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리 세대의 ‘사상(思想)의 은사(恩師)’, 집권층에서는 ‘의식화의 원흉’이라고 했던 리영희 선생의 생애를 대담을 통하여 정리한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저, 임헌영 대담(한길사)”를 읽었다. 비록 리영희 선생의 건강 때문에 대담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당사자가 놓치기 쉬운 사실들이나 독자들이 궁금해 할 대목들을 짚어 주며 사안에 따라 완급을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현대사를 한 몸에 안고 있는 리영희 선생의 삶의 화고를 떠나 형식 자체로도 의미 있고 재미있었다. 단지 선생의 말씀을 그대로 옮긴다는 취지에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대화로 진행되다 보니 구체적인 사실들에서 조금씩 틀리게 말씀하신 부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부분이 눈에 띄어, 방대한 자료의 치밀한 독해와 분석으로 학자 겸 저널리스트로서의 위업을 세운 선생의 생애 말년에 그런 것들이 괜히 옥의 티로 작용하지나 않을까 괜히 안쓰럽고 염려가 되었다.




        예를 들면 68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려 한국이 준우승을 차지했던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당시 MVP를 수상했던 박신자를 단장이었다고 얘기한 부분이나, 419 혁명 직후 전역하여 과도정부의 국방장관까지 지냈던 이종찬 장군이 516 쿠데타가 발발했을 때 윤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쿠데타 지지 행진을 거부한 육군사관학교 교장이었다고 한 것 등은 대담자나 편집자가 좀 더 신경을 써서 주석으로나마 잡았어야 하지 않을까 아쉬웠다.




        선생과 자주 비견되는 중국의 인물이 문필로써 중국인의 잠을 깨우기 위하여 노력한 보통 “아Q정전(阿Q正傳)으로 많이 알려진 루쉰(魯迅)의 얘기가 자주 나왔는데, 선생께서 아래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이 인상적이었다.       




노신의 그 같은 학교 편력의 유사성 때문에 나는 그에게 각별한 친근감을 느껴요. 그분도 민족의 혼란. 변혁기에 길을 찾는 한 젊은이로서 다양한 경험과 우여곡절을 겪습니다. 나는 그를 중국발음인 '루쉰'이라고 부르지 않고, 몇 년 전에 그의 작품을 처음 대했던 때에 익힌 한자 발음대로 '노신'이라고 불러요. 노신이라고 불어야 나의 정서와 심상에는 그 인간 노신이 떠올라요. '루쉰‘이라고 부르면 나에게는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 노신이 아니라 어떤 다른 인물과 같은 서먹서먹한 느낌이 든다구. 명칭이라는 것이 이미지 작용에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맞다. 명칭이 이미지를 형성하고 그것을 다시 연상시키고 강화하는데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한다. 루쉰이라고 할 때 선생에게는 처음 노신으로서 접했을 때의 감동과 문장이 구구절절 가슴에 휘말려 오던 그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대화 내내 선생은 중국인들은 모두 노신, 모택동, 등소평 등 그냥 한자 발음대로 호칭을 한다. 예전에 보편적으로 그렇게 부르고, 그 시절에 그들에 관한 자료들을 접하여 그렇게 굳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모택동의 경우 내게는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어느 어른이 유달리 강하게 경음화시켜 그 이름을 발음하면서, ‘못된 똥 같은’ 놈이라 이름도 그렇다고 말씀하시던 것을 당시 재미있게 들었고 또 그 후로도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어,  ‘모택동’이라고 하면 내 발음도 강하게 나오고, ‘무찌르자 공산당’류의 노래가 가장 먼저 연상된다. 대학에 진학하여 중국사를 전공하면서는 ‘모택동’과 ‘마오 쩌뚱‘이 한동안 병존했다. 특히 모택동은 강의실 밖의 논쟁에서 자주 입에 오르내렸다. 아주 강한 발음으로 혁명의 화신과 같은 의미를 전달하려 애를 썼다. 그에 비해 ’마오 쩌뚱‘은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것 같았다. 좀 더 아카데믹하게 들렸다. 그리고 몇 권 되지는 않지만, 영문으로 된 중국 현대사 책들을 보며 ’마오....‘가 거의 내게는 이제 더 익숙한 호칭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마오...‘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한 인간으로도 오고, 그 소용돌이 자체를 한켠에서 만들어낸 인물로도 다가온다. 말하자면 인간 자체로 그의 여러 단면들을 볼 수 있는 여유를 찾은 것만 같다. 그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고, 앞으로 또 어떻게 바뀔는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움베르또 에꼬의 “장미의 이름”에 보면, 수도원에서 허드레 천한 일을 해주면서 빌어  먹는 인물이 하나 등장한다. 어렸을 때부터 고아로 유럽 각지를 전전하다 보니, 그가 흥분하면 여러 나라 말이 뒤섞이는데 주인공의 추리에 따르면 유랑하며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쓰였던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어떤 말 한 마디에도, 호칭 하나에도 어떤 경험이 그 뒤에 숨어 있고, 그것이 어떤 연상으로 이어지는지를 캐는, 어떻게 보면 심리학적 플러스 인류학적인 조사가 그동안 정량 일변도로 흘렀던 광고조사에서 제법 많이 쓰이고 있다. 옳은 길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그런 세세한 행동과 표현까지 신경을 쓰다보니 광고인들의 삶이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주위 분들께 양해를 구한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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