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훈훈해지고 삶의 지표가 되는 두 분이 있습니다. 한분은 우리 아파트 단지의 `세차 아저씨`, 다른 한분은 우리 회사의 `야쿠르트 아줌마`입니다. 두 분 다 성함도 모릅니다. 제가 무심하고 게으른 탓이지요.




하지만 그 두분을 떠올릴 때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불평을 삼가고 욕심을 줄여야지" 마음먹고, "누가 알아주든 안알아주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지"다짐하곤 합니다. 제겐 세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 은혜가 되는 분들이지요.




세차 아저씨를 만난 건 5-6년 됐습니다. 한달에 4만원만 내면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닦아준다는 조건으로 시작했지요. 한동안 지날 때까지 그저 그런가보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어!" 하는 생각이 들게 됐습니다.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기다리시는 데다 정히 늦었을(밤12시 이후) 때는 다음날 새벽같이 와서 세차해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요일엔 원래 해주지 않기로 돼 있는데 일요일 낮에 비나 눈이 오면 저녁에 오셔서 닦아주는 겁니다. 월요일 아침에 더러운 채 나가지 않도록 말입니다. "고객 감동"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데도 단한번 생색조차 내는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늘 "맡겨줘 고맙다"고 인사하곤 하셨습니다. 단하루 거르는 날이 없는 것도 물론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침에 나가 보니 차 앞에 이런 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부친상을 당하여 3일동안 정상적인 세차가 어렵습니다. 그동안 세차에 문제가 생겨도 양해를 바랍니다."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늦게 들어오기로 예정돼 있는 날이나 집을 비울 때면 미리 `기다리지 마시라`고 전해야지 하면서도 생각뿐 실천하지 못하던 저로선 놀라움과 고마움을 넘어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뿐인가요. 아저씨는 이 메모를 남겨놓고도 자녀들을 시켜 이틀동안 세차를 해줬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혔던지요.




이후 저는 그 쪽지를 잘 접어 수첩에 넣고 다닙니다. 그리곤 기대했던 일이 제대로 안돼 기운 빠지고 지치거나, 주위로부터 상처받아 가슴 속에 분함과 억울함이 치밀 때 꺼내 봅니다.




이 쪽지의 글을 읽으며 호흡을 길게 하다 보면 160㎝가 겨우 넘을까 말까 자그마한 아저씨의 언제나 조용한 얼굴이 떠오르면서 문득 작은 일에 속상해 하고 투덜거리는 저 자신에 대해 "에이그...." 싶은 동시에 마음이 가라앉고 주위의 모든 사물에 감사한 마음이 솟습니다.




야쿠르트 아줌마 또한 늘 뭔가 부족한 듯한 느낌에 시달리는 저를 달래고 뉘우치게 합니다. 아줌마를 알게 된 기간은 세차아저씨보다 훨씬 깁니다. 정확히 기억하기 어렵지만 제가 입사하고 그리 오래지 않았을 때부터 우리 회사를 담당하셨으니까 아무리 짧아도 15년은 족히 넘었을 겁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키운 아들이 잘 자라 좋은 대학을 나온 뒤 "그만두시라"고 졸랐는데도 "그럴 일 없다"며 계속하신다고 합니다. 긴 세월을 한결같이 늘 보일 듯 말 듯 미소띤 얼굴로 다니시는 아줌마를 만나면 늘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인물도 여간 고운 분이 아니어서 젊은 시절 유혹도 많았을 법한데 긴 세월동안 단 하루 거르거나 우울한 얼굴을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전날 배달된 떠먹는 야쿠르트를 먹지 않고 책상에 두고 있으면 조용히 그냥 가시는 바람에 혹시 안먹은 게 있으면 아줌마가 오시기 전 안보이는 곳으로 감추게 됩니다.




직업이 직업인 만큼 유명한 분들, 나름대로 내로라 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위로는 역대 대통령부터 장관, 기업가, 국내 최고라는 작가, 화가 음악가 학자 등등. 개중엔 신문이나 방송에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정말 "대단하다" 싶은 분도 있고, "왜 이렇게 과대포장됐을까" 싶은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명한 사람을 만난 뒤 제 가슴은 허전하고, 어딘가 속은 것같고, "사람의 욕심은 어디까지일까" 싶어 쓸쓸해진 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가질 만큼 갖고 이름도 날 만큼 났는데도 더 갖고 싶고 더 유명해지고 싶어 애쓰는 건 물론 더 갖고 더 유명한 사람에 대한 시기심을 감추지 못하는 게 느껴진 탓이지요.






물론 그런 분들과 얘기하고 있으면 반짝거리는 아이디어와 사물에 대한 통찰력 등에 놀라게 되는 수도 많습니다. 은연중 능란한 처세술을 배우게 되는 수도 허다하구요.




그런 이들이 볼 때 세차 아저씨와 야쿠르트 아줌마는 어쩌면 무능하게만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게 세상을 보는 눈을 주고 이기적이고 안으로만 향하는 집착을 제어하게 해주는 분들은 위로 앞으로 내달리느라 옆과 뒤는 볼 여지가 없는 "유명한" 분들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어김없이"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는 세차 아저씨와 야쿠르트 아줌마같은 분들입니다.




저는 세월이 아무리 바뀌어도 좀체 달라지지 않는 부조리와 부패, 아니 갈수록 심해지는 것만 같은 혼란과 어지러움에도 세상이 무너지지도 망하지도 않고 유지되는 건 많이 배우고 잘나서 누가 자신을 챙겨주기를 밤낮으로 바라는 사람들이나 원망과 불평불만으로 세상을 뒤엎고 싶은 이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몫을 묵묵히 꾸준히 감당해내는 사람들 덕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 덕에 저처럼 이기적이고, 이론과 비판만 앞서고, `기회를 갖고 싶다`는 이름으로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숨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계미년 새해입니다. 정말이지 활시위를 떠난 화살보다 빠른 세월을 절감하면서 올 한해 "이것만은" 하는 결심을 해봅니다. "큰 것 찾느라 정신없이 지내지 말고 세차아저씨께 늦으면 늦는다고 미리 연락하는 등의 작은 일이라도 제대로 실천해보자"고 말입니다.***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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