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봄나물을 캐러 광덕산으로 마실을 다녀왔습니다.
남녘은 꽃놀이로 야단법석들이지만 이곳 마을엔 산수유만 한 군데 피어 있을 뿐이어서 완연한 봄기운을 느끼기엔 아직 이른 듯합니다. 양지바른 언덕배기엔 새 쑥이 무리지어 돋아 었있는데 어린 그걸 캐서 바구니에 담다 보니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 버립니다.
내친김에 마른 잔디 틈새를 비집고 새순을 내민 달래도 캤습니다.
아지랑이 아롱거리는 밭이랑을 따라 동무들과 마냥 깔깔대며 나물캐던 유년의 봄날이 떠오릅니다.

꽃샘바람이 불어대는 밭둑을 헤집다 보면 유난히 파란 빛깔 때문에 눈에 띄는 곳이 자운영으로 가득한 논이었습니다. 농부님들은 가을걷이가 끝난 논바닥에 녹비식물인 자운영 씨를 수북히 뿌렸다가 자라난 잎과 줄기를 벼논의 거름으로 쓰셨습니다. 논두렁이나 밭둑길에 돋아난 쑥이나 쑥부쟁이를 캐야 하건만, 악동들은 한사코 들어가지 말라는 자운영밭에 들어가 나물서리를 즐겨 했더랬습니다. 나물이 탐나서라기보단 모처럼 만난 초록의 풀밭에서 뛰놀고 싶었던 것이지요.

마을 저만치서 주인 아저씨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오시면 저희들은 걸음아 날 살리라며 바구니와 칼을 챙겨들고 줄행랑을 치곤 했지요. 달리다 보면 애써 캔 나물은 다 흩어져 버렸고 바닥엔 몇 오라기의 봄나물이 깔려 있을 뿐이었지요. 그시절의 쑥부쟁이나 자운영이 생각나 찾아보니 어디에도 모습은 보이질 않네요. 논바닥에 씨를 뿌려놓은 데도 없거니와 자생하는 모습도 찾지 못했습니다. 남녘엔 아직 자운영이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만.

봄이 무르익을 즈음의 자운영밭엔 꽃분홍빛깔의의 꽃이 만개했습니다. 배동바지 봄바람 수런거리는 고향의 밭둑길을 거닐던 그 시절이 바로 낙원이었지 싶어요. 보리피리 만들어 필릴리필릴리 불어 보는 즐거움도, 봄나비 잡겠다고 장다리꽃밭을 드나들던 동심도 모두 눈물나게 그리운 봄의 풍경들입니다.

아쉬운 대로 집에 돌아와 캐온 쑥과 달래를 다듬어 씻어 놓으니 모처럼 명랑한 노동을 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정말 좋은 것들은 모두가 공짜라는 말도 실감합니다.
대지를 일렁이며 불어 오는 훈풍이 반갑고 종달이의 지저귐이 감미롭습니다. 그 중 으뜸은 그토록 매서웠던 추위를 견디고 새롭게 돋아나는 나물과 봄꽃들입니다. 시설을 하지 않아 얼어 죽어버린 듯하던 쪽파와 시금치뿌리에서 파란 움이 터올라 오더니 이제는 제법 뜯어먹을 만큼 자랐습니다.
우선 쑥향을 쉬 맛볼 수 있게 쑥밥을 지었습니다.
평소 하던 대로 쌀에 찰보리를 섞어 씻은 후 반 시간 쯤 물에 불렸다가 밥을 앉힙니다.
밥물이 끓어오를 동안, 얼마 전에 구입하여 말려놓은 표고버섯을 물에 불려 잘게 썰어 가는소금을 조금 넣고 버무려 간이 배게 합니다.

쑥은 생으로 배채와 함께 겉절이를 하여도 좋지만 오늘은 살짝 익혀 먹기로 했습니다.
냄비의 밥물이 거의 줄어들면 준비해둔 쑥을 대강 썰어 표고와 함께 밥 위에 얹어 뚜껑을 닫고 뜸을 들입니다. 쑥향이 달아나지 않게 하고 누렇게 변색하는 걸 막기 위한 방법입니다.

쑥밥의 요령은 쑥을 살짝 익히는 데 있습니다.
봄향기와 빛깔을 제대로 즐기기 위함이지요.
밥이 다 지어지거든 널찍한 그릇에 담아 양념하지 않은 간장에 비벼 먹는데 저는 소고기장조림장을 썼습니다.

달래로 양념장을 만들려 하다가 그건 따로 무쳤는데 참기름은 넣지 않고 간장 고춧가루 깨소금으로 만들었습니다.
며칠 전 담근 열무물김치가 알맞게 익어 함께 상에 내었습니다. 

간장에 비빈 쑥밥 한 숫갈을 뜨고 오물거려 보니 야! 바로 이게 봄이로구나 싶을 만큼 마음이 환해집니다. 지금이 생선이나 야채 말리기에 딱 좋은 시기입니다.
산수유나 매화도 꽃이 다 피어버리지 않은 꽃망울 따서 샤워하여  그늘에 말렸다 꽃차로 사용하면 좋아요. 올 것 같지 않던 봄이 왔군요.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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