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막골 생태농원의 풍정, '짝꿍이 있어서... ' 사진출처- 산막골생태농원>

각양각색의 힐링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요즈음입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무한 경쟁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일 자체가 고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먼저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앞서가는 직장동료의 뒷다리 붙들고 늘어지고, 학우의 약점을 들추어 내 집단으로 괴롭히는 일들이 끊이질 않습니다. 자신이 가해한 동료가 비틀거리는 것을 보면서도, 학교폭력에 좌절한 친구의 고통을 보고서도 방관하거나 죄의식조차 갖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상대를 도태시키기 위한 반칙은 도처에 진행 중이고, 이웃의 고통을 소  닭 보듯하는 사람들은 늘어날 뿐이어서 스스로 구원의 방도를 모색하지 않으면 삶을 지탱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세태가 이렇다 보니 치유를 위한 외부의 프로그램은 차고 넘칠밖에요. 
남아도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점령군처럼 나대는 상대를 당한 만큼 되갚아주고 싶고, 하는 일이 풀리지 않아 울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무엇으로 달래질까요. 힐링프로그램이 그 역할을 다 하여 줄까요. 개인차는 있겠지만 외부로부터 제공되는 카타르시스 시스템 만으로 분노와 상처를 다스리는 데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타성의 존재인지라 프로그램 과정에서 얻은 변화에의 열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색하고 무디어지기 십상입니다.

치유의 방도는 오히려 가까운 곳에 있지 싶습니다.
주인 돌아오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반려동물과 교감하는 순간 좌절한 삶의 의지는 되살아 나고, 마음을 나누는 친구의 다독임과 격려로 상처는 아무는 것이지 싶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수학 공식처럼 제공되는 처세훈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 서로의 고충을 들어주고 공감하여 함께 해법을 궁리해가는 과정에서 분노는 잦아들고 마음의 상흔엔 새살이 돋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을 향한 정성스런 보살핌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값진 사명일 것입니다. 동양철학의 근간인 공자학에서도 '誠'을 인간이 지녀야 할 궁극의 덕목으로 간주했습니다.
誠을 破字하면 言+ 成입니다. 말이 이루어진 상태 곧 言行一致(지행일치)를 의미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 하는 것인 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욕에 눈이 가려 삶이 앎을 따르지 못할 때 악행은 저질러집니다. 적정한 욕망은 자신을 발전시키는 動因이 되지만, 과도한 탐욕은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결국에는 자신도 파멸하는 암적 요소입니다.
얼마 전 자주 들르는 귀농인의 블로그에 방문했다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접했습니다.
지난 가을, 자신이 터를 잡은 농지에서 밭을 일구려 굴삭기 작업을 하시던 중  낯선 관 하나가 드러났습니다. 처음엔 무섭기도 하고 이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추워지는 날씨라 흙으로 가묘를 해놓은 채 겨울을 났다 합니다. 겨울이 지나고 한식이 되자 마을 분들과 함께 암장한 무연고묘를 성토하고 봉분을 쌓아 올리고 뗏장를 입혀 번듯한 묘로 만드는 작업을 내일처럼 했다 합니다.

글을 읽는 순간, 가슴 한켠에 따스한 온기가 피어오르면서 차갑기만 했던 제 삶을 되돌아 보게 합니다.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중간자적 존재다. 다만 어떤 인연을 만나느냐에 따라 선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한다 했지요.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산막골 생태농원' 블로거님 같은 분이 계시기에 인간에 대한 신뢰가 되살아 나고  세상은 살아볼만한 공간으로 바뀝니다. 치유나 변화는 인간으로서의 근본을 다한 사람의 삶에 공감하고 그를 닮고자 노력할 때 솟아나는 그 무엇이지 싶습니다.

양지바른 밭고랑가에서 돌미나리 한 소쿠리를 캐 왔습니다.
돌미나리는 우리 몸에 여러 가지로 유익한 작용을 하는 식물입니다.
특히 손상된 간 기능의 회복에 특별한 효험을 지녔다 하네요. 생즙을 내서 마셔도 좋고 살딱 데쳐 나물로 무쳐도 맛납니다.

'산막골 생태농원' 블로거님의 이야기가, 내리 쬐는 봄햇살보다 만개하는 봄꽃보다 더 따뜻하고 향기롭습니다. 내게 주어진 단 한번의 生, 그대는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지요?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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