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보내준 텃밭채소>

절후를 살펴보면 거짓말처럼 신기한 데가 있습니다.
어제가 말복임과 동시에 입추였지요. 어제 아침과 오늘 아침의 기온을 비교해보면 더위가 수그러들었다 싶은 징후가 뚜렷합니다. 오늘 하루의 느낌만으로 앞으로의 날씨까지 예단할 수는 없지만, 동트기 전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들길을 걷다 오니 변화가 살갗에 느껴집니다.
짧은 장마가 고사 직전의 작물들을 살려 내 지금까진 생육이 좋았지만, 이어진 폭염으로 밭작물들이 다시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젠 하늘만 쳐다보며 짓는 농사가 아니라 지하수를 개발하여 가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농업인도 많아졌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이웃 친구가 텃밭채소 한 소쿠리를 보내왔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아이 돌보듯 작물을 살피고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면서 길러낸 푸성귀들입니다. 오이, 열무, 애호박, 호박잎, 쪽파, 꽈리고추, 종류도 가지가지입니다.
그토록 땀흘려 가꾼 농산물을 아무런 노력도 보태지 않은 제가 받았으니 염치 없고 고맙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제까닥 다듬고 씻어서 저녁 찬으로 만들었습니다.
오이는 양파와 곁들여 송송이로 무치고, 꽈리고추는 잔멸치와 함께 고추무름을 만들었습니다. 애호박은 나물로, 호박잎은 쪄서 쌈으로, 열무와 쪽파는 홍고추를 믹서기에 갈아 김치를 담갔습니다. 동물성을 즐기는 아이를 위해 불고기와 낙지볶음을 더하니 밥상은 거나해졌습니다.

화학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기른 소채, 방사해서 기른 닭과 달걀,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생선이나 낙지, 조개, 이런 것들을 보면 왜 그리 신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걸 보면 절로 댕기는 건 우리 몸에  내재된 DNA  때문일 겁니다. 보채던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젓무덤을 찾듯 태초에 우리가 먹었던것들이기 때문이지요. 좋은 것 생기면 나누고 싶어지는 게 '사랑'이라고 어느 작가는 얘기하던데, 저녁상을 보며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헛살지는 않았나 봅니다.
 
버거운 여름을 보내노라니 지구가 이젠 몸살을 넘어 홧병이 났지 싶습니다.
모두가 인간이 저지른 과보(果報)라 생각하니 할 말도 없습니다.
조금의 더위나 추위도 참지 못하고 돌려대는 냉난방기기며, 가까운 거리도 기어이 자동차를 이용하는 현대인들의 생활습관이 화를 자초한 셈입니다. 문명의 이기들로 인해 발생되는 이산화탄소와 온실가스의 과도한 배출이 기후변화를 일으켜 기상이변과 자연재해가 빈번해졌고, 그 정도도 이젠 재앙의 수준입니다. 서울살이를 접고 계획했던 일을 해보려 천안 근교의 마을에 정착했습니다. 내려오면서 30여 년 손때묻은 가재도구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집기만을 챙겨 왔습니다.

시골에 오니 걸을 일이 많아 좋고, 꾀꼬리와 뻐꾸기와 산비둘기의 노래를 공으로 들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생산과정을 알 수 있는 농산물을 구할 수 있으니 밥상차리는 일도 즐겁습니다.
이젠 서울이 낯선 도시로 여겨질 만큼 이득해졌습니다.
폭염을 버티면서 이웃에게 주고 온 에어컨 생각이 났지만 바로 접었습니다. 대신 묵혀 두었던 삼베홑이불을 꺼내 풀을 먹여 밟아 사용하니 그 까실까실한 촉감이 저를 다독입니다.
치워두었던 부채도 꺼내 스스로 바람을 만들어 보니 팔 운동도 되는군요.
쌓아두었던 책들을 정독하고, 밀쳐 두었던 집안일도 처리하니 정신은 가다듬어지고 나태함도 줄어듭니다. 다산 선생께서 평생 강조하신 덕목이 '勤儉'이었는데 그 가르침을 따를 수 있어 기쁩니다.

홀로 계신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당신의 성격대로 어머니 외에는 그 누구의 보살핌도 거부하시는 터라 주변이 적막합니다.
고단했던 삶을 내려놓으신 어머니 보다, 호령으로 일관하신 아버지가 더 애잔합니다.
어머니께 혹독하게 대하신 데 대한 앙금도 온데간데 없습니다.
남아 있는 여생의 날들이 부디 평안하시기를 바랄뿐입니다.
좋아하시는 개장국 한 냄비 사들고 찾아 뵈렵니다.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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