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베트남 한국기업의 여자 부사장

//잠시 베트남 호치민(옛 사이공)에 다녀 왔습니다. 빈둥(Binh Duong) 산업공단에 있는 (주)성현비나(대표 이영만) 공장을 둘러보고, 붕타우 해변과 메콩강, 월남전쟁 박물관을 구경했습니다.

베트남은 오토바이 천국이었습니다. 그곳에선 모토바이라고 부른다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타고 거리를 질주하더군요. 둘은 보통이고 네 식구가 함께 타고 달리는 모습도 흔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라는 사람도 많았지요. 자가용 영업인 모양이었습니다.

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여 있는 통에 위험하고 실제 자동차는 앞뒤 좌우의 오토바이를 경계하느라 계속 `빵빵` 댔습니다. 오토바이를 `과부틀`이라고 부르는 우리 사고방식으로 보면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었는데 정작 베트남 사람들은 조금도 안 무서운 듯 요리조리 잘도 빠져 다녔습니다.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차선과 횡단보도 신호등이 제대로 없고 있어도 지켜지지 않아 걸어 다니기 어려운 것 또한 대수롭지 않은 듯했습니다.

`롯데백화점` `전북산업대학교`라고 쓰인 버스도 다녔습니다. 한국에서 수입한 걸 과시하느라 일부러 그러고 다닌다고 했습니다. 한류 열풍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지요. 어떻든 가난하지만 활기차고, 정신 없지만 우리나라 70년대와 같은 개발의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저를 가장 놀라게 한 건 `성현비나` 베트남공장을 총괄하는 여자 부사장 `여점식`씨였습니다. 성현비나는 주문자생산방식(OEM)에 의한 신발 수출기업입니다. 비나(Vina)는 베트남의 약어랍니다. 베트남 현지 투자기업의 이름이 모두 무슨무슨 비나인 게 그런 까닭이지요. 성현비나에선 2천명이상의 종업원들이 세계 각국에 수출되는 운동화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

//여부사장은 이곳에서 영업 생산 관리를 모두 맡고 있습니다. 이영만 사장이 부산 본사에 왔다 갔다 하느라 바쁜 만큼 그가 베트남에 상주하면서 전체 업무를 담당하는 겁니다. 만나기 전 이사장으로부터 여러 차례 얘기를 들었지만 솔직히 큰 관심은 갖지 않았습니다. 여자 사장이나 임원의 경우 이른바 얼굴마담인 수가 많고, 직접 업무를 관장하는 경우도 실제보다 과대포장돼 있는 걸 많이 봐왔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여부사장의 일하는 모습을 보는 동안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여부사장은 자그마한 키, 마른 몸매, 화장기 없는 맨 얼굴, 손질이 필요없도록 짧게 자른 머리, 면티셔츠에 간편한 바지, 운동화 차림이었습니다.

30대 후반이라는 나이를 믿기 어려울 만큼 앳된 얼굴이었지만 반짝거리는 눈, 솔직하고 진지한 말투, 친절하면서도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당당한 태도는 성현비나가 어떻게 베트남 진출 3년여만에 1천만불 수출탑을 받을 수 있었는지 알게 했습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했다는 여부사장의 영어 실력은 뛰어났습니다. 외국바이어와 상담하는 모습은 외국에서 자랐나 싶을 정도였지요. 이태리어도 잘한다는데다 남들은 5년 이상 돼도 제대로 못한다는 베트남어도 2년여만에 웬만큼 해내고 있었습니다.

공장에 달린 1평 남짓한 여부사장의 방 작은 거울 앞엔 부산의 동생친구에게 샀다는, 이름없는 브랜드의 기초화장품 서너 개만 놓여 있었습니다. 주말에도 사무실에서 일하거나 기껏 공장 주변에서 보드를 타며 지낸다는 그의 회사 운영 방침이나 계획엔 눈꼽만큼의 과장도, 비전이라는 이름 아래 뜬구름 잡는 식의 거창한 내용도 없었습니다.

하루의 절반은 작업현장을 둘러보며 지낸다는 그의 관심은 오직 어떻게 하면 공장을 좀더 쾌적하게 만들 수 있을까, 품질관리 개선을 위한 비책은 뭘까, 성현비나가 주문자생산방식 수출기업이 아닌 자체브랜드 수출기업으로 우뚝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등 회사와 관련된 것들뿐이었습니다.

