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계속되는 염천에 주변 사람들조차 지쳐 보이는 시절이다. 열대야 현상이 계속되면서 밤에 잠을 설치고 아침 일찍 출근하여 업무를 보다 보면 간 밤의 피곤함이 어깨로 몰려와 잠시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 뿐이다. 유럽처럼 짧게는 4주, 길게는 8주간의 여름 휴가가 있어 그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와 피곤을 풀고, 일에 치여 읽지 못했던 책을 마음 껏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여름의 무더위는 그저 사람을 전전긍긍하게 만들 뿐이다.

몇 년 전, 유럽 친구들이 " 브라이언, 한국의 여름 휴가는 몇 주니.? " 라고 물었을 때, 몇 주가 아니고 주말을 포함해서 7일 정도라고 부끄러움 반, 부러움 반의 뉘앙스로 말했었던 기억이 새롭다.

지난 주에는 정말 비가 많이 와서 여러 지역이 침수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처럼 밤새 내린 비가 아침으로 이어지고, 아침부터 이어진 비가 다시 밤 늦게까지 내렸다. 비가 너무 내리는 날은 마음도 우울해져서 창밖을 보면서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딱히 머리 속에 생각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면서.

여름에 비가 많이 오거나, 겨울에 눈이 많이 오거나, 날씨가 궂으면 언제나 기상청의 예보가 생각나기 마련이다. 언제 비가 그칠 것이며, 당일에 내리는 비의 양을 예보를 통해서 미리 알아보는 것은 옷차림 뿐 아니라 우산을 지참하고 나가야 할 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래서 날씨가 궂은 날에는 저녁 뉴스의 끝자락에 나오는 일기예보를 주의 깊게 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올 해는 기상청의 예보가 거의 들어 맞지 않았다. 기상청 내부에 어떤 문제가 있는 지는 잘 모르지만, 비가 많이 온다고 한 지역에서는 비가 거의 오지 않고, 비가 안 온다는 지역에서는 폭우가 쏟아져 많은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거의 사회문제가 되다시피한 기상청의 예보 아닌 오보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예전에 구식 장비를 사용해서 날씨를 예상할 때의 정확도가 소위 수퍼 컴퓨터로 업그레이드한 후의 정확도 보다 훨씬 낫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언론에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수퍼 컴퓨터 한대의 가격은 약 500억원이라고 한다. 유지비용 또한 만만치 않아서 대당 연간 유지비는 25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가히 'super'라는 수식어를 실감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수퍼 컴퓨터를 보유한 사실이 아니고 그 것을 적절하게 활용해서 실질적인 편리함을 만들어 내는 능력인데, 사용능력을 계량적으로 표현하면 미국이 100, 일본이 47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사용능력은 어떻게 될까. 1 정도라고 한다.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보다 100분의 1의 사용 능력. 인력 부족이나 숙련된 엔지니어가 없다는 등의 기상청이 변명처럼 늘어 놓는 이야기를 논하지 않더라도, 전체 능력의 백분의 일밖에 사용할 수 없다면 굳이 수퍼 컴퓨터를 도입했었어야 할 지가 의문스러울 정도다. 우리가 언제나 좋은 의미로 받아 들이는 ' 업그레이드 ' 가 모든 분야에서 다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수퍼 컴퓨터의 사용 능력을 말하기 전에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연 우리가 가진 능력 중에서 몇 퍼센트의 능력을 사용하고 있을 까. 매너리즘에 빠져, 게으름에 빠져, 아니면 자만심에 빠져, 우리가 가진 여러가지 창조적인 능력들을 방관하고 있지는 않을까. 지난 세기가 낳은 최고의 천재 아이슈타인은 뇌의 능력을 3퍼센트 정도 사용했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우리 스스로는 수퍼 컴퓨터인데, 나쁜 생활 습관이나 자포자기로 엄청한 능력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 까. 기상청의 수퍼 컴퓨터가 우울한 생각을 하게 하는 무더운 날의 오후다.

오늘 아침부터 치루어 지고 있는 교육감 선거, 각 후보들이 쏟아 내었던 공약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 글로벌 인재 육성', ' 글로벌 교육 강화' 가 그 것이다. 다들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5백억원짜리 수퍼 컴퓨터를 도입하고 1퍼센트 밖에 활용하지 못하는 역설에서 볼 수 있듯이, 엄청난 재정적 비용이 드는 그럴 듯한 제도 보다는 입시에 지쳐서 스스로의 능력을 알아 보지도 못하는 학생들의 자신감을 회복시켜주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삼복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칠월 말의 오후, 기상청의 수퍼 컴퓨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업그레이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업그레이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수퍼 컴퓨터의 엄청난 능력, 그러나 거의 이용하지 못하는 서글픈 현실의 맥락으로 본다면,글로벌 인재의 의미는 늘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기르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 지 모르는 업무 환경의 업그레이드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 자체와 다름 아니다.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에서 국제통상협상론과 무역경영론을 가르치고 있다. 해외파견 근무 및 55개국 300여개 도시를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문화에 대한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한류산업과 다문화시대의 협상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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