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설운도씨가 부르는 `향수`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저는 얼마 전 SBS TV의 `도전 1000곡`에서 듣고 솔직히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긴 데다 부르기도 쉽지 않은 노래를 부드럽고 감미롭게 자기 스타일대로, 그것도 끝까지 외워서 부르는 걸 보고 "아! 저 가수의 명이 괜히 긴 게 아니었구나" 싶었습니다.




`도전 1000곡`은 `CSI 과학수사대`(MBC 토요일 오후 1시10분)와 함께 제가 가장 즐겨 보는 TV프로그램중 하나입니다. 일요일 아침 8시 30분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간에 방송되지만 출근하지 않는 날엔 자주 챙겨 보지요.




가수 탤런트 개그맨 등 다양한 출연자가 나와 처음엔 5백곡,결승에 진출하면 1천곡 중에서 무작위로 골라 가사를 안틀리고 끝까지 부르는 사람이 우승자가 되는 `노래방 프로그램`입니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멈추게 된 이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노래를 좋아하는 탓이기도 하지만 출연자들을 통해 느끼는 게 많아서입니다.




제 경우 어떤 노래가 갑자기 가슴에 와닿는 수가 있는데 그건 대부분 그 노래를 취입한 가수가 멋진 실력을 발휘할 때가 아닌 아마추어가 다소 서툰 솜씨로 부를 때입니다. 실제 추석과 설날에 방송되는 `외국인 노래자랑`에 나온 출연자가 영 어쭙잖은 우리말로 열심히 노래하는 걸 보면서 그 곡이 좋아졌던 적이 여러번 있지요.




`도전 1000곡` 또한 그같은 경험을 자주 하게 합니다. 신세대 가수가 부르는 `뽕짝`은 트로트가수가 부를 때와 전혀 다른 즐거움을 가져다 주고, 가수가 아닌 탤런트나 개그맨의 노래는 가수의 그것과는 또다른 분위기를 맛보게 하니까요. 성시경이라는 가수가 노래를 곧잘 하고 성실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은 것도, 서문탁이라는 가수의 가창력이 뛰어나다는 걸 안 것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였지요.




물론 나이든 세대에겐 너무나 익숙한, 그래서 모른다는 게 이상하기만 한 노래를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얼굴로 서있는 댄스가수를 볼 때면 어쩔 수 없는 세대차가 느껴져 다소 씁쓸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자주 잊어버리곤 하는 현실(나이 먹었다는)을 인식시켜줘 나쁘지 않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또 게임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자세와 마음가짐을 읽게 합니다. 주어진 노래를 모를 때, 가사를 틀려 무대에서 내려와야 할 때, 다른 출연자가 노래할 때, 결승전에 진출한 다음 경쟁자가 노래하는 걸 지켜볼 때 드러나는 표정과 태도는 그 사람의 성격과 상황 대처 능력, 속내를 감추는 솜씨 등을 짐작하게 하는 겁니다.




예선과 결승을 거쳐 우승자를 뽑는 게임이므로 출연자는 누구나 초조할 게 틀림없습니다.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출연자 모두에게 골고루 카메라가 돌아가는 게 아니라 주어진 노래를 끝까지 잘한 사람은 무대에 여러번 올라갈 수 있지만 일찍 탈락하면 다른 사람이 노래할 동안 지켜봐야 하는 신세가 되기도 하구요.




바로 이 점 때문에 사람들의 심정이 읽히는 겁니다. 일찍 탈락한 다음 어떻게든 카메라를 더 받으려 다른 사람이 노래할 때 뒤에서 춤을 추는 등 끼어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뒤에 처져 가만히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쟁자가 노래할 때 즐거운 얼굴로 따라 부르기도 하고 가사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초조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해 딱딱한 표정으로 응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선 또 김수희 최진희 양희은 설운도씨같은 중장년 가수와 강부자씨같은 나이든 탤런트, 이제 막 데뷔한 신인 댄스가수를 뒤섞어 섭외하는데 게임에 대한 태도나 속마음 감추는 솜씨(?)는 나이와 별로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후배들은 아무래도 부담이 적고 선배들은 최소한 체면치레는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겠다 싶긴 하지만요.




주어진 일에 대한 성실성과 치열함도 보입니다. 문자 그대로 노래방 프로그램인 만큼 섭외한 뒤 출연하기까지 다소 시간적 여유를 준다고 합니다. 때문에 섭외받은 뒤 줄곧 노래방에서 산다는 출연자도 많습니다.




결과는 비교적 명확하게 나타납니다.게임의 룰이 공정하다는 증거겠지요. 간혹 라디오의 노래프로그램 진행자는 좀 유리한(많은 노래를 집중적으로 들을 테니까) 게 아닌가 싶지만 흔한 일이 아니므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선 또 음정과 박자는 심사하지 않습니다.가사만 맞으면 되는 것이지요. 음치라도 열심히 연습해 가사만 외우면 된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노래를 못하는 사람은 가사를 잘 외우지 못하는 게 일반적인 만큼 전혀 상관없다곤 할 수 없겠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그만큼 점수를 딸 수 있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똑같은 시간만큼 여유를 주고 똑같은 조건에서 하는 게임, 그런데도 게임에 임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모두 다릅니다. `나를 알리는 기회, 평소의 모습과는 또다른 면모를 확실하게 인식시키는 기회`라고 생각, 열심히 연습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오라니 나왔지 뭐` 식의 자세를 들통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그렇지,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면 끝을 보는 거지" 싶어 세상의 불공정함에 지쳐 놓아버리고 싶던 마음의 끈을 다시 붙잡게 됩니다. 설운도씨가 `향수`를 그렇게 잘 부르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른지요.




부를 기회가 많지 않을 게 뻔한 노래를 위해 가사를 외울 정도의 노력을 하는 중년가수의 모습은 이 가을, 제게 "기회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제발 이것저것 핑계대지 말고 열심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신호로 다가와 가슴 깊이 박혔습니다.기회란 늘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의 몫이겠지요. 그렇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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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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