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 `잡을 테면 잡아봐(Catch Me If You Can)`를 봤습니다. 스무살이 되기 전 고등학교 중퇴자로 교수 파일럿 의사 변호사 등을 사칭하며 1백40만달러를 횡령한 사기꾼과 그를 잡으려는 FBI요원의 쫓고 쫓기는 과정을 담은 것이지요.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영화화했다는데 스필버그의 솜씨 탓인지 범죄영화가 지니는 어둡고 침침한 대목 없이 경쾌하고 코믹하기까지 합니다. `타이타닉`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희대의 사기꾼 프랭크 애비그네일,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가 FBI요원 칼 핸러티 역을 맡아 열연했습니다.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주인공 프랭크는 2차대전 참전용사인 아버지와 프랑스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유복하게 자란 17세 고등학생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탈세 혐의로 국세청의 조사를 받게 되면서 집안은 풍비박산 납니다. 경제적으로 쫓기면서 어머니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급기야 아버지와 이혼하자 프랭크는 사기 행각에 나섭니다.

항공기 조종사의 신용도면 어느 은행에서나 수표를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안 뒤 유나이티드에어라인의 파일럿을 가장, 위조수표를 만들어 당시 미국 최고의 은행이던 체이스맨해튼에서 현금화합니다. 파일럿이 들통날 때쯤 의사로 변신하고 다시 변호사로 직업을 바꿔 지역 유지의 딸과 결혼하기 직전까지 갑니다.

`잡을 테면 잡아봐` 식의 숨바꼭질이 계속되지요.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체포되기 직전 미국을 벗어나 프랑스로 도망쳤던 프랭크는 어리숙한 듯한 치밀한 FBI 요원 칼 핸러티에 의해 붙잡혀 프랑스감옥에 수감됐다 미국으로 이송됩니다.

감옥에 있던 프랭크는 그러나 탁월한 위조수표 감식 능력을 인정한 핸러티의 도움으로 가석방돼 FBI의 위조수표 사건 도우미가 됩니다. 가석방기간중 도주하려던 프랭크는 그러나 핸러티의 간절한 소망을 받아들여 제자리로 돌아오지요. 막이 내린 뒤의 자막에 따르면, 이렇게 해서 희대의 10대 사기꾼은 위조수표 감식원으로 정상적인 삶을 되찾아 가정을 갖고 자신을 쫓던 형사 핸러티와 오랜 우정을 나눴다고 돼 있습니다.

`타이타닉`에서 어린 티를 벗지 못했던 디카프리오의 제법 성숙하고 세련되기까지 한 모습은 영화보는 즐거움을 새삼 안겨줬고, 언제 봐도 수더분한 듯 지적인 톰 행크스의 듬직한 모습 또한 극장문을 나선 이후에도 오랫동안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줬습니다.

그러나 오락물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이 영화를 다시 생각하는 건 스필버그감독이 이전의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힘들여 강조하는 `가정과 가족`이라는 주제 때문입니다. 스필버그 감독이 이 대목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라이언일병 구하기`에서 `AI`에 이르기까지 지나칠 만큼 같은 테마에 매달림으로써 영화를 진부하게 만들고 있다는 평까지 듣는데도 그는 여전히 `가정과 가족, 인간관계의 소중함`이라는 교훈적인 주제를 담아내고자 고심하고 있습니다.

`잡을 테면 잡아 봐`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감독은 10대 고교생이 사기꾼이 되는 동기를 가정파괴에서 찾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그로 인한 부모의 이혼과 엄마의 재혼에 충격받은 아들은 추레해진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내가 모든 걸 되찾아 주겠다” 고 반복합니다.

지역유지의 딸이지만 혼외정사로 인한 임신 때문에 집에서 쫓겨난 여자와 결혼하려는 이유도 간단합니다. “유명대학 출신의 의사와 결혼한다면 너네 부모님도 좋아하시겠지?” 뿐인가요. 체포과정에서 저항하지 말고 투항하라는 핸러티에게 프랭크는 묻습니다. “딸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

스필버그가 말하고 싶은 `사랑과 믿음에 의한 인간 구원`은 프랭크를 쫓는 핸러티의 의식과 행동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이혼남인 핸러티는 프랭크의 상처를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분명 쫓아가 잡았으면서도 체포가 아닌 자수로 만들고, 감옥에 있는 그를 위조수표 감식반원으로 바꾸고, 무엇보다 프랭크에게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음으로써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게 하는 것이지요.

스필버그의 이같은 서술방식에 대해 “진부하다, 지루하다, 억지스럽다, 지나치게 교훈적이다”라는 평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그런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막히고 황당한 사건들을 보면서 영화를 통해서라도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 믿음의 소중함`을 말하고 싶어하는 스필버그의 노력을 탓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싶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산다`고 돼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5분 뒤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이 가혹한 세상에서 신의 가호 없이 살아가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사랑 못지 않게 사람의 사랑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을 비롯한 주위의 따뜻한 관심과 말 한마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너를 지켜보고 네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일이야말로 사람으로 하여금 “살아봐야겠다”는 의욕을 갖게 하고, 그럼으로써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같은 수렁과 늪을 헤치고 나오는 원초적인 힘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외로움은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증오를 낳고, 증오는 파멸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외롭고 왠지 불안한 지금, 따뜻한 가정과 가족,친구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가까운 이는 물론 잠시 잊고 있던 사람에게도 전화나 이메일 한통을 띄우는 건 어떠실른지요.**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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