에 그만두고, 무언가 준비한다는 핑계를 대며 놀다가 유럽 배낭여행길에 나섰던 참이었다. 때마침 정확한 일정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여행기간 중에 회사에서 각별하게 인생의 선배로 모셨던 과장님이 유럽으로 출장을 나온다고 하였고, 나는 그 과장님의 행방을 각 지사를 통하여 예의 추적, 유럽에 그 과장님이 발을 내딛는 그 곳에서 접선을 하리라고 공약을 하였는데, 몇 번의 추적 끝에 마침내 다음날 새벽 6시 타이뻬이발 비행기로 그 과장님이 로마의 다빈치 공항에 내리신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문제는 정해진 숙박처라도 있었으면 다음날 새벽 차를 타고 공항에 나가면 되는데,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그날 아침 묶고 있던 유스호스텔에서 바가지를 쓰고도 별대꾸도 못하던 일본애들 몇을 보다못해,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그들을 대신하여 "너에게는 우리가 아무 잘못한 것이 없는데 네가 왜 나서느냐?"-일본애들에게 말도 안 되는 바가지 씌운 것을 유스호스텔 프런트에 있던 이태리 놈은 이런 말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싸워서 정상요금대로 돈을 치르게 하여 그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은 후, 내친 김에 더 멋있게 보이기 위하여 "너희같이 사기꾼 같은 놈들이 하는 호텔에는 있을 수 없어"하면서 감동 그 자체에 휩싸인 일본애들을 이끌고 나와버려, 잠잘 곳이 마땅치, 아니, 아예 없었다.

 

    그날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눈에 띄는 허름한 호텔 같은 곳은 모조리 문을 두드려 보았으나, 숙박비는 차치하고 방이 있는 곳이 없었다. 그 때 "그래! 공항에 가서 밤을 새우며 기다리면 되잖아"하는 당시로서는 어떻게 이렇게 기가 막힌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혼자 감탄을 할 정도의 생각이 떠올랐다. 큰 계획이 세워지니까 연이어 세부실행계획이 떠올랐다. 일단 밤을 새우려면 배가 든든해야 하니까, 간만에 한국음식점에 가서 푸지게 먹고, 술 몇 병을 사들고 공항에 가서 홀짝홀짝 마시면서 밤을 새자. 그런데 무슨 술을 마셔야지? 맥주는 최소 일곱 병은 있어야 되는데, 배낭에 들어갈 자리나 있나, 무거울 것 같은데, 마시면 화장실 자주 갈텐데 그때마다 무거운 배낭을 들고 왔다갔다할 생각하면 끔찍하고. 소주는 너무 비쌀 것 같고, 시간상 세 병은 먹어야 할 것 같은데 먹다가 가는 것 아닌가, 게다가 안주거리는 있어야 할텐데 한국식 판벌여 놓고 먹자니 이상할 것 같고....등 되도 않는 고민을 하면서 테르미니 근처에 있는 한국음식점을 향해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 안에 한 서너 사람 건너 서있는 한국인 부부가 눈에 들어 왔다. 그 양반들은 둘 사이에 상당히 심각한 얘기를 나누는 듯 했고, 나도 어떤 술을 가지고 갈 것인가 궁리하느라 그쪽에 신경 쓸 여가가 없었다. 그러다가 테르미니 역에 지하철이 닿았고, 그 양반들도 그곳에서 내렸다. 엘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오르는데 갑자기 머리 속이 약간 혼란스러워졌다. 지상으로만 왔다갔다하면서 한국음식점을 보았던지라 지하에서는 어떻게 가는지 좀 헤매야만 할 것 같았다. 출구가 어디인지 감을 잡으려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두리번거리는데 그 한국부부가 네 계단 아래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는 것을 기다려 접근, 테르미니 근처의 한국음식점을 가려면 어느 출구로 나가야 하는 지만 물었다. 그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여기 출구들이 복잡하니까요, 저희랑 같이 음식점 앞까지 가시죠." 걸어가며 기본적인 인사를 하고 내친 김에 공항까지 가는 교통편을 물었다. "버스도 있긴 한데, 기차가 좋을 거예요. 그런데 공항에는 왜 가세요? 한국 가십니까?" 여차여차 김치찌개에 밥 푸지게 먹고 공항 가서 밤을 새울 거다라는 얘기를 했다.

