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워크샵 빙자(?)한 동해안 나들이, 일박이일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녘, 동대문역 인근에 대기 중인 28인승 리무진 버스에 올랐다.  서울봉제산업협회 임원진의 1박 2일 워크샵 일정에 동행키 위해서다.

봉제일을 잠시 내려놓고 일탈에 나선 듯 한결같이 조금은 들뜬, 밝은 모습들이다. 약속시간인 07시가 되자, 어김없이 자리가 채워졌다.
때가 때인지라 某 당의 예비후보가 꼭두새벽부터 달려나와 버스에 오르더니 즉석에서 맞춤형 멘트를 날린다.
“~봉제산업과 관련해서 개선해야 될 점, 또 보완하고 지원해야 될 점, 특히 해외 바이어 발굴과 산업 인프라 개선 등, 제가 여기 협회 임원진과 따로 간담회를 마련해서 좀 더 심층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하시는 일 잘 되길 바라며 여러분과 함께하는 종로의 아들이 되겠습니다~”
서울 종로구에 출마하는 예비후보들은 창신,숭인동에 공을 많이 들인다. 종로의 동쪽 창신동·숭인동엔 서민들이 주로 산다. 면적은 그리 넓지 않으나 인구 밀도는 높다. 그래서 때가 되면 너나없이 ‘창신동 봉제’를 들먹이며 봉제골목의 문턱을 분주히 넘나든다.

건네받은 도시락을 무릎에 얹었다. 온기가 무릎에 전해져 따스하다. 뚜껑을 열었다. 내용물이 거하다. 평소 조식 습관에 비해 부담스럽긴 했으나 감사의 마음으로 뚝딱 해치웠다.

버스는 동대문을 벗어나 한남대교를 건너 올림픽도로에 들어섰다. 차창은 김서림으로 뿌옇다. 손으로 쓰윽 문질러 창밖을 살폈다. 검단산 너머로 빨간 해가 고갤 쳐든다. 소풍?간다고 밤잠을 설친 탓일까? 버스 안은 이내 취침모드로 바뀌었다.

인제를 지나 미시령 방면으로 접어들자, 은빛 상고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이드를 자처한 협회 車 회장이 잔잔하게 흘러나오던 추억의 팝송 대신 ‘고래사냥’으로 바꿔 볼륨을 높혔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모두들 선잠에서 깨어나 창밖을 응시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근육질의 설악산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미시령터널을 빠져나오자, 맑디맑던 하늘은 온데간데 없고 완전 눈세상으로 변해 있었다. 아쉽게도 울산바위는 눈구름에 숨어버렸다.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東과 西가 이리도 차이가 날까? 속초 시내는 내린 눈으로 인해 도로가 질퍽했다.

 


>>>> 아바이마을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도 눈길이라 긴장한 모습이다. 조심조심 천천히 ‘아바이마을’로 향했다.
아바이마을은 한국전쟁 이전만 해도 사람이 살지않던 바닷가 모래톱이었다. 한국전쟁 때 북에서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전쟁이 끝나면 곧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해 38선 가까운 이곳에 임시로 움막을 지어 살았다. 함경도 피난민이 많이 거주해 ‘아버지’의 사투리 ‘아바이’를 사용해 지금껏 ‘아바이마을’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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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덮힌 모래사장에 서서 잿빛하늘과 맞닿은 바다를 응시했다. 쓸쓸한 겨울바다의 분위기가 물씬하다. 아바이마을에 정착한 실향민들의 삶과 애환이 스며있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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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이마을의 원조 메뉴는 함흥식 명태회냉면이다. 지금은 아바이순대와 오징어순대를 더 많이 찾는단다. 절대로 호객하지 않는다는 간판을 내 건 식당을 찾았다. 회냉면과 가리국밥 그리고 아바이순대가 주메뉴다. 고민없이 아바이순대로 순대(?)를 채웠다. 영덕대게를 맛 보러 영덕을 찾듯, 아바이마을에선 아바이순대를 맛 보는게 예의(?)다.

 


>>>> 속초등대, 영금정, 동명항

안내판에는 속초 8경 중 제1경으로 꼽을만큼 주변 경관이 빼어난 곳이라 소개되어 있다. 등대로 오르는 가파른 철계단에 눈이 얼어 붙어 미끄러운데도 일행들은 마다않고 올라선다. 겨울바다는 묵직하면서도 거칠다. 남성적 매력이 넘친다. 등대 아래 거뭇한 암반 위로 눈이 소복하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세차게 귓전을 때린다. 파도는 굴곡진 너른 암반을 연주하듯 타고 넘는다. 그 소리가 신묘하게도 거문고 소리와 같다하여 이곳에 ‘영금정(靈琴亭)’이란 정자를 세워 놓았다.
바닷가에 선 이 기분, 뭔가 익숙치가 않다. 주말이면 산길 걷는게 습관화 되어버린 탓이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느낌이나 생소함에서 오는 호기심도 없지않다.

 


>>>> 속초관광수산시장

만찬을 위한 먹을거리 쇼핑을 위해 속초관광수산시장을 찾았다. 궂은 날씨인데도 시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속초 주민들이 소박하게 장을 보던 ‘중앙시장’은 사라지고 외지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관광시장’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시장 지하층는 주로 횟집, 지상은 건어물을 비롯 다양한 먹을거리로 가득해 걸음을 떼기가 고역(?)이다. 이곳 시장의 최고 명물은 ‘닭강정’이다. 수산시장이 ‘어물’이 아닌 ‘닭강정’으로 더 유명하다니 아리송할 따름이다.

