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금강산의 황금마차/육로관광기

`금강산 육로관광`을 다녀 왔습니다. 버스로 비무장지대를 달려서 말입니다. 5년 전 봉래호를 타고 갔다 온 뒤 두번째 찾은 금강산이었는데 여러 모로 달라져 있더군요.

전에 갔을 때는 워낙 분위기가 으스스했던 탓인지, 날씨가 다소 추워서였는지(10월말인가 11월초였지요) 좋은지 어떤지 몰랐는데 이번엔 “아! 금강산!”이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특히 만물상 단풍의 아름다움은 말로 형용할 길이 없더군요.

놀라운 건 자연의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배에 머물면서 산에 갈 때마다 아침 저녁 출입국 관리 도장을 받아야 하던 예전과 달리 이번엔 고성 통일전망대에 설치된 출입국관리소에서 들어갈 때와 나올 때 한번만 수속을 하면 됐습니다. 온정각에서 온천까지 걸어다닐 수도 있고, 온정각과 온천 옆엔 수퍼마켓도 있었습니다.

자유롭고 편해진 금강산. 그런데도 왠지 착잡한 기분이 자꾸 들었습니다. 산 중턱까지 따라온 음료수 판매대 `황금마차`, “생수 준비하세요”를 외치는 판매원의 큰 목소리, 조용한 금강산에 마구 울려퍼지는 유행가, 온정각에 세워진 정몽헌회장 추모비 등.

`현대 아산`에서 총괄하는 금강산 육로관광은 2박3일 코스로 홀수날 출발합니다. 우리 일행은 버스를 대절,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에서 오전 8시30분에 출발, 인제 원통 백담사 입구를 지나 오후 1시께 강원도 고성에 있는 금강산콘도에 도착했지요.

이곳 지하1층에서 1회용 여권 혹은 출입국관리증이라고 할 수 있는 `관광증`을 받고, 카메라 검사(갖고 갈 수 있는 건지 아닌지)를 거친 다음 휴대폰을 맡겼지요. 휴대폰은 물론 예비용 배터리도 가져가면 압수당한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대절 버스를 다시 타고 통일전망대까지 가서 먼저 갔던 사람들이 나온 뒤 북한 입국 수속을 했지요.

수속 후 현대아산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로 갈아탄 다음 철조망에 돌을 걸어놓은(돌의 수를 세어 누가 철조망을 건드렸는지를 안답니다) 남방한계선을 지나 비무장지대를 거쳐 북한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무 전신주와 길가에 서있는 북한군인들의 행색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가눌 길 없는 동안 버스는 해금강호텔 앞에 도착했습니다.

해금강호텔은 바다에 띄워놓은 해상호텔입니다. 도착 즉시 배정받은 방에다 짐을 푼 뒤 셔틀버스를 타고 금강산온천에 갔습니다. 온천엔 노천탕도 있고, 샤워타월도 비치해 놨더군요. 1회용 샴푸도 팔고. 물이 어쩌면 그렇게 깨끗하던지요. 노천탕에서 바라보이는 저녁 산의 그림자와 맑고 서늘한 공기는 기가 막혔습니다.

다음날엔 구룡폭포를 지나 상팔담에 올랐지요. 상팔담의 물은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답고 투명한 에메랄드 빛으로 보는 사람의 눈을 빨아들였습니다. 이날 점심은 온정각 식당에서 할 예정이었으나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자리잡은 북한식당에서 먹게 됐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그날 아침 버스에서 북한음식을 맛보고 싶으면 온정각 매표소에서 식권을 따로 사라는 얘기를 듣고 줄을 섰지만 식권이 매진됐다고 하는 바람에 못샀습니다. 당연히 포기하고 있었는데 하산 도중 일행중 몇 명이 현장에서 표를 살 수 있으니 맛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아침에 표를 산 사람들의 표를 받아서 현장에서 다시 파는 듯했습니다. 사람 사는 곳에선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냉면을 먹고 내려와 다음 코스인 삼일포로 갔습니다. 삼일포에선 막걸리와 송이를 팔았는데 모든 게 비싼 그곳에서 송이 값은 5달러밖에 안하더군요. 순식간에 동났지요. 오후 내내 입안 가득 남아있던 송이의 그윽한 향은 지금도 그립습니다.

오후에 본 `교예공연`은 너무 완벽해서 슬펐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것, 너무 완벽한 것은 그 뒤의 피나는 노력을 떠올리게 해 가슴을 저밉니다. 공중그네타기 도중 떨어졌다 일어나면서 팔목을 다쳤는지 자꾸 만지면서도 다시 올라가 끝까지 해내는 모습은 조마조마함을 넘어 인간의 한계란 어디까지일까를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마지막날엔 아침 일찍 짐을 싸서 호텔을 나온 뒤 만물상에 올랐습니다. 전과 달리 올라가는 길을 새로 만들어 오르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부딪치지 않도록 해놨더군요. 형형색색 만물상의 절경은 말로 표현할 길 없습니다. 금강산은 바위산입니다. 바다 밑에서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불쑥 솟아오른 것같지요.

그 중에서도 만물상은 하늘 아래 만물을 조각해놓은 전시장같습니다. 게다가 바위산 특유의 선명하고 고운 단풍은 설악산이나 내장산 단풍과는 또 다릅니다 바위 틈틈이 피어있는 자그마한 꽃들은 이 세상 살아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금강산은 5년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정해진 길을 따라 한발자욱도 옆으로 빠지거나 하면 안되고, 조용조용 나뭇잎 하나라도 건드릴까 조심하던 때와 달리 `야호` 소리지르고 군데군데 서있는 환경관리원들과 정치 경제 사회 등 온갖 얘기를 주고 받고. 물에 손을 담그면 50달러, 종이를 버리면 1백달러 벌금이라는 식의 겁도 안주더군요. 예전엔 그런 게 너무 무섭고 싫었는데 산이 떠나가도록 시끄럽게 떠들고 왁자지껄하니까 조용했던 예전이 좋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어쩜 그렇게 간사한지.

산행로 곳곳에 서있는 북쪽 환경관리원들의 입담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먼저 말을 걸어 “정부에서 북쪽을 도와주려 하는데 왜 야당에서 반대하느냐”, “북쪽에선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는 일체를 국가가 책임진다. 북쪽이 남쪽보다 못사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빈부의 차이가 없다” 등등.

자기는 다음 학기 등록금을 걱정하는데 친구는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걸 보는 대학생이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떨른지요. 길가의 허름한 집, 나무 전신주, 시멘트보다 모래가 많아 금방 부서질 것같은 벽돌을 보면서도 `똑같이 산다`는 말에 혹할른지요.

마지막으로 온정각을 떠나기 전 고 정몽헌회장의 추모비 앞에 섰을 때의 심정은? 슬프고 허망하고 누구를 향한 건지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더군요. 자연의 아름다움은 넋을 빼앗는데 그 속 사람들의 일로 자꾸 가슴이 묵직해졌던 건 저만의 느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35년반의 언론인 생활 끝에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나이에 상관없이 지금이 화양연화요,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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