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하찮은 것, 남에게 소중한 것

입력 2007-01-31 02:41 수정 2007-07-21 00:45
해외 여행이나 출장을 다니다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지고 간 물건을 현지에 버리고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꼭 버리고 싶어서 버린다기 보다는 그 나라에만 있는 특산물을 사거나 친구에게 줄 선물 등을 하나 둘씩 사다보면 여유가 있었던 여행가방의 공간은 어느덧 더 이상 넣을 수 없을 정도로 가득차게 된다. 아무리 꽉꽉 눌러 담아도 가방이 터질 것같은 상황이 되면 한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즉, 한가지를 버리고 다른 한가지를 선택하는, 기회 비용을 따져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신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평소에 갖고 싶었던 명품 브랜드의 제품을 큰 마음 먹고 샀을 경우, 신고 있던 신발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다. 그것이 오래된 낡은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된다. 헌 신발을 가방에 다시 넣어 갈수도 없거니와 여행 가방의 공간은 이미 꽉 찬 상태여서 버리는 것 외에는 여지가 없다. 물론 작은 쇼핑 백에 넣어 갈 수도 있지만 장기 출장 중에는 여간 큰 짐이 아닐 수 없다. 고민 끝에 결국 새로이 산 제품을 챙기고 헌 것을 버리는 다분히 경제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내가 이스라엘 Hebrew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할 때였으니까 십 사년 전의 일이다. 여름방학 때 난 이집트를 처음으로 여행했다. 예루살렘에서 버스를 타고 사나이 반도를 거쳐 카이로로 들어 가는 일정이었다. 꿈에 그리던 이집트를 간다는 사실 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었던 기억이 새롭다. 나에게 있어 새로운 도시에 입성한다는 것은 마치 나의 뇌 속에 창조적인 숨결을 불어 넣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숙소를 정하는 일이다. 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싼 값의 숙소를 찾을 수 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낯설은 도시에서 안전이 의심되는 듯한, 정말 처참해 보이는 곳에서 잘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난 하루에 15 미국 달러 정도 되는 한국 기준으로는 상당히 싼, 그러나 이집트 기준으로 치면 그렇게 나쁘지 않은 호텔에 짐을 풀었다. 방도 꽤 넓었고 침대의 시트도 깨끗했고 무엇보다 샤워실이 넓은 것이 좋았다. 거기에 아침 식사마저 포함된다니 공짜로 여행하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첫째 날은 잘 쉬고 다음 날부터 나의 여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워낙 걷는 것을 좋아한 나이다 보니 지금은 고인이 된 Arafat PLO 의장이 졸업했다는 카이로 대학이며, 고대 이집트 왕국의 보물들로 가득 메워진 국립박물관 등을 보며 하루 좋일 걸어 다녔다. 그런데 너무 걸어서 인지 신발의 앞 축이 닳아 실밥이 터졌다. 한국에서부터 신고 온 운동화이기도 했지만 예루살렘에서 생활하면서 너무 많은 성지를 걸어 다녀서  뒤 축도 참 많이 닳은 운동화이기도 했다.

난 신발을 사기로 했다. 그래서 호텔 근처에 있는 신발가게로 들어 갔다. 적당한 가격에 흥정을 마치고 새 운동화를 사 신었다. 헌 운동화는 비닐 백에 싸주었다.  신발 가게에서 버리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미국 브랜드 운동화였기 때문에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아깝다는 생각에 난 헌 신발을 호텔로 가지고 돌아 왔다. 그리고 침대 한 켠에 놔두었다.

카이로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로 향해야 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쌌다. 아직도 침대 옆 비닐 백 속에 들어 있는 나의 낡은 운동화. 난 신발을 버리기로 했다. 굳이 신고자 한다면 좀 더 신을 수 있겠지만 이미 새로운 운동화를 산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다음 행선지로 그 비닐 백을 들고 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버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보유하고 싶은 마음과 버리고 싶은 마음이 공존할 때, 난 버림을 택함으로서 보유하는 것에서 오는 이익을 기회 비용으로 지불한 것이다.  비닐 백을 호텔 방 안에 있는 쓰레기 통에 던져 버리고 호텔 프런트로 가서 체크 아웃 수속을 밟았다.

잠시 후에 방을 청소하는 이집트 아줌마가 내 신발이 든 비닐 백을 가지고 황급히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는 말했다.

" 손님, 신발을 잊으셨군요."

난 좀 황당해졌다. 쓰레기 통에 버린 물건을 잊은 물건이라며 가지고 내려오다니.  난 말했다.

" 그거 버리는 거예요."

그러자 아줌마가 아주 어렵스레 말을 이었다.

" 손님, 그러면 이 신발을 제가 가져도 되나요. 신발이 너무 새거라 버리기가 정말 아깝네요."

난 정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뒤 축도 많이 닳고 앞 축의 실밥도 터졌는데 새거라니.  난 이집트 여인에게 신발을 가지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좋아했다.

다음 행선지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난 내게 아주 하찮은 것도 다른 사람에게는 소중한 것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자각 아닌 자각 속에 빠졌다.  이 세상은 참 오묘하다. 내게 필요없는 것이 남에게는 필요한 것이 되고 내게 심각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평이한 것이 될 수 있고, 나의 기준으로는 더러워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가 있다는 자각말이다.

글로벌 리더가 되어 조직을 이끌고 싶다면 나에게 하찮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귀중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열린 사고부터 하기 바란다.  Megatrend 의 저자 John Naisbitt 교수도 말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Opne Mind)이 필수라고. 쉽게 열릴 것 같아도 결코 쉽게 열리지 않는 것이 우리 마음이지만 말이다.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에서 국제통상협상론과 무역경영론을 가르치고 있다. 해외파견 근무 및 55개국 300여개 도시를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문화에 대한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한류산업과 다문화시대의 협상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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