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멸치볶음




멸치 만큼 상비해야 할 식품이 또 있을까요.
국물을 내는 대멸치, 볶음에 쓰이는 중멸치와 소멸치(가이리), 자멸치(지리) 모두 바닥나기 전에 채워둬야 할 식재료입니다. 저는 육수를 낼 때도 대멸치 보다 중멸치를 쓸 때가 많습니다. 진한 맛 보다 맑은 맛이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간 멸치를 다루다 보니 이젠 육안만으로도 염도와 맛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멸치는 겉이 푸른 빛이 도는 은색을 띄고 있고 딱딱하게 마르지 않은 것을 고르는 게 좋습니다.
구입한 즉시 냉동 보관하여야 변질되지 않지요. 어두육미(漁頭肉尾)라고 멸치도 생선이니 대멸치는 머리를 떼어내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 국물맛을 진하게 한다는군요. 멸치는 종류에 따라 쓰임새가 다양하지만 볶음(간장이나 고추장양념)을 만들어 드시는 게 일반적인 조리법이겠지요.

멸치를 좋아하다 보니 멸치에 얽힌 일화도 많습니다.
오래 전, 미국생활을 마친 친구의 남편이 서울대학교 교수로 부임했을 때의 얘기입니다.
20 여 년 만에 만난 그 친구는 고3 때 같은 반 친구들을 자기집으로 초대하여 살아온 얘기들을 나누며 회포를 푸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친구네 집에 가서 보니 그녀와 저는 지근거리에 살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저도 친구를 저희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아이를 위해 점심을 마련했는데 된장찌개와 얼갈이겉절이, 샐러드, 멸치볶음, 새우튀김, 갈치조림을 준비했었지요. 식사를 하려는데 친구가 가방에서 멸치와 고추장통을 꺼내 식탁 위로 턱 얹는 거예요. 이유인즉슨 아이가 밥 먹을 때면, 항시 멸치를 찾는다는 거였습니다.
그 아이의 토속적인 식성이 기특하고 재미있어 한참으동안 웃었습니다. 미국물을 오래 먹은 가족의 식습관이 그때껏 변하지 않은 게 놀랍고도 신통했지요.

생멸치 고추장에 찍어 먹는 건 친구의 아이뿐만 아니라 찬거리가 귀하던 시절, 많은 가정의 점심상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었습니다. 한데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지금도 맥주 안주로 꼽히는 메뉴라 하니, 멸치 고추장 찍어먹기는 아직도 남아 있는 우리의 식습관인 듯합니다. 

며칠 전 시드니에서 살고 있는 깨복쟁이 친구가 91세 되신 어머니 생신 쇠드릴려고 고향을 찾았는데 떠나는 날 공항에서 잠깐 만났습니다. 친구는 로얄젤리며 프로폴리스 같은 걸 올때마다 가지고 와서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곤 했는데 받기만 하던 저는 미안막이로 멸치볶음을 만들었습니다.

호주나 뉴질랜드는 자국의 생태와 농수축산물 종의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입국자가 가지고 들어오는 식재료에 대한 단속이 철저함을 알고 있었기에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걸리지 않을 게 뭘까 따져 보았지요. 굴비? 김?… 하다가 떠오른 게 동시통역 일을 하고 있는 친구는 반찬 만들 시간이 부족하겠다싶어 멸치볶음을 준비했습니다. 친구가 떠나는 날 아침 후다닥 멸치고추장볶음을 만들어 냄새가 새 나가지 않는 용기에 담아 공항으로 달려 갔지요.

반가운 마음에 한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멸치볶음이 든 찬통과 유자를 내놓았더니 친구는 입국대의 심사에서 통과하기가 어렵겠노라며 사양을 하는 거예요. 먹은 걸로 치겠다는 거였지요. 아쉬웠지만 압수 당하여 이국의 쓰레기통에 폐기 처분되는 것은 아니다 싶어 다시 거두어 넣었습나다 제가 만든 음식은 하찮은 물자가 아니라 저의 마음이라 여기는 때문입니다. 헤어지려는 순간, 친구가 그럼 맛이나 한 번 보자면 다시서 관심을 보이는 거예요. 이때다 싶어 유자만 뺀 멸치통을 친구의 핸드백에 들이밀었지요.

“바쁜 검열원이 숙녀 핸드백 샅샅이 뒤질라더냐, 늠름하게 밀어붙여라. 그리고 너는 인상이 워낙 선량해서 꼬치꼬치 시비하지 않을 거다. 내 말대로 될거다.” 하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저흰 서로의 손을 나누며 아쉬운 작별을 했지요.

집에 돌아 온 지 10시간(비행시간)이 지나니 궁금증이 발동해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피곤해 있을 친구 들쑤시기도 뭐해 잘 되었겠거니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러고 얼마가 지났는데 전화가 온 거예요.
“멸치 통과했어, 잘 먹을게.”
입국대의 직원이 핸드백 열어 보더니 맨 위에 놓인 김부각을 보고는 통과, “또 뭐가 들었냐?” 묻길래 아무것도 없노라 했더니 다시 통과!.

우여곡절을 겪은그 멸치볶음은 가까이 사는 딸 내외와 아들 모여 맛나게 먹었노라는 전화가 또 걸려 왔지요. 하찮은 멸치 한 사발이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한 것을 보면, 음식을 나눔으로서 얻는 즐거움은 하찮은 것이 아님을 느낍니다. 

사위가 궁금해 하는 멸치볶음 레시피 올립니다.
기름 두른 팬을 달구어 멸치를 넣고 나무 주걱으로 저으면서 중불에 타지 않게 볶아 별도의 용기에 담아 식힙니다(5분 정도). 마늘은 편으로 썰어 기름 두른 팬에 살짝 볶아 용기에 담아 식힙니다.
고추장 1.5숫갈에 물 한 숫갈, 물엿과 설탕 한 숫갈을 넣고 혼합하여 중불에 끓이는데 맛을 봐가며 식성에 맞춰 농도를 조절하고 맨 나중에 참기름 한 숫갈을 두르고 약불로 줄입니다. 간장은 넣지 마세요. 양념장에 볶아놓은 멸치와 마늘을 넣고 나무주걱으로 뒤적이면서 재료와 양념이 잘 혼합되게 합니다. 마지막에 통깨를 뿌려 한 번 뒤적이고 불을 끄면 완성입니다.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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