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내 마음 속의 의심(4)

차에서 내린 나를 하싼은 방으로 인도했다. 그것은 방이라기 보다는 헛간처럼 보였다. 바닥은 그냥 흙이었고 아주 오래되어 나무의 결마저도 희미해진 긴 탁자 같은 것이 양쪽 벽에 붙어 있었다. 벽도 너무 낡고 오래되어 칠한 것이 많이 벗겨져 있었다. 이것이 정말 방이란 말인가. 우리나라 농촌에 있는 헛간보다 나을 것이 없어 보이는 장소가 방이라니.

 

내가 약간은 어리둥절해 있을 때, 하싼은 나에게 가족들을 한 명씩 소개했다.

 

“ 이분이 나의 아버지시고, 이쪽은 나의 형님이시죠.

 그리고 이분은 나의 어머니시고, 이쪽은 나의 누님이세요.

 마지막으로 저쪽에 있는 아이들이 나의 조카들 입니다. ”  

 

남자와 여자를 구분해서 소개하는 것에서 난 이슬람의 방식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부모님을 동시에 먼저 소개하고 나머지 가족들을 소개하는 것이 보통일 텐데 남자인 아버지와 형을 먼저 소개하고 여자인 어머니와 누나를 소개하는 것이 우리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이슬람의 교리는 종교이기에 앞서 그들의 생활 규범이었다.

  

하싼의 아버지는 아랍어로 나에게 말했고 곧바로 하싼의 통역이 이어졌다.

 

“ 우리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은 우리 집의 귀한 손님이니

   편하게 있다가 가세요. 알라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랍니다. ”

 

이 말을 듣고 나니 긴장했던 나의 마음이 약간 안정되었다. 아니, 온 몸의 긴장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위험에서 벗어난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하싼의 어머니는 가족들을 향해 무언가를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싼이 통역해주지 않았다. 하싼의 가족들이 모두 방에서 나가고 하싼과 나만 방에 남았다. 하싼은 자신이 이 집에서 태어났으며 자신의 형제자매들도 모두 이 곳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말했다. 하싼과 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집트와 한국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약 삼십 분 정도가 지났을 까 하싼의 누나가 커다란 양은쟁반에 빵과 치즈 같아 보이는 것을 들고 방으로 들어 왔다. 하싼이 말했다.

 

“ 우리 집에서 직접 만든 빵과 양의 젖으로 만든 치즈예요.

   마음껏 많이 드세요”  

 

난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먹으면 왠지 잘못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었고 빵과 치즈가 정갈해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내온 음식을 거부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빵의 한 조각을 잘라 치즈를 발랐다. 그리고는 용기를 내어 입에 넣었다. 아랍식 빵의 투박함과 치즈의 신맛이 혀를 자극했다. 비릿한 양의 냄새가 느껴졌지만 난 계속 씹어 넘겼다. 긴장했던 나의 위 속으로 음식물이 들어가는 순간 전율 아닌 전율이 느껴졌다. 전율이라기 보다는 완전 무공해 식품에 대한 위의 반응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았다.

 

자연의 맛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불필요한 긴장이 만들어낸 망설임을 순간에 일소시키는 맛이었다. 맛이 너무 좋았다. 난 큰 빵 한 개와 종지에 가득 차 있었던 치즈를 순식간에 비웠다.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하싼의 가족들은 깔깔 웃으며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나의 먹는 모습에 이렇게 즐거워하는 것을 난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즐거워졌다. 그들의 인간적이고 천진스런 미소를 느낄 수 있었다.

 

남이 먹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난 행복의 기준은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는 진리를 되새겼다. 말로는 늘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돈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우리들 아니었던가. 약간의 돈 때문에 싸우고 욕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일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난 순간 부끄러워졌다. 그들의 미소를 더 이상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큰 부끄러움이 마음 속에 밀려왔다. 내가 저들의 순수한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었다. 하싼의 순수한 제의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던 나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바쿠시시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나의 물질만능주의에 놀랐다. 내가 하싼에게 약간의 바쿠시시를 주어 돌려보내버릴 생각을 잠시나마 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길거리에서 외치는 바쿠시시에 대한 귀찮음을 난 이집트인 전체를 대상으로 투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싼이 나에게 바쿠시시를 달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도 나의 마음 속에는 바쿠시시만 주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편견이 쌓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 서비스를 제공 받고 당연히 주어야 하는 불문율과도 같은 팁과 이집트인이 외치는 바쿠시시가 본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을 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내가 식사를 마치자 하싼은 나를 집밖으로 안내했다. 사탕수수 밭에 하싼의 조카들이 뛰어 놀고 있었다. 하싼은 사탕수수를 잘라 나에게 건네었다. 그리고는 시범을 보이기라도 하듯이 입으로 사탕수수대를 배어 물고는 씹었다. 나도 하싼이 하는 것처럼 똑같이 했다. 달콤한 즙이 나와 나의 입을 기쁘게 해주었다.

 

사탕수수밭에서 하싼의 가족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자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강렬한 이집트의 태양이 기울고 있었다. 하싼도 나에게 나의 숙소로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알려 주었다. 난 하싼의 가족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그리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들은 나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손님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

 

난 차에 올랐다. 하싼의 가족들은 내가 탄 차가 안보일 때까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방인인 나에게 이렇게 호의를 보낸 하싼과 그의 가족들에게 무어라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 지를 몰랐다. 그리고 다시 내가 마음 속에 품었던 의심에 대해 부끄러워졌다. 차는 아침에 하싼의 집에 올 때와 같이 사탕수수밭을 굽이굽이 따라가고 있었다.

 

우리가 외치는 진정한 국제인이란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늘 말하는 글로벌 인재가 누구이겠는가. 상대방의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일 줄 아는 관대한 마음을 가진 자, 하나의 현상을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자, 그리고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의 문화와 맛을 열린 마음으로 즐길 줄 아는 자가 아니겠는가.

 

룩소르를 떠나 이집트의 다른 도시를 여행하는 나머지 일정 동안 바쿠시시는 더 이상 나에게 나쁜 소리로 들리지 않았고, 난 일단 의심부터 하는 사람에서 일단 믿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 끝 –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에서 국제통상협상론과 무역경영론을 가르치고 있다. 해외파견 근무 및 55개국 300여개 도시를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문화에 대한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한류산업과 다문화시대의 협상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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