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Wonderful Daysㆍ감독 김문생)를 봤습니다. 7년동안 1백26억원을 들여 만들었다는 작품이 과연 어떨까 궁금했지요.




내용은 간단합니다. 에너지전쟁으로 세계가 멸망한 2142년.오염물질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첨단도시 `에코반`과 소외지역인 `마르`의 생존을 건 투쟁 및 두 지역 남녀의 삼각관계가 기둥줄거리지요. `원더풀 데이`는 주인공 수하가 첫사랑의 연인인 제이에게 약속한, 뿌연 회색이 아닌 파란 하늘을 보여줄 날을 의미합니다.




지구 멸망, 오염물질로 유지되는 남태평양의 인공도시, 선택받은 지배자와 그렇지 못한 피지배자의 숙명적 대결, 적과의 사랑, 어린아이와 동물, 코믹한 조연들, 하회탈같은 한국적 이미지 등 영화의 구성요소나 얼개는 훌륭합니다.




세계 최초로 멀티메이션(Multi Layered Animationㆍ2D와 3D,미니어처 촬영의 복합기법)제작기법을 이용했다는 작품답게 장대한 도입부과 엄청난 스케일 또한 관객을 압도하지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관객은 초조해집니다. 웅장한 화면에도 불구하고 구성은 엉성하고, 논리는 떨어지고, 대사는 빈약하기 때문이지요.




어린 수하가 과거 에코반에서 왜 쫓겨났는지,에코반의 시스템 비밀을 모두 안다는 노아박사가 어떻게 마르에 살아 있는지, 제이를 사랑하는 에코반 경비대장 시몬과 수하의 관계는 어떤 건지 알 길이 없습니다.




게다가 여주인공 제이의 역할은 미미하기만 합니다. 자신의 주장을 펴거나 독자적인 판단이나 행동을 하지도 못합니다.심지어 수하와 시몬이 마음대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짐으로써 남성 중심적 사고의 잔재를 그대로 드러내지요.


 


좋은 영화의 기본적인 조건은 `재미와 정보, 메시지, 감동`이라고 믿습니다. 그러자면 탄탄한 스토리와 뛰어난 영상, 웃음과 눈물을 자아낼 수 있는 대중성, 오래 기억될 명대사와 명장면, 시대의 흐름에 대한 통찰 등이 있어야겠지요. 애니메이션엔 여기에 컴퓨터그래픽을 비롯한 기술적 요소가 첨가돼야겠구요.




`원더풀 데이즈`의 경우 여기에 한국적 이미지까지 요구됐을 테니 실로 부담이 컸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극장문을 나서는 관객들이‘도대체 무슨 소린지'고개를 갸웃거리고 "생각나는 대사 한 줄 없다"고 한다면 거창한 주제나 세계 최초의 멀티메이션 제작기법이 무슨 의미를 가질른지요.




적어도 7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한국영화 사상 최고액이라는 엄청난 돈을 퍼부었으면 만화영화의 재미면 재미, 액션물의 긴장감이면 긴장감, 환경과 평화에 대한 메시지면 메시지, 진실한 사랑과 우정이 주는 감동이면 감동 중 한두 가지는 확실하게 보여줬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어 아쉽고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헐리우드 영화 `브루스 올 마이티`가 떠오른 건 바로 그런 까닭이지요. 짐 캐리라는 배우가 주연한 `브루스 올 마이티`는 코믹물입니다. 이 역시 내용은 단순하지요.




지방방송국의 리포터인 부르스 놀런이 도대체 되는 게 없는 인생에 분통이 터져 신에게 삿대질을 해대자 `옴니프레젠트(omnipresent: 어디에나 있는)`라는 회사의 청소부겸 사장으로 등장한 하나님이 불러 "그래,그럼 1주일만 네가 해봐라" 합니다.




전지전능한 힘을 부여받은 브루스가 하는 일은 기껏 토마토스프를 홍해처럼 갈라지게 하고, 애인을 위해 달을 창가로 끌어 당기고, 애인의 가슴을 커지게 하고, 건달들을 혼내주고, 앙숙이던 앵커의 말을 더듬거리게 만드는 사소한 것들이지요.




그러나 신 노릇 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야훼닷컴(www.yawhe.com) 메일에 쏟아지는 사람들의 기도는 아무리 처리해도 끝이 안나고, 하는 수 없어 몽땅 "예스"라고 답하자 40만명이 복권에 당첨되는 통에 1인당 당첨금이 17달러에 불과,폭동이 발생합니다. 모든 사람이 소원을 이룬 세상은 혼돈 그 자체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도 원하던 앵커가 된 브루스. 그러나 청혼을 기대했던 애인 그레이스에게 기껏 "앵커가 됐다"고 떠들다 그만 결별 선언을 당합니다. 허전함과 상실감을 달랠 수 없던 브루스는 헤어진 뒤에도 여전히 자신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그레이스를 본 뒤 신이기를 포기하고 자잘구레한 일상사를 전하는 리포터로 돌아갑니다.




지극히 통속적이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지요. 그러나 메시지는 확실합니다. `육체노동은 신성하다. 하나님도 대걸레를 들고 청소한다` `기적의 능력은 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 `모든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가장 소중한 것은 가까운 곳에 있다` `사람에겐 각자 부여받은 재능이 따로 있다.` `훈련의 힘은 놀랍다` 등등.




이 영화의 힘은 이런 메시지들을 거창한 주제가 아닌 일상의 에피소드에 담아내는 데 있습니다. 하필이면 거실 소퍼 옆에서 오줌을 싸대는 애완견을 밖에서 실례하도록 훈련시키기 위해 처음엔 거실소퍼를 통째 내놓고 다음엔 같은 무늬의 방석을 이용해 성공을 거두곤 "Good∼ Boy!"라며 기뻐하는 대목은 관객에게까지 뿌듯함을 안깁니다.




이제 막 첫발을 떼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국산 애니메이션과 헐리우드 극영화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일 수 있습니다. 짐 캐리의 과잉연기도 우습고, 뻔한 기독교적 결말도 싫고, `주제를 알고 살아라` 식의 설교는 더더욱 싫은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지요. 그 모든 게 헐리우드의 철저한 상업적 계산의 결과라며 혹독하게 비판하는 것도 가능할 테구요.




그렇지만 상업적 성공을 목표로 하는 건 모두 같지 않을른지요. 극장 앞에 관객이 연일 구름같이 모이고 전세계 사람들이 `원더풀`을 외칠 수 있기를 바라는 건 `원더풀 데이즈` 제작팀도 마찬가질 겁니다. 토종 한국인인 저 역시 그렇게 돼서 수하나 제이의 캐릭터모형도 불티나게 팔리기를 바라구요.




다만 좋은 영화는 돈과 기술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기적은 마음속에 있다`같은,평범하지만 영원한 철학을 거부감없이 전달할 수 있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그것을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에 맞게 버무릴 줄 아는 감독과 배우가 있을 때 가능한 것 아닐까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지요. 우리 영화는 언제쯤 여성을 우스개나 경계의 대상이 아닌 `소중한` 존재로 그려내게 될지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말입니다.****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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