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시작, 한글이다

입력 2009-10-12 20:11 수정 2009-10-12 20:11
태국 방콕에 있는 유명한 쇼핑 몰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비명 석인 환호성이 터진다. 환호성과 함께 족히 천여 명이나 되는 학생들과 젊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다른 쪽으로 급하게 뛰어 간다. 순식간에 경비원 복장의 사람들이 통로를 통제하고, 운영요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신속하게 움직인다. 큰 일이 벌어진 거 같아서 옆에 있던 사람에게 물어 봤더니 한국에서 가수가 왔다고 한다. 옆에 교복을 입은 학생에게 한국 가수의 이름을 물으니 ‘샤이니’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한 학생은 말이 끝나자마자 대열에 합류하여 뛰어 가버린다. 한글로 온갖 인사말을 적은 큰 종이를 들고 가는 바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한 달 전 태국에서 직접 목격한 광경이다.




샤이니가 한국에서 2008년에 결성된 5인조 남성 그룹이라는 사실은 한국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태국 사람들도 아는 한국 가수를 한국인인 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그 순간에는 마치 내가 샤이니가 된 거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왠지 자랑스러웠다.   




9월 초부터 중순까지 약 2주간 태국, 베트남, 대만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이 3개국에서만 신종 플루로 사망한 사람의 수가 거의 200명에 육박한다는 사실이 자못 두렵기까지 했지만, 현지에 사는 사람들은 짐짓 태평한 것처럼 보여 나의 걱정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특히, 비즈니스 상담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의례적으로 교환하는 인사말이나 환담에서, 나는 신종 플루에 대한 걱정으로 말문을 튼 반면에, 상대방의 관심사는 이구동성으로 한국의 TV 드라마와 배우, 가수들에 대한 것이어서 더더욱 그러했다. 한국의 가수나 배우들의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며 그들이 한국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 가를 구체적으로 물어올 때는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있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독일 외교관 친구의 집으로 초대를 받아 저녁 식사를 하는데, 이 독일 친구 역시 베트남에서의 한국 드라마와 연예인에 대한 인기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국어 열풍과 한국 음식, 한국에서 온 신제품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다고 강조하며 한국은 정부차원에서 이런 베트남 내의 우호적 분위기를 십분 활용해야한다는 뼈있는 말도 했다. 적어도 베트남에서는 독일보다는 한국이 훨씬 우위에 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우리뿐 아니라 베트남에 있는 외국인들조차 한류를 부러워하는 눈치다. 서구인들에게는 중국과 일본으로 대변되던 아시아 문화. 그러나 동남아 국가에서의 식을 줄 모르는 한류 열기가 한국 문화의 차별성과 우수성을 홍보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다.




대만에서는 매년 겨울에 한국에 스키를 타러 간다고 말하는 거래선도 있었고, 한국음식 중 불고기와 비빔밥을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한국 노래 이름을 줄줄이 늘어놓는 이도 있었고, 이제 막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이도 있었다. 열흘 이상의 해외출장일정 중 현지에서 주말을 맞이하게 되면 모국어가 아닌 언어 사용으로 인한 정신적 긴장감, 다른 음식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으로 심신이 지쳐 숙소에서 쉬게 되는데, 이번 출장은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인지 이런 피로감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한류의 가치를 몸소 실감하니 한국인으로서의 책임감이 느껴졌다. 내 스스로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겨야함은 물론, 우리 것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야겠다는 작은 다짐도 했다.




드라마, 영화, 노래도 중요하지만 결국 모든 한류의 시작은 우리말인 한글에서 시작되는 거 같다. 이제 막 지난 한글날, 정부 차원에서 한글을 차세대 한류의 시작점으로 선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출장 기간 내내 한류의 가치를 실감하는 것의 중심에 이 세상 모든 언어를 자유자재로 표현해 낼 수 있는 한글이 있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와 지금 동남아인들이 열광하는 모든 컨텐츠가 기록되고 표현되는 한글이야말로 한류의 본질일 것이다.



- 이 칼럼은 10월 12일자 서울신문에 실린 본인의 칼럼입니다.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에서 국제통상협상론과 무역경영론을 가르치고 있다. 해외파견 근무 및 55개국 300여개 도시를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문화에 대한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한류산업과 다문화시대의 협상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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