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육회




오랜만에 육회를 만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육회를 워낙 좋아해서 어머니가 소고기를 사온 날이면 육회는 빠지지 않고 상에 오르는 단골 메뉴였습니다. 저는 애초부터 날고기는 못 먹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 어머니가 육회 무치는 것을 넌지시 바라만 볼 뿐 거들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두레상에 앉아 육회에 정종을 반주로 들면서 한사코 아이들이 먹으면 무서운 충이 생기니까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 했습니다. 함께 먹는 밥상에서 음식 차별을 하는 아버지의 당부는 몹시 부당하게 들렸습니다.

독상을 받던 아버지는 어느 날 가족 모두가 함께 식사를 하는 게 좋겠다며 두레상에 밥상 차리기를 부탁하였습니다. 두레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자는 뜻은, 오손도손 가족들이 즐겁게 식사를 하자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밥상에서라도 가족의 화합과 평등을 실행하려는 결단으로 보여 반가웠습니다. 아버지가 이제는 좀 변할려나 보다 싶었지요. 

아버지는 성정이 워낙 급하고 까탈스러워 밥상에서도 자주 된소리가 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무슨 죄나 지은 양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를 보면 안쓰러움을 넘어 화가 났습니다. 결혼을 살아내기 위해 흘렸을 수많은 땀과 눈물을 닦아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자식된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아버지를 설득할 것인가’가 제 필생의 과제였습니다. 단지 가장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어머니를 턱없이 부려먹고 학대하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싶었습니다.

두레상 차림을 제안한 아버지는 과거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그럴려면 차라리 독상이 나았지… . 아버지의 변화를 기대했던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 버렸습니다. 

다산 선생은 학문의 목적이 뉘우침에 있다 하였습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잘못을 저질렀으면 그것를 인정하고 사과하고 개선하는 게 도리일 것입니다.
한데 주위를 살펴보면  마구다지로 약자에게 피해를 가해놓고서도 미안함도, 부끄러움도, 그것이 잘못된 일인 줄도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게 뭘까요. 이기적인 야만에 빠져드려는 수성(獸性)에서 벗어나 사람값 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갈 수 있게끔 수시로 자신을 닦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한데 타성 때문인지, 자신이 휘두른 폭력이 정당하다 생각해서인지 개선은 커녕 빤히 드러난 과오조차 인정하질 않습니다.

하루는 아버지 한테 여쭈었습니다.
“아버지는 육회 드시면 충 안 생겨요?”
“어른들은 술과 함께 먹으니 술이 소독작용을 해 괜찮단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둘러댄 답변 같기도 했지만 수긍했습니다.

사람의 심리란  묘한 것이어서 하지 말라 하면 기어이 해보고 싶어지는 모양입니다. 하루는 작정을 하고 촌충이 생기면 생기라지 하면서 육회 한 젓가락을 집어 먹어 보았습니다. 입안에 부드러운 육질이 사르르 감돌면서 혀에서 착착 감기는 맛이 어린 마음에도 육회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구나 싶었습니다. 

먹지 말라는 육회를 기필 먹어보려 한 것은 식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아버지의 폭거에 제동을 걸어보고 싶은 저항의 몸짓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가족 대하는 태도가 너그러워지기를, 폭력을 그만 거두기를, 어머니에 대한 지아비로서의 언행이 반듯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항명이었습니다. 육회가 맛있는 음식이라 생각한 것은 잠시였고 고기는 익혀 먹는 것이 제 식성에 맞아 몇 번 먹어 본 후로는 여지껏 먹지 않고 있으니까요. 

제행무상(諸行無常), 그 고초를 겪으면서도 육회를 정성스레 무쳐 내던 어머니도, 평생을 호령으로 일관한 아버지도 애잔하기는 매양 한가지입니다. 누군들 이승을 떠날 때는 베옷 한 벌 입고 가는 것일진대, 하잘 것 없는 아만으로 약자를 끝없이 괴롭히고 상처를 주면서도 결코 뉘우치지 않는 미망(迷妄)이 안타깝습니다.

<침묵> <내가 버린 여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글귀가 생각납니다.
‘죄란 보통 생각하는 것 같이 훔치거나 거짓말을 하는 일이 아니었다.
죄란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인생 위를 통과하면서 자기가 거기에 남긴 발자국을 잊어 버리는 일이었다’

신은 과연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육회감으로 기름기가 없고 부드러운 우둔살을 구입해 와 핏물을 제거하고 고기의 결과 반대 방향으 곱게 채 썰어 소금과 간장을 반씩 혼합하여 간을 맞추고 후추, 다진마늘, 다진파와 꿀, 생강즙, 참기름, 깨소금을 혼합한 양념에 버무렸습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 술 안주용으로 만들었어요.
이물없이 먹기엔 고추장 양념으로 만들어도 칼칼하고 맛있습니다.

추석이면 명절음식 뿐만 아니라 집안에 모인 친척들이 즐겨 드실 수 있는 밥반찬을 다양하게 준비해야 식사 시간이 즐겁습니다. 차례에 필요한 음식은 전이나 나물, 육류가 주된 메뉴인데 처음 만들 때 잠깐은 맛있지만 금세 질리고 느끼합니다. 하기에 식사 때엔 개운한 밥반찬을 찾기 마련입니다. 명절 밥반찬으로 좋은 아이템은 해산물이 제격이에요. 낙지나 오징어초회 또는 볶음, 젓갈, 생선매운탕, 생선구이, 생선조림, 깻잎조림, 꽃게장, 꽃게탕 등을 마련하면 모두가 좋아하는 상차림이 될 거예요. 

꽃게의 금어기가 지난 8월 하순에 풀려 일찍 조업에 들어간 연유로 꽃게의 어획량이 많아 꽃게값이 지난 해에 비해 훨씬 저럼합니다. 저는 가을 꽃게철이 아직 이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살이 덜찬 물게를 야산에 버릴 정도로 풍어라는 보도를 접하고 즉시 수산물시장으로 나갔습니다.

수족관에서 살아 있는 묵직한 꽃게(숫게)를 구입해 와 호박과 양파를 냄비의 밑에 깔고 새우와 무 다시마를 우려서 만든 육수를 붓고 얼큰하게 양념하여 탕을 끓였더니 살이 실팍한 게 여간한 맛이 아닙니다.

가을은 숫게철이라 산란기에 알을 슬어버린 암게는 별로지요. 물이 좋고 살이 오른 꽃게로 만든 꽃게탕으로 주말 저녁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명절이 가까워지니 제반 식재료의 가격은 오르기 마련입니다.
싸다 싶던 꽃게의 시세도 덩달아 올라 지난 주에 비하면 오른 값이지만 그래도 예년에 비하면 저렴합입니다.
산뜻한 꽃게요리 장만하셔서 휴일 저녁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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