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함은 통하지 않는다

입력 2006-09-17 04:29 수정 2006-09-18 14:52
애매함은 통하지 않는다

: 일상생활에서조차 정확함이 돋보이는 독일

 

“ Hauptbahnhof (독일 각 도시의 중앙역)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Munchener strasse 인데 오른쪽 방향으로 200미터 정도 가면 작은 우체국이 나온답니다. 그 우체국을 끼고 300미터 정도를 걸으면 큰 길이 나오는데, 큰 길에 들어서면 건너편에 중앙역이 바로 눈에 들어 와요.”

 

“정말 고맙습니다.”

 

“행운을 빌어요, 젊은이”

 

내가 환갑은 너끈히 지났을 것 같은 독일 아저씨에게 길을 물었던 장면이다. 난 그 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오른쪽 방향으로 발을 돌렸고 30미터 정도를 가다가 뒤를 돌아 보았다. 마치 내가 제대로 가고 있나를 확인하는 듯한 표정으로 아직도 그 자리에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독일 아저씨. 난 다시 손을 흔들어 고마움을 표시했고 그 아저씨도 나에게 손을 저었다.

 

독일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중 난 주말이면 독일의 많은 도시를

여행했다. DB(Deutsche Bahn: 독일의 철도)가 워낙 잘 깔려 있어 어떤 도시든 쉽게 여행할 수 있었다. 독일의 전 국토를 실핏줄과 같이 이어주는 DB는 다른 나라의 철도에 비해서 정확한 출도착 시간으로도 그 명성이 높다.

 


 

 

 

 

 

 

 

 

 

 

(독일 각 도시의 중앙역인 Hauptbahnhof)

 

 

아무리 여행의 달인이라고 해도 가끔은 길을 잃게 마련이다. 서울에서도 길을 잃는데 하물며 유럽의 도시를 여행할 때는 자칫 한 눈을 팔다 보면 방향감각을 잃게 된다. 초행길에서는 여행 안내소에서 받은 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일단 방향감각을 잃으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되고 이곳 저곳을 헤매게 된다. 더구나 지도는 각 나라의 현지어로 인쇄되어 있어 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럴 때는 주변의 행인들에게 길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난 여행 중에 길을 많이 묻는 편이다. 그 때마다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들의 일도 바쁠 텐데 친절한 것은 기본이고 아주 세세한 골목이름과 이정표가 될 법한 건물의 방향까지 정확히 알려 주었다. 한국적인 정서로는 아주 황송할 정도로 자세하게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가 생각났다.

 

“남대문 시장이 어디예요.?”

 

“이 길로 쭉 가시면 되요”

 

“저 뒤쪽에 있어요”

 

“그냥 이 쪽으로 가시면 되요”

 

한국에서 길을 물으면 여러가지 대답이 나온다. 그러나 보통 방향

정도를 알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쭉’ 이라는 말도, ‘저 뒤쪽’ 이라는 말도 ‘그냥’이라는 말도 어떻게 보면 참 애매한 말이다.‘쭉’ 이라는 말이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고,‘저 뒤쪽’이라는 말이 어떤 건물이나 장소의 뒤쪽인지가 분명하지 않고,‘그냥’ 이라는 말은 그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 애매한 말을 듣고 길을 찾아 가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거니와 그렇게 간단하게 길을 알려 주는 사람에게서 신뢰감을 찾을 수도 없다. 그래서 좀 가다가 다시 길을 묻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외국거래선들로부터 한국 제품은 디테일이 떨어진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겉은 그럴듯해 보여도 세세하게 정확도를 따지면 어딘가 아직은 부족하다라는 말이 아닌가 싶다.

 

길을 안내할 때조차 정확한 방향, 거리, 장소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그들과 다분히 애매한 말로 대충 말하는 우리는 많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무엇을 하던 정확하고 구체적인 개념을 가지고 말하는 습관은 어렸을 때부터 교육되어지지 않으면 형성되기 어렵다. 국제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하는 글로벌 인재에게는 꼭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 독일아저씨가 한국이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계신 곳이 종로입니다. 오른 쪽 방향이 남대문 방향이구요. 횡단보도를 건너서 300미터 정도를 걸으시면 한국은행이 나오고, 한국은행 앞에 지하도가 있는 데 그걸 건너시면 남대문 시장의 입구가 나옵니다.”

 

물론, 그 독일아저씨가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랐다면 과연 이렇게 말했을까라는 의구심도 같이 들었다. 

 

친절하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자, 역시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가능성을 많이 가진 사람이다.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에서 국제통상협상론과 무역경영론을 가르치고 있다. 해외파견 근무 및 55개국 300여개 도시를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문화에 대한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한류산업과 다문화시대의 협상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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