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과물 도매시장에 나가보니 팔리지 않은 김장 채소들이 누렇게 뜬 채 널브러져 있습니다.
김장을 하지 않거나 적게 하는 집이 대세인 데다 수요 예측의 오류로 생산이 과잉이라서 그렇다 합니다. 애써 생산하신 농심을 떠올리니 마음이 쓰립니다. 절기상으론 동짓달, 음력 10월에 무 배추를 거두게 되니 예전 같으면 김장은 이미 끝나 있을 시기입니다. 김장 넉넉히 해두시면 이듬 해 김치 때문에 부산 떨 일이 없고, 부식비도 줄어드니 살림이 알뜰해집니다.
 
남녘엔 묵은지를 일 년 내내 상에 내는 밥집들이 많습니다. 이런 업소들은 대개 다른 음식도 맛깔스러우니 손님도 많습니다. 그 집의 김치맛으로 안주인의 음식 솜씨를 가늠할 수 있듯, 밥집의 김치 맛도 식객의 발걸음을 당기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김치냉장고나 저온 저장고에서 숙성된 묵은지의 맛과 후원의 땅 속에서 숙성된 묵은지의 맛엔 차이가 납니다. 어떤 문명의 이기도 자연을 재현할 수는 없으니까요. 상온에 보관을 하려니 간은 셌지만, 우거지에 골마지가 낀 김치독을 열고 노랗게 익은 묵은지를 꺼내실 때, 어머니의 그 환하시던 얼굴이 생각납니다.

옛맛을 추억하는 시간은 행복합니다.
키가 작고 육질이 단단한 청방배추에 김치속을 넣지 않고 맑은 액젓(또는 찹쌀죽과 채수)에 고춧가루 양념만으로 버무린 묵은지를 뜨거운 여름에 꺼내서 먹으면 아, 그 깊은 맛이라니...
차디 찬 샘물에 보리밥을 말아 한 숫갈 뜨고 그 위에 묵은지 한 가닥과 찐 굴비 한 점을 얹어 먹는 재미는 이제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싶습니다. 그 밥상을 차려주시던 어머니는 병중에 계시니 세월의 무상함에 마음이 아리고, 그리움에 눈물 짓습니다. 

김장 다음의 살림살이는 메주쑤기와 긴 겨울을 나기 위한 간식거리를 장만하는 일이었습니다.
다 기른 엿기름 소쿠리를 마당에 내놓고 밤새 서리를 맞혀 당도를 높이는 수고도 이즈음의 일이었지요. 곶감을 깎아 대꼬챙이에 꿰서 그늘에 메달고, 짚과 대봉을 켜켜로 담아 항아리에 앉혀 홍시를 만들고 차를 담갔습니다. 주로 생강, 유자, 모과를 손질하여 설탕이나 꿀에 재워 작은 오지항아리나 유리병에 담아 밀봉하여 숙성시켰습니다.

김장을 마치고 차 한 잔을 마시다 보니 40여 년 전, 남해 금산사 선방에서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11월 중순, 대학 1년 때였습니다. 10월 유신을 성사시키기 위해 대학엔 휴교령이 내려졌고, 캠퍼스는 굳게 문이 닫힌 채 무장한 군인들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하릴없는 심회에 젖어 있던 저는, 불교 학생 수련회의 인연으로 뵙게 된 혜암 스님께 서신을 올렸습니다. 절에서 며칠 지내고 싶다는 저의 뜻을 담았었지요. 동안거 기간이라 어렵겠다 싶었지만 그즈음의 절박한 심정을 또박또박 적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이 두렵고 불안했기에 그런 식으로라도 돌파구를 마련해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한데 뜻밖에도 스님 한테서 답장이 왔습니다. '그냥 와서 며칠 쉬어 가렴'. 시위에 가담하여 동가숙 서가식 하던 학우들에겐 미안했지만 그 시절엔 없었던 템플스테이의 호사를 누리게 됐지요. 아침 예불에 참석하려 3시 반에 일어나 어두컴컴한 계곡을 더듬어 내려가 세수를 하면 어찌나 손이 시리던지 남아 있던 졸음은 금세 달아났습니다. 어수선하던 제 마음은 산과 계곡의 정기를 닮아 맑아졌고, 수행하시는 스님들과 일과를 함께 하면서 절제와 자중자애하는 방도를 익혔습니다.

하루는  혜암 스님이 기거하는 암자로 저를 부르시기에 올라 갔더니, '맞서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며 대학 새내기가 알아 듣게끔 세상살이의 지혜에 대해 조곤조곤 일러 주셨습니다. 동료나 선배가 끌려가고 수배 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대학생활을 해야할지 가닥이 잡히지 않던 저에게 스님의 말씀은, 학우들에 대한 죄책감을 덜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부 많이 해서 높은 벼슬을 얻어 사람들을 부려먹고 살 생각은 말거라. 너 혼자 네 옳은 길을 찾아 살 공부를 하거라. ' 미백 이청준 선생님의 <키작은 자유인>에 나오는 이 말씀과 함께.

말씀을 마치신 스님께선 귀한 것이라 하시면서 제게 차 한 잔을 권하셨습니다.
차의 종류나 향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절에서 만든 야생 녹차였지 싶은데 산길을 내려오던 저의 발걸음이 조금 가벼웠습니다. 그 때는 '佳茗 一碗'이란 다산 선생의 名句 를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좋은 차 한 잔'은 몸과 마음을 맑게 한다는 게 바로 그런 순간을 얘기한 것이겠거니 싶습니다. 강진의 유배지에서 멀리 흑산도에 계시는 형님을 그리며 피폐한 시대의 아픔을 한 잔의 차로 달래시던 다산 선생의 심중도 헤아려 봅니다. 

이런저런 일로 세상은 여전히 어수선하고 걱정거리도 많습니다.
생강차도 좋고 모과차도 좋고 유자차도 좋겠지요. 마음이 통하는 사람끼리 마주 앉아 어려운 농촌이나 이웃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드릴 수 있는 방도는 무엇인지 말씀 나누고 이를 실행하는 방도를 모색하는 시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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