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19년 전, 영어정복을 도와준 나의 대학노트

지금이야 영어 조기 교육 열풍이 불어 유치원 때부터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우는 시대가 되었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중학교가서야 비로소 영어 알파벳을 배우기 시작했다. 영어 알파벳을 배우기 시작한 시점부터 영어는 대학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이 되었고, 입사할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이 영어 실력이었다. 입사 후 승진 시험 과목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영어였음은 말할 나위가 없게 되었다. 


글로벌 경쟁력을 외치는 지금도 영어는 자신의 능력을 검증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작용한다. 영어 공부에 노이로제가 걸려 언제나 타임지나 뉴스위크지를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고, 학교 도서관으로 공부하러 갈 때는 늘 토플이나 토익 책이 가방 속에 들어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LONDON - APRIL 21: A notebook said to contain the Liberal Democrat party's election TV debate strategy is displayed outside party leader Nick Clegg's morning press conference on April 21, 2010 in London. England. The notebook was found in the back of a london taxi cab and handed to The Sun newspaper.The General Election, to be held on May 6, 2010, is set to be one of the most closely fought political contests in recent times with all main party leaders embarking on a four week campaign to win the votes of the United Kingdom electorate. (Photo by Peter Macdiarmid/Getty Images)

 

오랫동안 보지 않은 책들을 정리하다 실로 오랜 만에 대학에 다닐 때 정리해 놓았던 영어 노트를 들여다본다. 무작정 적고 또 적었던 오래된 노트에 영어 공부의 정답이 들어있다니. 다시 보니 조잡한 거 같기도 하고, 그냥 메모 같기도 하다. 그러나 왠지 기억의 뒤편 속으로 사라진 무수히 많은 단어와 표현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을 보니 그 당시 영어 공부에 대한 나의 열정이 느껴진다. 악필인 내가 그냥 끼적여 놓은 영단어가 천개가 넘는 걸 보면 더욱 더 그런 마음이 든다. 천고마비의 계절이 다가왔고 대학 졸업 예정자들이라면 입사시험도 봐야하는 때가 되었다. 내 영어 노트에 담겨 있는 특이한 단어들을 기억을 되살려 소개하고자 한다.

  

 

Nepotism 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요즈음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관직 임용에서의 친척 우대’를 의미하는 단어다. 특정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친인척을 등용하는 ‘정실 인사’ 가 전형적인 nepotism 이다. 19년 전에 정리했던 단어가 현재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다니. 정실인사니 연고주의니 하는 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단어가 영어 시험에만 나오는 단어이기를 바란다. Nepotism이 계속 발생하는 사회는 결코 선진사회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능력이 있어도 권력을 가진 사람을 알지 못하면 출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사회를 망치는 최적의 조건이 nepotism 이다.

  

 

Cacophony라는 단어도 나온다. 귀에 거슬리는 음색을 말한다. 즉, 불협화음이다. 우리 사회가 인사 비리 등으로 얼룩져 만들어 내는 불협화음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Havoc 이라는 단어는 얼핏 보면 왠지 영어 같지 않아 보이지만 천재지변이나 폭동으로 인한 처참한 파괴를 의미한다. 올 해같이 전 세계적으로 자연재해가 많이 일어났고, 우리나라도 태풍의 피해를 많이 받아서 인지 그 의미가 무겁게 다가오는 말이다.

  

 

Malfeasance 라는 말은 법률 용어로 부정한 일이라는 뜻이다. 특히 공무원의 위법행위를 말한다. 공무원이 직위를 이용하여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거나, 업무에서 벗어난 일을 했을 경우에 적용되는 말이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대부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 시킨다는 속담이 있듯이 malfeasance를 저지르는 몇몇 공무원이 문제다. relinquish 는 소유물 따위를 포기하다는 뜻도 있고, 자신이 있던 직위에서 물러나다는 뜻도 있다. 이 단어는 이상하게 안 외워져서 반복해서 연습장에 썼던 기억이 난다.