 

    부부가 함께 펄쩍펄쩍 뛰면서 말리기 시작했다. 첫째는 날씨가 너무 추워, 한데서 자면 몸 상하고, 둘째는 공항 내 치안 상태가 위험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서로 경쟁하듯이 말리더니, 거의 동시에 "저희 집으로 갑시다"라고 제안을 했다. 고백컨대 처음 길을 물을 때부터 약간 그런 의도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건 너무 앞서 가는 것 같았다. 하여간 당시로서는 '불감청고소원'이었지만, 그래도 염치가 있어서 마실 술을 결정치는 못했지만, 원래의 내 계획대로 밀고 나가겠노라 했다. 그러자 부인이 약간 고민을 하는 듯 하다가 논리적으로 나를 꼼짝못하게 하는 이유들을 내놓았다. 첫째, 한국음식 푸지게 먹고 가야 한다고 했는데, 일단 자기네 집에서 그 정도 푸지게는 해줄 수 있다. 왜 괜히 돈주고 먹나? OK. 둘째, 공항에 가려면 어차피 자기네 집 옆을 거쳐가야 한다. 우리 집으로 가는 것이 공항에 더욱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항 가는 새벽기차가 있으니 그것을 타면 된다. 교통편이니, 공항과의 거리 등은 내가 전혀 알고 있지 못한 것이었으나 어쩌겠는가. 굳이 내가 열불을 내면서 주장할 형편도 아니고. 할 수 없다는 듯이 그 양반들을 따라 그 집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그들 집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로마 근교 노선도를 보니까, 집이 있는 동네가 로마와 다빈치 공항의 딱 중간에 위치하고 있기는 하였다. "보세요, 맞죠?"하며 부인이 나를 안심시키는 가운데 대략 40분 정도 타고 가면서 서로 기본 신상을 파악했다. 둘 다 신학대학원에 재학중. 여자는 박사과정 막바지인 것 같았고, 남자는 이태리에도 늦게 왔을 뿐더러 나이도 부인보다 몇 살 어려서 이제 새로이 신학공부를 시작하려는 듯했다. 모빌 홈들이 주종을 이루는 집시 촌을 보면서 남편이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한다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선생님께서 너무 위험하고 힘든 행동을 하시려해서 저희가 억지로 저희 집으로 모신다고 했는데, 오다보니까 걱정이 되네요. 저희 집이 아주 누추한데, 실례인 것 같아서요. 너무 누추하다고 이런 데로 끌고 왔다고 흉보실까봐....""무슨 말씀이세요. 한데서 잘 사람을 구제해주셨는데, 제 주제에 뭘 가리겠습니까!"


    집은 역에서도 잰걸음으로 15분이 걸렸다. 열 시가 채 못된 시간이었는데, 오가는 사람은 고사하고, 불켜진 집조차 찾기가 힘들어, 바람이 더욱 매섭게 느껴졌다. 걸어가는 도중에 남편은 몇 번 더 집이 누추하다, 미안해진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들은 지하 없는 3층짜리 석조건물 1층에 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불을 켜니, 원룸 형태의 방에 침대 하나, 유럽식 고전풍의 소박한 뚜껑있는 책상, 책 몇 권이 놓여져 있는 싸구려 4각 테이블이 가구의 전부였다. 온기라고는 전혀 없었으며, 양탄자가 깔려 있기는 하였지만 돌 바닥으로부터의 한기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고 보니 털실내화가 있는데, 당연히 부부를 위한 두 켤레뿐이었다. 괜찮다는 데도 막무가내로 손님 우선 신으라고 내주어, 결국 내 배낭에서 등산용 양말을 꺼내어 덧신자, 그 때에서야 약간 계면쩍은 표정으로 부부가 털신 실내화를 신었다.

 

    어느 새 부인은 저녁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나니 김치찌개 끓는 냄새가 방안을 채우고, 남편이 익숙하게 식탁정리를 하고 있었다. 정리라고 해보았자 4각 테이블의 책들을 책상 뚜겅을 열고 속으로 집어넣고, 테이블을 방안 한가운데로 들어다 놓고, 반찬그릇들 갖다 놓는 것이 전부였다. 마침내 찌개가 테이블의 주연으로 자리잡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그릇 세 개가 놓여지며 바야흐로 만찬이 시작될 시점이 되었다. 당시 열흘 넘게 한국 음식이라고는 구경도 못해본 처지였으니, 심정이 어떠하였으랴!

