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로 만드는 요리 중 무엇이 제일 맛있을까요?
육회, 불고기, 갈비, 스테이크, 수육, 갈비찜, 떡갈비, 비프가스, 샤브샤브...
식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육전과 수육을 꼽습니다.

유년기, 어머니는 일 년에 한두 번 꼴로 동네에서 소를 잡는 날이나 읍내의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넉넉하게 구입해오신 소고기로 육전을 부쳐 주셨습니다. 그 시절엔 고기 써는 기계가 있는 정육점도 없고 소고기를 숙성시켜 먹는 지혜도 없었으니 오로지 갓 잡은 소고기를 얇게 저며 도마 위에서 탕탕탕 칼집을 내어 연육한 후, 음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저는 어머니 옆에 앉아 도마 위에 그득한 칼집 낸 소고기에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물을 입혀 번철에 얹어드리곤 했었지요. 어머니를 도와드리는 것은 둘째였고 내심은 고소하고 사르르 녹아버리게 맛있는 육전을 실컷 먹는 데에 있었습니다. 바깥 날씨는 쌀쌀한데 뜨끈뜨끈한 식당방에 앉아 맛있는 육전을 날름날름 집어먹는 재미는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오빠는 동네 아이들과 재기차기며 딱지치기 같은 놀이를 하느라 해가 저물어서야 집에 들어 오니 알짜배기 음식을 독차지할 수 있는 특권은 저에게만 주어진 행운이었습니다.
제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새내기 선생이 되어 광양의 산골에 있는 중학교에 발령을 받아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학교측은 3월에 부임한 교사들을 환영하는 자리를 광양 읍내의 숯불 불고기집에서 마련해 주었는데 그때 먹었던 불고기의 맛은 뇌쇄적이었습니다. 얇게 저민 등심을 양념에 재워 숯불에 구워 내는 것이었는데 산골살이의 적막함을  단박에 떨쳐버릴 수 있었지요. 그날 이후 십리 길을 걸어 등교하는 아이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고, 대학원 진학을 위해 대처의 사립학교로 옮겨 가려던 계획도 접었습니다.
 
예전에는 소고기가 귀해 불고기는 주로 돼지고기로 만들어 먹었는데 고추장양념에 무친 돼지고기를 화덕에 구워 주시던 어머니의 손맛도 잊을 수 없습니다. 요즘이야 돼지고기 하면 삼겹살이지만, 제 유년기엔 삼겹살이 뭔지도 몰랐고 외식산업도 영세한 터라 돼지 살코기를 집에서 구워 먹거나 삶아 먹는 게 고작이었는데 그때의 맛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돼지고기를 꽤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연찮게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도살장 앞을 지나다 돼지 잡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중년이 넘을 때까지 돼지고기는 물론이고 여타의 고기도 멀리 하였습니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는 단순히 맛의 있고 없음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식성은 오히려 정신과 연계된 경험이 크게 작용한다는 생각입니다. 육식을 즐기던 제가 소고기를 가끔 먹는 것을 제하면 푸성귀와 과일이 주된 먹을거리로 변했으니까요.

명절이 다가오니 어머니 생각이 간절합니다. 옆에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음식 만드는 손이 신바람 날 텐데. 잡숫고 싶은 것 다 만들어 드릴 텐데 ... .
노쇠해진 어머니가 제게 하신 말씀은 늘 '미안하다' 였습니다. 평생 베푸시는 데에만 익숙한 어머니는 기력이 쇠잔해 부엌살림을 하실 수가 없자 한사코 그게 당신의 죄인 양 미안해 했습니다. 
 
"엄마. 일 못하면 어때. 그냥 이렇게 살아계신 것만도 위안이고 희망인데."
난 엄마가 이 세상 천지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요."

제가 부친 육전을 자그맣게 잘라 입에 넣어드리면,
 "살살 녹네, 우리 진호네가 한 것은 다 맛있구나."
 치아가 없는 터라 잇몸으로 우물우물해서 넘기시고는,
"이는 없어도 위장은 튼튼하니 걱정 없어. 맛난 생김치 못 먹는 말고는 사는 데 별 지장 없으니, 이렇게라도 너희들 보면서 오래 살고 싶구나."

알 수 없는 게 노인의 일이더군요. 노환 말고는 큰 이상이 없는 걸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몇 년 전의 정밀 종합검사에서 이상 없다는 결과만 철썩 같이 믿고 그후 아무런 검진도 받지 않았던 게 실수였습니다. 섭생이 불균형한 노인들은 언제든 발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이 벌어진 후에야 알았고, 그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있는 단계를 지난 후였습니다.

어머니를 여의기 전까지는 죽음이 현실과의 완벽한 단절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마음 속에 모시면 그게 살아계신 거나 마찬가지라는 불교적 생사관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죽음은 가시적인 현상으로부터 멀고 모호한 세상으로 전이되는 자연의 순환쯤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약과 병원을 싫어하시던 어머니가 투병 중에 받는 고통을 지켜보면서, 이게 무슨 가혹한 업보인가 싶었고, 고단한 육신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방이겠다 싶었습니다. 허나 막상 일을 당하고 보니 더 적극적인 치료를 했어야 하고, 잠시나마  방정맞은 생각을 한 것이 두고두고 죄스럽습니다. 
  
남아 있는 삶을 잘 살아 내는 게 어머니를 만나는 길이라 자위해 보지만 그건 실제가 없는 허상일 뿐입니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 하여라
가신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정철-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ㅣ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그를 슬허하노라
                 - 박인로-

소고기 육전의 부위는 질기지 않으면서 기름기가 없는 설도나 치마살, 채끝살이 좋습니다. 정육점에서 사실 때엔 육전감으로 썰어 주라 하시면 되고 마트에서 사실 때엔 육전감이나 샤브샤브, 불고기감을 구입시면 됩니다.
불고기감으로 얇게 썰린 고기는 2-3장 겹쳐서 사용하셔도 좋아요.

고기는  키친타올을 이용해 핏물을 빼고 소금과 후추로 밑간한 후 밀가루를 묻혀 달걀물에 담갔다 팬에 지지면 되는데, 저는 이때 잘게 다진 대파채를 달걀물에 혼합하여 만듭니다.
대파채를 넣으면 고기의 잡내도 없어지고 살코기의 퍽퍽한 식감이 줄며  맛도 좋아 생선전 부칠 때에도 같은 방법으로 만듭니다. 육전과 함께 드시면 좋은 부추 오이 겉절이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텃밭 오이와 부, 양파채를 함께 양념장에 무쳤더니 상큼한 게 전과 아주 잘 어울립니다. 

육전을 부치면서 하나 맛을 보니 예전에 먹었던 것보다 부드러우나 고기맛은 심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죽을 먹고 성장한 고기보다 사료를 먹고 자란 고기의 맛이 더 좋을 리는 없기 때문이겠지요.
근래엔 불고기나 갈비찜 떡갈비 등은 달아서 당기지 않고 육전이나 안심구이, 아롱사태수욱을 만들어 먹습니다.
몸서리치게 끔찍한 더위도 가셨고 소슬바람 일렁이는 가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고소하고 사르르 녹는 육전 부치셔서 맛있는  저녁상 차려 보시면 어떨까요.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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