  

 

Dumbfound 는 깜짝 놀라게 하다라는 뜻이다. He stood dumfounded with astonishment 라고 하면 ” 그는 놀라서 말문이 막혀 서 있었다. ” 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dumb 이라는 단어가 ‘말을 못하는’ 이라는 뜻이니 단어에 예민한 사람은 그 의미를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도 있다. 이 단어의 형태가 재미있어서 친구에게 “나는 너의 말에 한 마디로 dumbfound야” 라는 농담을 던진 적도 있었다. idiosyncrasy 라는 말도 형태적으로 특이하게 생겼는데 역시 그 뜻도 특이성, 특질, 특유의 사고방식이라는 뜻이다. 단어의 형태와 뜻이 잘 들어맞는 거 같다.

  

 

Slap을 분모로 하여 만들어진 합성어들도 정리되어 있다. Slap-stick 은 원래 저속한 희극에서 광대가 상대방을 때리는데 쓰는 막대기를 의미했는데, 익살맞은 활극이라는 뜻이 되었다. 특히, slap-stick comedy는 현대 희극의 중요한 장르가 되었다. 인기리에 방송 중인 한국의 comedy 프로그램은 대부분 이 장르에 속한 느낌이 든다. slap-dash는 무턱대고라는 뜻이고, slap-happy는 얻어맞고 비틀거린다는 뜻도 있고 ‘분별없는’ 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slap-bang 은 무모하게, 맹렬히 라는 뜻이다. 쏜살같이 움직이는 사람이나 물체에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이다.

  

 

Proxemics는 근접학을 말한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연구하여 발표한 개념으로서 개인과 개인의 물리적 거리가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쉽게 말하면, 교실에 들어와서 맨 앞줄에 앉는 사람과 양 옆쪽으로 앉는 사람, 그리고 맨 뒷줄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는 사람들의 성향은 사뭇 다르다는 논리다. 대학 수업시간에 근접학의 개념을 설명해주시면서 맨 앞줄에 앉은 학생들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씀하셨던 교수님의 농담이 생각난다. 물론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를 고취시키기 위해 하신 말씀이었다. gavel은 회의를 진행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작은 망치로 법관이 재판의 종결을 알리거나, 국회의장이 법안이 가결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알리는데 사용되는 것이다. 동사로 쓰이면 ‘ (회의를) 개회하다 ‘ 라는 뜻도 있다.

  

 

Tongue in cheek 이라는 숙어는 ‘빈정대며’ 말하는 태도를 말한다. 비슷한 말로 Sarcastically 라는 말이 있다. tongue-tied 라는 말은 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직역하면 혀가 묶여 있다는 뜻이니 말문이 막힌 상황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골뜨기를 뜻하는 redneck 이라는 단어는 다소 경멸적인 뜻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고 농장의 뙤약볕 밑에서 일만하여 붉은 색으로 그을린 빨간 목을 가진 백인을 지칭한다.

  

(노트 상단의 1991년 10월 3일이라는 날짜를 보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영어 공부에는 정답이 없다. 사람마다 언어를 이해하는 속도도 다르고 특정 단어를 암기하는 능력도 다르다. 잘 외워지는 문장이나 숙어가 있는 반면, 잘 외워지지 않아서 시험에서 계속 틀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효율적인 방법은 있다. 그것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반복적으로 꾸준히 하는 것이다. 


언어 자체는 언어학이 아닌 이상 학문의 분야라고 할 수 없고 습관이라고 해야 맞는다. 갓난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처럼 매일 매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문자를 배워 읽다 보면 쓸 수 있게 되는 이치다. 시험을 위해 단시간에 외우는 방식은 언어학습이라고 할 수 없다. 습관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잊히기 때문이다.

 

영어를 공부하기에 앞서 우리말을 올바르게 구사하는 것이 최고의 영어 학습법임을 말하고 싶다. 영어이든, 독일어이든, 한국어이든 결국은 언어라는 범주 속에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에 모국어를 세련되고 멋지게, 그리고 올바르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영어 또한 쉽게 구사할 수 있다.

 

예년에 비해 길었던 무더위가 물러가고 점점 깊어가는 2010년의 가을, 오랜만에 꺼낸 나의 조촐한 대학 노트와의 만남은 또 다른 외국어를 도전하려 하는 나에게 잔잔하지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 이 글은 9월 15일자 교과부 블로그 아이디어 팩토리에 본인이 기고한 글입니다.-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에서 국제통상협상론과 무역경영론을 가르치고 있다. 해외파견 근무 및 55개국 300여개 도시를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문화에 대한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한류산업과 다문화시대의 협상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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