공장직원들을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해주려 첫해엔 지붕에 스프링쿨러를 설치하고 다음해엔 선풍기를 달았다며 올 여름엔 좀더 나은 방법을 강구중이라는 여부사장의 눈은 마냥 반짝였습니다. 품질 관리를 위해 현장의 생산 공정을 직원들 모르게 촬영한 뒤 직접 보여주면서 어디가 어떻게 문제인지 가르쳐줬으면 좋겠는데 혹시 부작용은 없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얼굴은 밝고 환하면서도 단호했지요.

품질관리와 좋은 디자인을 위해선 교육과 연구개발이 필수인 만큼 하루속히 기존공장 앞에 사놓은 땅에 새 건물을 증설, 교육센터와 연구개발실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의욕에 괜한 욕심이나 허황됨 따위는 스며들 여지가 없어 보였습니다.

`나이키`나 `리복`같은 대기업을 상대하면 규모는 쉽게 커지겠지만 한두 군데와만 거래하다 보면 위험부담도 클 것이라며 작아도 여러 곳의 거래처를 확보하는 게 낫다고 얘기하는 모습은 왜 많은 이태리 바이어들이 `미스 여`만 찾는지 알려주고도 남았습니다. 그는 또 “약속날짜를 맞추기 어려우면 어렵다, 외주를 줘야 하면 줄 수밖에 없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고 했습니다. 문제를 밝히고 양해를 구하는 편이 신뢰감을 쌓는데 훨씬 낫다는 얘기지요.

2천여 베트남 직원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그는 야단칠 때는 무섭게 치지만 그런 다음 반드시 이유를 설명하고 풀어준다고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좋은 대우, 인간적인 관심이야말로 노사간의 믿음을 쌓는 바탕인 것같다며 씩 웃는 모습은 “카리스마란 권위주의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전문성과 헌신, 도량에서 나온다”는 걸 새삼 깨닫게 했습니다.

“꿈이 뭐냐”라는 질문에 자신은 “내일이 없는 여자”라고 답하는 데선 그만 할 말을 잃었습니다. “현재로선 어떻게 하면 회사가 좀더 잘 자리잡을 수 있을까”밖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 다음 문제는 그때 가서 고려하겠다”는 겁니다.

그에겐 머뭇거리고 재고 눈치보는 대목이라곤 없었습니다. 그만 하면 은근슬쩍이라도 잘난 척하거나 한국에서 마냥 편하게 사는 여성들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낼 만도 한데 그 어느 쪽과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한겨울인 지금도 30도를 웃돌고 60년대 우리네 시골처럼 먼지만 풀풀 날리는 이역만리 타국 땅 공단에서 오직 회사와 종업원만을 생각하며 지내는 그를 보면서 “회사가, 세상이 나를 왜 이렇게 푸대접하는가” 때문에 우울하던 저는 콧등이 시큰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여점식 부사장을 만난 뒤, 저는 영업 내지 사교라는 이름 아래 틈만 나면 회사 돈으로 골프장이나 유흥주점을 찾는 몇몇 남자 비지니스맨들이나, “여성의 경쟁력은 외모”라며 유명브랜드로 온몸을 둘둘 감고 힘있는 남성들과의 교분 트기에 힘쓰는 일부 여성기업인들에 대한 비판이나 성토를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엉망진창인 세상을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고 있는 집단은 따로 있는 만큼 힘과 시간이 있으면 쓸데 없는 성토에 쓸 게 아니라 묵묵히 자신의 일에 충실한 이들의 편에 서도록 노력하는 게 백번 낫겠다 싶어진 겁니다.

진정한 아름다움과 리더십이란 허장성세에 있는 게 아니라 실력과 성실함, 주위에 대한 아낌없는 배려에서 비롯된다는 걸 다시 한번 절감하기도 했구요. 그러니 앞으론 행여 못마땅한 이들이 눈에 띄더라도 못본체 하고 대신 여부사장의 화장기 없는 해맑은 얼굴과 반짝거리는 눈을 떠올릴 참입니다.***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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