 


>>>> 양양 낙산사

천년고찰 낙산사, 동해안을 찾으면 으레 발길 닿는 곳이다. 2005년 낙산사를 쑥대밭으로 만든 화마에 용케도 살아남은 ‘의상대’가 가장 먼저 객을 반긴다. 孤松도 옛모습 그대로다. 일행들은 해수관음상에 이르러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아마도 가족 건강과 일감 대박을 빌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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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제’를 안주 삼아…

하조대 인근에 복층 가정집 구조로 지어진 팬션을 통째로 빌린 터라 1층엔 남성, 2층엔 여성이 합숙키로 했다. 졸지에 부부로 참여한 여덟쌍이 생이별을 해야 했다.
바닷가에서 빠질 수 없는 먹을거리는 뭐니뭐니해도 단연 ‘회’다. 주최 측에서 공 들여 수배했다는 횟집으로 이동했다. 하조대 바닷가와 맞닿아 있는 풍광 좋은 횟집이다. 다행히 주인장 인심도 넉넉했다. 별별 이유 갖다 붙여 가며 건배가 이어지고 너나없이 불콰해졌다. 누군 술기운을 빌어 옛시절 동해안에서의 아련한 추억들을 떠올리며 밤바닷가를 걷기도 하고 누군 동심으로 돌아가 불꽃놀이에 푹 빠져 연신 불꽃을 까만 하늘로 쏘아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모두들 술잔에 추억을 말아 마시며 밤바다의 낭만에 흠뻑 빠져 들었다.
추억의 되새김은 숙소로까지 이어졌다. 숙소로 돌아와 거실에 둘러 앉았다. 그렇게 워크샵 토론회를 빙자(?)한 치맥파티가 시작됐다. 봉제 現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더니 이내 ‘응답하라, 봉제 7080’ 모드로 바뀌었다. 봉제입문 시절의 애환과 잊지못할 경험담은 밤이 이슥하도록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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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조대 일출

이른 아침, 명품 일출을 기대하며 하조대로 향했다. 조선의 개국공신 ‘하륜’과 ‘조준’이 잠시 머물다 간 곳으로 두 사람의 성을 따서 이름지어졌다는 ‘하조대’다.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얼어붙어 있었고 군통제지역이라 철문이 잠궈져 있다.

“어라~ 철조망 사이로 해돋이를 봐야 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7시 10분경, 열쇠를 휴대한 초병이 나타나 문을 열어주었다. 전망대 육각정자 앞 바위벼랑 위에 섰다. 사진작가 몇몇이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삼각대를 세웠다. 손끝이 시려올 즈음, 기암괴석에 뿌리내린 해송 너머로 붉은 기운이 감도는가 싶더니 이내 불덩이가 솟아올랐다. 명품 일출을 똑딱이 디카로 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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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애항

아침햇살이 붉게 비치는 남애항 포구도 그대로가 그림이다. 해안을 따라 국내 최장 해안 탐방로인 ‘해파랑길’ 41코스가 이어지는 조그만 포구다. 어민들은 아침부터 그물 손질로 분주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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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진 포구

비릿한 바다 내음이 물씬한 주문진포구를 찾았다. 바닥엔 막 경매를 마친 어물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그야말로 펄펄 살아 숨쉬는 포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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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포호
소녀의 시선은 경포호 너머 동해 건너 일본을 향하고 있었다. 행여 추울까, 두툼한 모자와 목도리 그리고 양말에서 다녀간 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다.

 


>>>> 오죽헌

줄기가 까마귀처럼 까만 대나무, 烏竹이 많이 자생하고 있는 곳, 5만 원 권과 5천 원 권에 모델로 등장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를 만날 수 있는 곳, 오죽헌을 찾았다.
오죽헌은 우리나라 주택 중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온돌방과 대청마루, 툇마루로 이어진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일자형 기와집이다. 푹한 날씨라 기와에 쌓인 눈이 녹아 처마에 뚝뚝 떨어진다.
뒷뜰 오죽 잎새들이 바람에 서걱이며 객을 맞았다.
사임당은 이렇듯 아름다운 고향을 떠올리며 또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시(媤)집에서 시를 지었다.

산 첩첩 내고향 여기서 천 리/꿈 속에도 오로지 고향 생각 뿐/한송정 언덕 위에 외로이 뜬 달/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갈매기는 모래톱에 헤어졌다 모이고/고깃배는 바다 위를 오고 가겠지/언제쯤 강릉 길 다시 밟아가/어너니 곁에 앉아 바느질 할꼬.  

 


>>>> 대관령양떼목장

오죽헌을 벗어난 버스는 굽이굽이 추억의 대관령 옛길을 따라 양떼목장 입구 옛 대관령휴게소에 멈춰섰다. 목장 길을 전부 걸어서 나오려면 40분 정도 걸린다. 산책로가 얼어붙었다는 이유로 절반 정도만 개방했다. 그런데도 입장료는 4,000원 다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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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로~

서울 창신동을 비롯, 여러 지역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봉제소공인이자, 서울봉제산업협회 임원진이기도 한 일행들에 섞여 워크샵을 빙자(?)해 동해안을 따라 1박 2일 콧바람을 쑀다. 일행들은 네온이 불을 밝히기 시작할 즈음, ‘동대문’으로 원점회귀했다. 오가며 봉제산업 관련 애로사항, 발전방향 등 봉제 관련 이야기를 귀동냥하기도 했다.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주말 산에 푹 빠져 사는 트레킹 매니아로서 산행 관련 기록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山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 월간지(3종:월간 봉제기술/배관기술/플랜트기술)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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