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컴퓨터가 체스를 두면 누가 이길까? `개미`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신작 `뇌`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컴퓨터가 언제나 사람보다 체스를 잘 두게 돼 있습니다. 컴퓨터는 기분에 휩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기는 수를 두고 나서도 컴퓨터는 기뻐하거나 우쭐하지 않고, 악수를 두고서도 풀이 죽거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승부욕을 느끼지도 않고 자책을 하거나 적수를 원망하는 일도 없습니다. 컴퓨터는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합니다. 이미 둔 수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나 최선의 수를 찾아서 둡니다. 경기에 지면 전원이 끊어진다는 것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에겐 강한 동기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하지 않으면 인류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론적으론 언제나 사람을 이기게 돼 있는 컴퓨터를 사람이 이길 수 있게 만드는 것, 컴퓨터엔 없고 사람에게는 있는 `동기`란 과연 무엇일까요?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고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톨스토이의 답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지만 `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에 대한 베르베르의 답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원제가 `최후의 비밀`인 `뇌`를 통해 베르베르는 사람의 행동 동기를 13가지로 정리합니다.




`고통을 멎게 하는 것/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 생존을 위한 원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안락함을 위한 부차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의무감/ 분노/ 성애/ 습관성 물질/ 개인적인 열정/ 종교/ 모험/ 최후 비밀에 대한 약속/ 최후 비밀의 실제적 경험.`




`뇌`는 이 열세 가지의 동기를 찾는 과정을 잘 짜여진 추리소설 형태로 엮어낸 것입니다. 그것도 흥미진진한 과학지식을 곁들여서 말입니다. 소설의 중심축으로 두 가지 명제가 등장하지요.




"유명한 정신의학자이자 정신병원 원장으로 최고의 모델과 동거중인, 부러울 것 없는 주인공 핀처박사가 세계 체스 챔피온으로 컴퓨터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바로 그날 애인과의 정사 도중 사망한다. 사인은 무엇인가? 단순한 복상사인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나 범인이 있는 것인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던 평범한 남자 마르탱이 교통사고로 뇌는 살아있지만 기능하는 건 한쪽 눈과 한쪽 귀 밖에 없는 식물인간이 됐다. 이런 상태로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인간의 뇌가 해낼 수 있는 건 과연 어디까지인가?"




얼핏 보면 상관관계가 없을 것같은 두 명제는 실은 절묘하게 얽혀 있습니다. 핀처와 마르탱이 의사와 환자로 만나기 때문이지요. 식물인간 상태의 마르탱에게 삶과 죽음 가운데 한가지를 선택하게 하고(눈꺼풀을 한번 깜박이면 `죽고 싶다`, 두 번 깜박이면 `살고 싶다`라고 가르쳐주는 것이지요) 삶을 선택한 마르탱에게 컴퓨터를 가져다 줌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는 게 핀처입니다.




그런가하면 핀처에게 머릿속 특정부분(쾌감중추)을 자극하면 마약이나 섹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쾌락을 느끼게 된다는, 즉 `최후의 비밀`을 맛볼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주는 게 바로 마르탱이니까요. 마르탱은 식물인간이 된 뒤 철저하게 외로운 상태가 되자 뇌와 집중력이 무섭도록 발달, 눈꺼풀을 깜박이는 것만으로 인터넷을 뒤져 엄청난 과학지식을 갖게 됩니다. 그 결과 핀처에게 머리에 전극을 이식하는 수술을 받도록 하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핀처로 하여금 정신병원 수용자들에게 최후비밀을 맛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함으로써 병원을 송두리째 바꿔 놓습니다.




핀처박사의 죽음은 애인과의 정사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해진 상태에서 마르탱이 보낸 자극까지 받음으로써 `쾌락 과잉 상태`가 된 결과로 밝혀집니다. 마르탱은 컴퓨터와의 체스게임에서 승리한 데 대한 보상으로 극도의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자극을 보낸 것인데 그 순간 핀처는 이미 충분히 흥분해 있었기 때문에 머리가 터져버린 것이지요.




결국 사람의 뇌는 개발하기에 따라 무한대의 가능성을 지닐 수 있고, 쾌락이란 과도하면 죽음을 부른다는, 어떻게 보면 극히 상식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뇌`가 단숨에 읽히는 데다 매순간 깊은 숨을 몰아쉬게 만드는 것은 베르베르의 탁월한 과학적 지식과 세상살이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작품 곳곳에 스며있기 때문이지요.




사람의 뇌 속에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부위가 있으며 때문에 마약중독자를 치료하기 위해 뇌의 일부분을 떼어내는 수술을 하기도 한다거나, 쥐의 쾌감 중추에 전극을 심고 이 전극에 쥐 스스로 자극을 일으킬 수 있게 하는 장치를 연결하면 한시간에 8천번까지 장치를 작동시킨다거나, 일단 이 쾌감을 맛본 쥐는 보통쥐같으면 어림도 없을 난제들을 순식간에 돌파한다거나.....




그러나 `뇌`는 그것이 아무리 놀랍고 완벽한 것이라도 해도 쾌락만이 인간을 움직이는 동기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쾌락이 삶의 동기 가운데 하나인지는 모르지만 고통 또한 살아있음의 증거라는 것이지요. 실제 쾌감중추는 고통을 느끼는 부위와 거의 일치돼 있다고도 합니다.




베르베르는 아울러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14번째와 15번째 동기로 `사랑`과 `의식의 확대`를 들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육체적 감정적 정신적 사랑, 즉 성기 심장 뇌가 일치되는)이 있으면 뇌 속에 전기자극을 주지 않아도 `최후의 비밀`을 맛볼 수 있고, 나아가 한방울의 물이 대양을 넘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설명이지요.




`의식의 확대`에서 비롯되는 이같은 깨달음 또한 앞의 13가지 동기 못지 않게 인간을 행동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는 주장입니다.




아울러 컴퓨터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람을 쫓아오거나 사람과 겨룰 수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컴퓨터가 결코 가질 수 없는 세 가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웃음과 꿈, 그리고 어리석음`이 그것이라는군요. 그 어떤 컴퓨터에도 없는, 인간만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어리석음`이라는 대목에서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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