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팝콘& 신촌& 왼손잡이

어느날 갑자기 걷지 못하거나 보지 못하게 된다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리라곤 상상도 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걷지 못하거나 보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불편할까에 대한 생각 또한 적습니다.

2000년에 방송된 SBS드라마 `팝콘`엔 신체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불편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웨딩전문업체 직원으로 어느날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은 김규리와 웨딩사진기사로 나온 송승헌의 사랑을 다룬 이 작품엔 `맛있는 청혼`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의 정준이 김규리의 동생인 장애인 대학생으로 등장했지요.

걷지 못하는 정준은 여자친구가 가난과 학력 컴플렉스에 시달리자 어느날 휠체어를 타고 거리로 나섭니다. 두사람은 노래방에도 갈수 없고 그 흔한 스티커사진도 함께 찍을 수 없습니다. 노래방은 대부분 지하나 2층에 있기 때문이고, 스티커사진기는 똑같이 서서 찍도록 높이가 맞춰져 있는 까닭이지요.

버스나 지하철 이용도 엄두를 못내고 보도에서만 왔다갔다 하는데 그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10m도 못가 툭툭 끊어져 있는 보도의 높은 턱 때문입니다. 정준은 여자친구에게 말합니다. “건강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너는 나보다 백배 행복하다. 그러니 자신감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구요.

드라마속 정준이 겪은, 장애인은 아무데도 갈 수 없는 도시, 이게 우리의 실상입니다. 실제 길거리의 올록볼록 시각장애인 유도블럭만 해도 월드컵대회를 계기로 많이 깔았다곤 하지만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해놓은 곳 투성이입니다.

비교적 잘돼 있다는 `신촌만 해도 먹자골목의 경우 유도블럭이 건물쪽으로 치우쳐 그걸 믿고 걷다간 자칫 간판에 부딪치거나 음식점에서 내놓은 숯불화로에 걸려 넘어지거나 데이기 십상`입니다. 깔끔한 보도블럭과 곳곳에 놓인 쉼터(돌)를 보며 즐거워하던중 유도블럭의 위치를 보고 저는 아찔했습니다. 군데군데 놓인 돌도 시각장애인에겐 걸림돌에 다름아니겠다 싶기도 했구요.

횡단보도와 연결되는 곳임을 알려주려 깔아놓은 유도블럭도 흉내만 낸 곳이 수두룩합니다. 끄트머리에 한줄만 깔아놓은 곳도 있지요.맹인이나 휠체어가 다니려면 횡단보도뿐만 아니라 보도와 보도사이 즉 건물과 건물 사이가 자연스레 연결돼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은 높은 턱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이나 지체부자유자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우리 사회에서 왼손잡이가 겪는 불편함 또한 간과하기 어렵습니다. “모두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 난 아무 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라는 패닉의 노래도 있거니와 예전엔 학교에서 손을 들라는데 왼손을 들면 이유를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야단부터 쳤습니다.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선 성냥개피를 이용,억지로 오른손 사용법을 가르치기도 했구요.

 

이런 일은 줄었다고 해도 왼손잡이의 일상생활을 위한 배려는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오른손장갑을 왼손에 끼면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데도 왼손잡이를 위한 가위는 구경조차 하기 힘듭니다.뿐인가요. 아이들 급식시간에 주는 식반부터 야구글러브 키보드 문고리까지모두 오른손잡이를 위한 것들뿐입니다.

서양의 경우 지금은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도 거의 없고 따라서 왼손잡이를 위한 물품도 많지만 중세 이후 한동안은 왼손잡이를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절대왕정의 등장에 따라 지배층이 생기고 일반에 대한 교육이 확대돼 글쓰기와 식사예절이 중시되면서 오른손 사용이 강조된 결과 왼손잡이는 열등함과 불길의 상징이자 저항의 표시로 여겨졌다는 것이지요.

서양에서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과 사시가 시정된 건 1차대전 이후랍니다. 전쟁에 나가 오른팔(오른손)을 잃고(오른손잡이는 오른손을 잃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군요) 돌아온 젊은이들이 왼손으로 글쓰고 밥먹고 인사하고 성호를 긋자 예전과 달리 애국심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져 왼손잡이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왼손잡이를 열등하다고 구박한 게 단지 소수에 대한 다수의 횡포였음은 알렉산더대왕과 레오나르도 다빈치, 대문호 괴테와 마크 트웨인,화가 폴 클레,영국수상 처칠,아프리카의 아버지 슈바이처는 물론 포드와 제럴드 부시,클린턴 등 미국의 대통령 상당수가 왼손잡이라는 데서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영국의 넬슨제독,피아니스트 비트겐슈타인은 전선에서 오른팔을 읽고도 왼손만으로 자기 몫을 다해냈고,라울 소사 역시 사고로 오른손가락이 마비된 뒤 `황금의 왼손피아니스트`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테니스 펜싱 크리켓등 마주 보고 하는 경기 선수엔 왼손잡이가 16%이상이라는 통계도 나와 있구요.

왼손에 대한 제약이 줄어든 까닭인지 지난해 스웨덴에서 발표된 것처럼 임산부에 대한 초음파진단이 늘어난 때문인지 국내에서도 왼손잡이가 증가한다고 합니다.1997년 한 주간지에서 조사한 결과 고교 2학년(1980년)은 4.22%였지만 초등학교 1-3학년(88-90년생)은 6.97%나 됐다는 겁니다.게다가 이미 5년전 통계구요.

 

그런데도 학교에선 여전히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의 오른쪽에 앉혀 팔이 부딪치게 만들고, 가사시간이나 미술시간에 오른손 가위를 사용하게 합니다. 조금만 신경써도 불필요한 갈등이나 충돌, 좌절감을 맛보지 않게 해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관심하게 대처해 어린 학생이나 청소년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지요.

정몽준의원이 왼손잡이용 물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감세 혹은 면세 혜택을 주거나 개발자금을 지원하고 일정규모 이상의 공공시설이나 군대 등에 왼손잡이용 물품 설치를 의무화하는 조항을 포함한 법(왼손잡이 편의증진법) 제정을 추진중이라고 합니다.

법이 생기면 왼손잡이용 물건이 늘어나고 왼손잡이들이 무심코 왼쪽에 지하철카드를 댄 뒤 문이 안열려 당황하는 일도 줄어들겠지요.법 제정이 능사가 아니라고 해도 법에서 지원하고 강제하면 조금은 달라질 테니까요.편견은 어떤 것이든 피해 당사자의 노력이나 소극적 저항만으론 극복되지 어렵습니다.

눈에 보이게 억압하거나 박해하는 것만 차별이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차별이란 언제나 미묘한 상태로 존재하니까요.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겪는 불편함과 불안함을 모른체 외면하는 것 또한 끔찍한 차별이 아닐까요. 소수에 대한 마음씀이 넓게 퍼져 있는 나라, 그런 나라가 곧 선진국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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