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고 싶은 계절의 묵화

입력 2016-01-22 15:02 수정 2016-01-23 12:37

< 사진: 성태현 시인>



 

많이 춥습니다. 영하의 온도에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내 세포가 기억하는 수십 차례의 지난 겨울도 그러했으리라 믿습니다. 기진맥진한 정신, 휘청거리던 혼줄이 맥없이 주저앉을 때마다 이를 수습한 것은 육체였습니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밥을 먹었으며 두 발로 다시 길 위에 섰습니다. 영혼을 범하려는 폭설과 칼바람에 굴복하지 말라는 신체의 절대명령이 내려지곤 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올해 겨울은 예전 같지가 않네요. 따뜻한 불빛과 온기가 그렇게 편안할 수 없습니다. 찬 기운에 최소한의 자기방어기제마저 숭숭 뚫린 지금, 아무래도 이웃의 도움을 받아야 할 듯 싶습니다. 결국 마음의 외투 속에 깊이 품었던 살가운 언어들을 호출합니다. 많이 그립고 또 위로받고 싶으므로….

 

공손한 손
- 고영민

추운 겨울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
- 시집 < 공손한 손>(2009, 창비)에서

 

묵화(墨畵)
-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장편(掌篇) 2
- 김종삼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 상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 < 김종삼 전집>(2005, 나남)에서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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