 

    남편이 "준비된 게 없어서, 그냥 저희 평소 먹는 대로....찬이  없어서..." 죄송하다는 얘기를 하는데, 조용히 부인이 부탁을 했다. "함께 기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게 뭐 대수냐는 식으로 "아, 그럼요"하고 대답하며, 건성으로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하나님, 저희 이 누추한 곳에, 이렇게 귀한 손님을 보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얼마나 감사...." 첫 대목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와서 그 다음부터는 제대로 기억할 수 없었다. '귀한 손님? 아니, 내가 이 귀찮은 존재가 귀하다니'-그 자리에서는 전혀 의외의 단어였으나 '왜 내가 그들에게 귀한 손님이었나?', '귀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들이 나를 귀하게 여긴 만큼 나도 나 같은 사람을 귀하게 맞이할 수 있는가?', '그들에게 귀하게 여김을 받은 나의 이후 모습은 어떠한가?'는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과 성찰거리를 생성하면서 지금도 내 스스로를 경계하는 주요한 준거중의 하나로 쓰이고 있다.


    기도후의 식사시간과 식사를 끝내고 난 후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한참 동안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나의 여행 이야기, 이태리 유학생들의 생활과 이태리 사회, 그리고 각자 삶의 궤적에서의 종교의 영향과 역할 등에 관해 정말 폭포수 쏟아지듯이 얘기를 나누었다. 두 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그때까지 내가 그 사람들 이름도 모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들은 바로 한달 내에 자신들이 이사를 할 것이기 때문에 알아도 소용없다며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매 또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얘기만 되풀이하였다. 그 얘기에 이상한 힘이 있는지, 곧 다시 만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게 되는데, 아뿔싸 침대 하나가 달랑 있는 집인지라 다른 침구가 없었다. 침대 위의 담요를 빼고는 당시로서는 별 양심의 거리낌없이 유럽행 비행기에서 집어 와서 갖고 다니던, 내 배낭 속에서 꺼낸 대한항공 담요가 그 집에 있던 침구의 전부였다.  한 시간동안 모든 경우의 수를 동원한 설전(舌戰)이 벌어졌다. '옷가지 더 껴입고 자면 아무 상관없으니, 두 주인이 침대에서 자라'는 지극히 당연한 얘기에서 출발하여, '손님을 어떻게 추운 바닥에서 재우느냐, 침대에서 자고, 우리들이 밑에서 자겠다'는 부인의 말, '손님과 같은 남자인 내가 아래에서 잘 터이니, 주인마님이 위에서 주무시라. 단, 원래 담요는 우리를 주고, 대한항공 것을 덮고 자라'는 남편. '차라리 나도 아래에서 자겠다'는 부인의 말에 '예전 우화의 나귀를 메고 가던 부자 얘기가 생각나네요'란 농담까지 나오다가, '그럼 우리 셋이 다 침대 위에서 자자'란 얘기까지 나와서, 빌다시피 혼자 밑에서 자겠다, 제발 잠깐이라도 더 눈을 붙일 시간을 달라는 핑계로 통사정하여 가장 상식적인 결말을 맺어 부부를 위로 올려 보내고 나는 점퍼를 껴입고 대한항공 담요를 둘둘 말아서 양탄자 위에 누웠다.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갑자기 부인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남편을 깨웠다. "저번 주인이 커튼 남기고 간 것이 있는 것 같은데?" 하면서 남편과 함께 현관 입구의 천장 쪽 벽장에서 커튼을 꺼내, 찬 바람 부는 밖에 나가서 털고 나서 내게 갖고 오는 것이었다. "이거라도 덮으시면 좀 나실 것 같아서...." 커튼을 다시 둘둘 말고 누우며 식기도 때와 같은 눈물이 나왔다. '얼마나 좀 더 따뜻하게 해줄 것이 없나 고민을 하다가 벽장 속 낡은 커튼에까지 생각이 미쳤을까?' 그 날의 잠자리는 어떤 화려한고 푹신한 침대보다 포근했다.


    비행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아침 5시40분 기차를 타야 했다. 4시 반경 잠을 깨니 이미 간단한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전날 밤과는 달리 여유 있게 30분 시간을 두고 집을 나섰다. 소금기까지 머금은 새벽 공기는 더욱 차가웠지만, 그들은 내 만류에도 개의치 않고 역까지 배웅해 주었다. 멀리 기차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면서, 부인이 작별의 기도를 인도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사....." 새벽안개, 유리창의 성에, 전날 밤부터 흔해 진 눈물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기차가 완전히 역을 빠져나갈 때까지 그들은 홈에 기도를 하듯이 서있었다.


    그로부터 2년 정도가 지나서 로마 유스호스텔에서 만났던 일본 친구가 사진과 함께 편지를 인도로부터 보내 왔다. 그렇게도 스쳐 지나갔던 친구에게조차 연락이 오는데, 노력이 부족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부부에 대한 어떤 소식도 그 이후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내가 나 같은 자를 귀한 손님으로 맞이할 수 있는 그 때가 되면 꼭 만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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