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심부름을 통해 얻은 깨달음

입력 2003-02-20 08:32 수정 2003-02-20 08:32
얼마 전 작은 모임의 간사를 맡게 됐습니다. 6개월동안 다닌 단기과정 등산동아리의 연락책이지요. "누군가를 기억하고, 챙기고, 먼저 손 내미는" 일에 서툰 만큼 못하겠다고 했지만 여러 사람이 등을 떠미는 바람에 도리 없이 하게 됐지요.




등을 떠밀린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자기 소개서에 "특징적 장ㆍ단점: 주어진 일은 뭐든 최선을 다하고, 종종 시키지 않는 일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썼는데 이 대목이 "한번 해보라"를 거절할 수 없는 빌미가 됐던 겁니다. 아이들 말로 하면 "무덤을 판" 셈이지요.




제가 해야 하는 가장 큰 일은 `연락`입니다. 회장 총무 등과 의논해 산행 날짜와 장소가 결정되면 등산동아리 회원만이 아닌 전체 구성원에게 메일을 보내고, 참석하겠다고 알려온사람에겐 확인을 하고, 분명한 의사 표시를 하지 않는 분들에겐 함께 가자고 권유하는 겁니다. 오이와 인절미 등 간단한 간식도 준비하구요.




처음엔 과연 계속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메일을 보내면서 예정인원을 알아야 선물과 간식 숫자를 맞출 수 있으니 참석여부를 알려주십사 부탁해도 가타부타 회신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산에 가자"는 걸 마치 개인부탁처럼 여기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누가 초대장을 보내도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꼭 오라고 거듭 요청하지 않으면 연락도 없이 안가기 일쑤였던 게 얼마나 괘씸한 짓이었는지 알았지만 그래도 섭섭하고 언짢은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무슨 덕을 보는 것도 아닌데" 싶기도 하고. 게다가 상당수의 사람들이 골프보다 등산을 `우습게(?)` 하는 것도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꾹 참고 계속 메일을 보내고 전화도 걸었습니다. "주어진 일엔 최선을 다한다"고 공언한 탓도 있지만 동아리 회장님의 정성에 감복한 까닭입니다. 회장님께선 사업상 바쁜데도 불구하고 첫산행 때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플래카드를 준비한 걸 시작으로 산행 때마다 꼬박꼬박 회원들을 위해 수건 등산양말 스위스칼같은 선물을 마련해 오셨습니다.




제가 놀란 건 선물 자체가 아니라 그걸 고르고 포장해오는 섬세함이었습니다. 남녀를 구분해 물건 색과 포장지 색깔을 달리하고, 선물 하나하나에 산행기념품임을 알리는 내용을 인쇄하고 시간상 그게 안되면 직접 써서 붙이고...




"사람을 시켜서 할 텐데 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랫사람에게 시키는 일도 시간과 정성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게 제 짧은 경험의 소산입니다. 게다가 개인적인 업무인 만큼 비서를 시켜서 하는 것같지도 않습니다. 부인과 함께 선물을 싸는 동안 여자는 누가 오느냐고 물어 누구누구라고 대답하셨다니까요.




그야말로 돈 생기는 일은커녕 돈과 시간을 쓰기만 해야 하는 일에 대한, 나이든 분의 이같은 마음씀은 제게 심부름꾼으로서의 책임을 소홀히 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말로는 "주고 받기"의 중요성을 내세우면서도 "대답없는 메아리는 싫다"는 핑계 아래 "받고 주기"에 익숙했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도 됐구요.




연락책 노릇을 계속하는 동안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참석하겠다" "사정이 있어 이번엔 함께 갈 수 없겠다. 다음엔 꼭 참석하겠다"는 답장이 늘어난 건 물론 메일 회신을 하지 않은 사람 가운데도 "등산동아리 회원이 아닌데 가도 되느냐" "동아리 간사 정성에 이번엔 참석해야겠다" "등산은 안해 봤는데 메일을 자꾸 보니 가고 싶다" 등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늘어난 겁니다.




"어떤 조직이건 앞장서서 애쓰는 사람이 있어야 활성화된다"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함께 등산을 하지 않아도, 메일에 답장은 안해도 심부름꾼 역할에 점수를 주고 있었던 셈이지요. "거간 노릇은 싫다"고 생각해온 제겐 새로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지요. 나만 누군가 먼저 손 내밀어 끌어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요.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기억하고 챙기고 손 내밀지 않으면서 누가 나를 기억하고 챙겨주기를 바라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도 새삼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물론 주지 않고 받을 걸 기대한다는 게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몰랐던 건 아닙니다.




다만, 준 것의 절반도 건지기 힘들 뿐만 아니라 괜스레 먼저 나서서 연락하고 전화하면 우습게 보일 수도 있다는 알량한 자존심 혹은 자칫 아부처럼 느껴질지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걱정 때문에 무심한 체 하거나 뒤로 빠져 있기 일쑤였지요.




등산동아리 심부름꾼으로서의 경험은 제게 이제쯤 그런 알량한 자존심이나 터무니없는 걱정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쳤습니다. 준 것만큼 못받을까봐 먼저 주지 못하는 인색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는 걸 알려준 것이지요.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재느라 쭈볏거리는 동안 그에게 뭔가 해줄 수 있는 기회는 날아가버린다는 사실도 깨우쳐 줬습니다.




어떤 일이든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자체를 기뻐하면서 해야, 마지 못해 최소한의 몫만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은 몽땅 다해야 비로서 상대방에게 마음이 전해진다는 걸 터득했다고나 할까요.




사는 동안 여러 가지 면에서 우수하고 탁월한 사람이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봐 왔습니다. 빽이 없고 운이 나쁜 탓도 있겠지요.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어서 자신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까닭일 수도 있구요. 마땅치 않은 세상, 나서봤자 구정물만 뒤집어 쓸 테니 조용히 지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개중엔 자기 능력을 믿고 누가 알아서 챙겨주기를 기다리느라 아무에게도 먼저 다가서지 못하고 작은 서비스조차 하지 못한 결과인 듯한 수도 있습니다. 실력있고 똑똑하다는 S대 출신들이 사회 곳곳에서 부적응자 내지 말썽꾸러기로 여겨져 배척당하는 것도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헌신하는" 대목이 부족한 탓 아닐까요, 혹시?




`먼저 손 내미는` 일은 결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쑥스럽고 민망하고 자칫 노리는 게 있지 않나 오해할까 두렵기도 하고... 그래도 저는 앞으로 망설이지 않고 내밀어보려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잡는 사람이 분명 있을 테니까요. ****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418명 37%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713명 63%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