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찐굴비


극심한 가뭄이 끝나니 장마에 폭염까지 기세를 부려 여름나기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더위를 이기려 찬 음식만을 계속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뜨거운 음식은 조리하기도 먹기도 버겁습니다. 뭐 입맛 당기는 찬거리는 없을까 고민하다 생각난 게 찐굴비네요.
저는 1년 쓸 조기를 벚꽃 필 무렵에 구입하여 냉동보관 하였다가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 섶간하여 꾸덕하게 말려 씁니다. 조기매운탕도 엷은 간을 하여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살짝 건조시켜  만들면 생조기로 할 때보다 살이 부서지지 않고 맛도 좋습니다.

알맞게 마른 굴비를 손질하여 찜기에 베보자기를 깔고 쪄서 접시에 담아 준비합니다. 예전에는 보리굴비라 하여 보릿독에다 굴비를 박아 서늘한 광에서 1-2 개월 정도 갈변이 될 때까지 숙성을 시켜 하절기의 찬으로 이용하였지요. 보리굴비는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고안된 조기의 저장법이었습니다. 딱딱하게 마른 보리굴비는 쌀뜬물에 불렸다 쪄서 먹기도, 손으로 찢어 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고추장에 박아 장아찌를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날, 시원한 샘물이나 펌프물을 길어 올려 서리가 끼도록 차가운 물에 보리밥을 말고 누렇게 변해 살이 똑똑 떨어지는 찐굴비 한 점을 얹고, 골마지 낀 우거지를 젖히고 꺼낸 묵은지 한 가닥을 얹어 먹는 재미는 이제 아련한 추억이 돼 버렸습니다.
아침에 무쇠솥에 지은 보리밥을 손잡이가 달린 대바구니에 퍼담아 바람이 잘 통하는 부엌앞 처마 밑에 매달아 놓았다가 점심 때가 되면 내려다가 사기주발에 밥을 담고 멸치무침이나 오이냉국, 풋고추에 된장 찍어 먹던 유년을 추억하는 것은 즐겁습니다.

오늘 저녁상은 추억의 아이템으로 차려보았습니다.
보리굴비는 아니지만 봄에 사서 저장하여 둔 간조기를 건조하여 찌고, 배추짠지를 꺼내 염기를 우려내고 멸치육수에 된장 슴슴하게 풀고 우거지찜을 만들었습니다. 양념이나 고명 없이 쪄낸 굴비는  보기엔 구미가 당기지 않으나 한 점 떼어 오물거려 보면 구이에 비해 맛이 깊고 맑습니다.

좋은 식재료는 최소한의 간과 조리법으로도 훌륭한 맛이 납니다.
원재료가 부실할 때 그것을 상쇄하기 위해 온갖 첨가물들이 더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우리는 덧칠한 맛과 태깔에 익숙해 있어 식재료 고유의 맛을 즐기는 데는 무심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능숙한 제스쳐로 숙련된 달변가의 말보다 어눌하더라도 내용이 알차고 거짓없이 말하는 인사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치와도 같을 것입니다.

내친 김에 삼색나물을 더해 약식헛제사밥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요즘 흔한 애호박을 새우젓으로 간하여 볶고 고사리와 도라지 나물도 만들었습니다.
전은 더워서 호박전과 육전 3장만  부치고, 탕은 건오징어를 물에 불려 소고기와 두부를 넣고 끓였습니다. 헛제사밥을 비빌 때는 간장으로 간을 합니다.

누군가는 추억으로 음식을 먹는다 했지요.
산해진미로 가득한 밥상보다 농경문화 시대의 어머님들이 차려내셨던 밥상이 세상에서 제일 값진 밥상일 것입니다. 그 밥상이야말로 식재료의 생산과정이 투명하고 조리과정에 잡것(첨가물)이 섞이지 않은 밥상일 테니까요.

밖에서 밥을 먹을라치면 어디로 갈 것인지 무얼 먹어야 뒷맛이 개운할 것인지 불안한 마음부터 앞섭니다. 음식에 쓰여진 식재료와 조리과정에 대한 궁금증은 차치하고라도 음식맛은 왜 그렇게 달고 맵고 자극적인지요. 밥값을 치루고 나와 몇 발짝을 떼지 않아 금세 갈증이 나서 연신 물을 들이켜야 할 때마다 속았다는 생각에 치룬 밥값이 아깝습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따르더라고 소비자가 현명하면 밥집의 음식들이 달라질 수도 있을 터인데 쉽지 않은 일일 줄 압니다.

가루로 급조 된 국물은 찌르는 맛이고, 오랜 시간 재료를 우려내 만든 국물은 먹는 이에게 위안을 준다고 어느 작가분은 말씀하시데요. 그렇게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거리낌 없이 드시는 식객들을 보면 아연할밖에요. 유전적인 요인이 아닌 경우, 대부분의 병은 잘못된 식습관과 운동부족에서 온다는 사실을 어머니의 발병과 영면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수년 전에 행한 정밀종합검진 때엔 아무런 병증이 없으셨는데 저작이 어려워져 섭생이 불균형해 병원체에게 마구 공격당해 버리신 것이지요.

어머니는 당도가 높은 음료나 죽을 연신 드셨으니 발병은 기다리고 있던 수순이었지 싶습니다.
죄스럽게도 먹어야 될 음식보다 먹지 않아야 될 음식을 가리는 일이 건강의 첫걸음이라는 사실, 일을 당하고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달고 짜고 매운 음식 멀리 하시고 동물성 지방의 섭취도 과하지 않게 하셔서 건강한 여름 나시기를 기원합니다.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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